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보내는 주말이다. 보통은 런던 외각에 있는 짝꿍집에서 보내는데 그 전날 런던에서 짝꿍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어 토요일은 가까운 우리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짝꿍이 좋아하는 크럼펫을 만들었다. 잉글리시 머핀이라고도 불리는 크럼펫에 짭짤한 버터를 바르고 햄과 치즈를 얹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여기에 포인트는 한 티스푼 더도 덜도 아니게 살포시 곁들인 어니언 처트니다. 짝꿍을 만나면서 알게 된 크럼펫 조합인데, 만난 지 1년 반이 다돼 가도록 매 주말 아침을 이렇게 해 먹고 있다.
슈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크럼펫이지만 내가 직접 만들어 주고 싶어 괜히 나섰다가 크럼펫 굽는 것은 망했다. 구울 때 구멍이 뽕뽕 뚫려야 크럼펫이 되는데 이도 저도 아닌 머핀 엇비슷한 게 나와버렸다. 예전에도 짝꿍 준다고 크럼펫 만드는 걸 시도했다가 동그란 틀 없이 굽는 바람에 구멍 뽕뽕 뚫린 팬케이크를 연출한 적이 있었는데, 만들기 그렇게 쉽다는 크럼펫을 두 번째 연속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무 불평 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짝꿍 정말 최고다.
아점을 먹고 나니 짝꿍은 파티에서 마신 술기운이 풀리지 않아 하루종일 잠만 자대고 바깥엔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한가로운 주말에 우리 집에 있으니 계속 요리가 하고 싶어 졌다. 간단하게 밑반찬을 몇 가지 만들었는데 그래도 짝꿍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거의 반나절을 혼자 부엌에서 신나게 보냈다.
무말랭이 무침과 마늘장아찌를 담구고, 남은 양파 껍질로는 차를 끓여주었다. 양파 껍질은 면역력을 높이고 지방분해를 돕는다고 해 양파를 많이 사용한 날에 끓이곤 한다.
집에 남아도는 녹두를 처리하기 위해 녹두를 물에 불려두고, 내가 좋아하는 태국 디저트인 찹쌀 망고밥을 만들 준비도 해두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아돌아 캐슈너트과 코코넛을 베이스로 하고 매자나무 열매를 뿌린 퍼지도 만들어 주었다. 원 레시피는 다른 과일을 추천했지만 예전 이란식 보석밥 '제레슈크 폴로'를 만들고 남아 찬장에서 갈데 없이 굴러다니던 매자나무 열매로 시음을 해보니 열매의 새큼한 맛이 코코넛과 캐슈너트의 느끼함을 잘 잡아주었다. 이번 일주일도 넉넉하게 먹을 수 있겠다. 뿌듯한 토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