통제불능 영국 통치자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
영국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미첼(David Mitchell)의 저서 'Unruly'는 전설의 아서 왕에서 시작해 영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다소 딱딱하게 다가올 수 있는 약 천년에 걸친 영국 왕족의 역사를 미첼은 특유의 영국스러운 드라이한 유머로 맛깔스럽게 서술해 나간다.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로 꼽힐 만큼 흡입력 있고 위트 있는 책이다.
책 제목 'Unruly'는 언뜻 보면 '통치하다(Rule)'라는 뜻의 반대말로 보이겠지만 실제론 '통제불능이다' '제멋대로이다'란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신으로부터 권한을 내려받았다고 믿어져 왔던 국가의 수장들이 얼마나 제멋대로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첼의 책에 등장하는 영국 왕과 여왕들은, 근엄한 초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위엄 있고 리더십 있는 군주들이 아닌, 왕권을 위협하는 이들을 짓밟으며 생존해 나가는 자아도취적인 인간들일뿐이다. 왕권을 잡기 위해 어린 조카들을 살해하기도 하며(리처드 3세), 사랑에 눈이 멀어 왕족이 아닌 평민 출신 애 딸린 과부와 몰래 결혼식을 올려 궁정 내 파벌 싸움을 초래하기도 한다(에드워드 4세).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여겨졌던 왕과 여왕들은 그렇게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잔인했고 이기적이었으며,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다만 조상을 잘 만나 엄청나게 많은 권력을 쥐게 되었을 뿐.
이들은 분명 막강한 힘을 가지고 수백만 명의 삶을 좌지우지했지만, 이들이 없었어도 다른 통치자가 분명 그런 일들을 했을 거란 점을 미첼은 강조한다. 힘을 가진 자들은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냥 '쓰레기나 교통 체증처럼 결함이 있는 시스템의 산물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영국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의회 시스템과 마그나카르타의 탄생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내전을 막으려는 시도에서 파생했던 우연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빼앗고 빼앗기는 왕권에 대한 책은, 의외로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 꼽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미첼은 이야기한다. 다채로운 어휘력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시대를 초월한 문학 작품을 남긴 셰익스피어와 달리 - 코미디언 미첼은 이에 대한 일례로, '젖을 빨고 있는 이 없는 아기의 잇몸에서 젖꼭지를 확 뽑고 골을 깰 것이다'란 멕배스 부인의 발언을 인용한다 - 우연히 힘을 가지고 태어난 군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이들에 대해 우린 단단히 착각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