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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이 Jan 10. 2024

극복하지 못한 현실과의 간극

위시(2023) - 주관적인 영화 리뷰

※ 본 리뷰는 '위시'(2023)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왓챠피디아


꿈과 동심의 왕국

꿈의 왕국 디즈니가 창립 100주년이라니 대단하긴 하다.

 소원을 바치면 언젠가 이루어 준다는 마법의 왕국 '로사스'에서 가이드로 살고 있는 아샤(아리아나 드보우즈)는 로사스에서 마법을 다루는 왕 매그니피코(크리스 파인)의 마법 견습생으로서 면접을 보게 됩니다. 면접 도중 아샤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이뤄줄 것을 부탁하지만 매그니피코는 국민들에게 반역의 영감을 줄 수도 있는 소원이라며 아샤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더불어 자신에게 바쳐진 소원은 돌려줄 수 없으며 영원히 자신이 보관할 것이라고 발언합니다.

결국 가족들에게 실망스러운 소식만을 전하고 아샤는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그 순간 노래에 응답이라도 한 듯 하늘에서 마법을 부리는 살아있는 별의 정령 하나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후 별의 정령이 보여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아샤는 친구들과 함께 매그니피코에게 바쳐진 소원들을 모두 국민들에게 되돌려주기로 합니다.


왕국이라는 별칭을 지닐정도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디즈니가 어느덧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0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경이로움이 느껴집니다. 물론 현재는 적잖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을 비롯한 온 가족들에게 디즈니는 따사롭고 신비로운 매력으로 가득 찬 왕국입니다.

그런 디즈니가 100주년을 맞이하여 초심회귀를 내세우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분명 100년의 역사가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위시'(2023)는 제작진들의 고민과 노력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형식과 주제를 품고있습니다.




디즈니식 2D와 3D의 조화

강렬함을 강조한 '스파이더맨 뉴유니버스'와 편안한 이미지를 강조한 '위시'의 차이가 돋보인다.

 '위시'(2023)에서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의 차이점을 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2D와 3D가 결합된 듯한 비주얼의 변화입니다. 이것은 최근 3D 애니메이션계의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 입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를 기점으로 3D 애니메이션 시장에 최대의 트렌드가 된 2D(이미지)와 3D(입체)의 조화는 디즈니에게도 꽤나 매력적인 혁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디즈니는 혁신을 따라 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여타 회사들과는 다른 디즈니만의 개성과 푸근한 이미지를 녹여내어 마치 동화책 삽화 같은 아름다우면서도 깔끔한 비주얼을 만드는 성공 했습니다.


화면비율이 가로로 엄청 길어진 만큼 수평적인 움직임이 많다.

2.55:1이라는 화면 비율 역시 굉장히 독특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근작들이 2.39:1이라는 기본적인 비율로 나왔던걸 생각하면 가로로 엄청나게 길어진 비율입니다. 실제로 극장에서 보면서 금세 체감될 정도로 화면비의 변화는 확실히 디즈니의 의도성이 다분한 편입니다.

가로로 길어진 화면만큼 한 화면 내에서 인물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선 모습을 보이고, 하늘을 나는 별의 움직임도 수직보다는 수평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이 자주 표현됩니다. 이런 수평적 움직임은 동화책 삽화를 따라가는 인상을 잘 심어줍니다.


하지만 단점 또한 존재합니다. 평면적인 2D 이미지의 감성을 살리다 보니 3D 애니메이션 치고는 캐릭터와 배경에서 깊이감, 입체감이 약합니다. 동화풍 분위기로 회귀를 노린 디즈니의 의도이지만 기존 2D와 3D를 합친 형식의 애니메이션들이 기본적으로 2D의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3D의 입체성을 살리고 있던걸 생각하면 단점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특히나 안 그래도 입체감 적은 배경들이 다소 심심한 색감을 보이게 되면서 다른 디즈니 작품들처럼 화려한 배경을 기대했을 관객이라면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서사가 짓누른 캐릭터

보통 애들도 이해하기 쉬운 서사가 나쁜건 아닌데 이 경우는..

 디즈니가 지향하는 회귀는 비주얼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선과 악이 대립하는 전통적인 서사 역시 회귀했습니다. 최근 디즈니의 작품들이 빌런이 존재하지 않거나, 반전형 빌런을 내세우던 것과 달리 초반부터 악역을 대놓고 드러내며 주인공과의 대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이면서 PC 적인 메시지를 넣은 것도 아니며(물론 파고들면 PC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이게 서사에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서사의 구조 역시 조금이라도 복잡하게 될 수 있는 요소들에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작품의 두 주역인 아샤와 매그니피코입니다. 아샤와 매그니피코 모두 소중한 사람을 잃은 과거가 암시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일은 없습니다. 캐릭터를 만드는 데 있어 캐릭터의 과거는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생각하면 깊이 있게 다룰 법도 하지만 작품은 그들의 과거를 최대한 단순하게 묘사하며 그들의 과거를 모르고 보더라도 서사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묘사합니다.


문제는 동화풍을 지향한 단순한 서사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평면적으로 누루고 있다는 겁니다. 각 캐릭터들은 충분히 입체적인 면모를 보이는데 그것이 발휘될 서사와 무대를 제공하지 않으니 관객들은 캐릭터들에게 몰입할 여지를 차단당합니다. 이 때문에 각인물들의 심리묘사와 개연성에 지속적으로 불협화음이 발생합니다.




매그니피코는 빌런인가?

매그니피코는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다.

 사실 주인공은 밋밋하게 느껴져도 악역인 매그니피코는 제법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빌런 전체를 놓고 봐도 개성 있고 특이한 캐릭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남편이자, 왕이자, 마법사이며 과거에 가족과 나라를 잃고 왕비와 함께 단 두 명이서 새로운 마법의 왕국을 만들어낸 입지전적이고 유능한 인물입니다. 건국 당시 평화롭고 희망찬 왕국을 만들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지녔던 그는 아샤와 대립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자기보다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고 자화자찬하며 국민들을 속이는 독선적인 인물로 뒤틀려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매그니피코의 행보와 심리는 현실의 어른들에게도 공감이 되는 요소가 많고 왕의 입장으로서 가지는 타당성이 존재합니다.


분명 매그니피코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관적인 정치관에 맞지 않는다면 타협의 여지없이 국민의 소원을 영원히 빼앗아 가버리기도 하는 매정하면서 독선적인 인물입니다. 또 소원을 왕에게 바치는 건 국가적 의무이기 국민들에게 꿈을 위한 선택이나 노력, 기억을 해볼 여유도 없는 강제적 처사에 속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공약도 소통없이 주관적인 가치관으로 선별되며 바쳐진 소원은 영원히 돌려주지 않는다는 조건이 국민들 모르게 붙어있었기 때문에 사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악행만 저지른 1차원적인 인물이 아니었고, 저지른 악행의 결과 또한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외적으로부터 습격받을 걱정 없는 왕국, 의식주가 무료로 제공되는 왕국, 심지어 한 달에 한 번씩 아무 대가 없이 소원을 이뤄주는 이벤트(소원 자체가 왕국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긴 합니다만)까지 있습니다. 현실 속 안정을 찾아 헤매는 어른의 입장에서 매그니피코가 제공해 주는 복지는 너무나도 매혹적이고 감미롭게 들립니다.

특히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매그니피코가 보여준 뛰어난 마법실력은 국가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요컨대 독선적이지만 매그니피코는 분명 국민과 나라에 헌신하고, 도움이 되는 왕으로서 대체불가능한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매그니피코가 저지르는 악행의 결과 역시 슬퍼하는 국민의 모습만 묘사되고 직접적인 피해를 깊이 있게 묘사하지 않으니 관객들에게 매그니피코의 악행이 무겁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주관적인 기준으로 소원을 이뤄준다는 조건 역시 왕의 입장에서 국가의 안보와 치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나름의 타당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히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인양 포장되어 있는 아샤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아샤와 매그니피코의 상징과 대비

빛나는 별(소원)들을 천장 안에 구속하는 매그니피코 왕과 그걸 풀어주려는 아샤의 대립이 중요하다.

 아샤와 매그니피코의 대립은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각 캐릭터가 대표하는 면모들은 디즈니 100주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상징성을 지닙니다. 디즈니를 상징하는 동심은 정확히 아샤(아이)와 매그니피코(어른)의 대립과 조응합니다. 이 둘의 대립은 단순히 아이와 어른의 대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과 현실, 미래와 과거, 혁신과 안정, 소통과 독선, 꿈을 펼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결입니다.


아샤는 소원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한 인물입니다. 이는 본인과 타인의 입을 통해서도 부각되는 부분이며 본인도 이런 성향을 살려 소원을 이루기 위해 로사스를 찾는 외국인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그니피코 왕 또한 소원의 소중함을 알고 헌신하는 인물입니다.

이 둘이 소원을 사랑하는 공통된 마음은 초반 'At All Costs'(한국명 : 지켜낼 거야)의 뮤지컬 장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둘이 소원을 다루는 태도는 사뭇 차이를 보입니다.


매그니피코는 상처받고 좌절하는 최악을 막기 위해 소원들은 좁은 성 천장에 안전하게 보관합니다. 그가 건재한 이상 이 소원들은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매그니피코의 기준에 맞고 운이 좋으면 대가 없이 이루어지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속되어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것들을 소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험이 두려워 지키기만 하는 것을 진짜로 소원(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절망을 막아내면 희망이 있는 걸까요?


아샤는 이런 행위를 절망을 막아낸 게 아니라, 희망을 막아낸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녀는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처럼, 사람들 모두가 가슴속의 빛나는 가능성을 함께 펼쳐나가야 함을 천명(闡明)합니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모두 꿈을 이루어가며 살아가야 함을 노래하는 아샤의 모습은 로사스 왕국의 가이드가 아니라 꿈을 펼치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가이드) 북극성입니다.




관객들도 별을 보며 길을 찾고 싶다

별이 가진 꿈과 희망을 비롯한 아름다운 소원의 이미지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나는 주로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여섯 살이든 예순 살이든 우리 모두의 어린이를 위해 영화를 만든다. - 월트 디즈니

 창립자 월트 디즈니가 동심을 중요시 여겼던 인물인 만큼 작품은 꿈과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순수한 마음을 주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디즈니 최초의 극장 애니메이션 '백설공주'(1937)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있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들 역시 오마주 하여 디즈니 마니아들에게 여러 잔재미를 주며 수가 많지는 않지만 흥겨운 뮤지컬과 매력적인 캐릭터 또한 존재합니다.


작품은 이토록 동심이 넘치는 즐거운 공간을 선사하지만 동화의 형식이 현실의 간극을 뛰어넘지 못하기에 동심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대부분 관객들에게 '위시'(2023)는 포장지만 아름다운 선물처럼 정성이 담긴 형식에 만족해야하는 어중간한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각박해져가는 시대의 변화를 생각했더라면 디즈니는 아름다운 형식보다는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을 더 신경썼어야 했습니다. 관객들에게 동심을 전하지 못하는 작품의 형태가 디즈니의 현재를 보여주는 처량한 자화상이 아니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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