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모몬 Sep 23. 2024

100시간의 굿딜 또는 족쇄

8월 10일쯤이었다. 이 더위가 언제 끝나나 싶고, 집에선 마냥 늘어져 있기만 했었다. 동네 산책을 좋아하지만, 이번 여름은 해가진 다음에도 후끈한 공기 때문에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에어컨은 풀가동에, 소파나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카페를 가서 책이라도 좀 읽어볼까 해도, 어떤 날은 너무 시끄러워 눈에 글씨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집 앞 스터디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스터디카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아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보고 너무 답답하면 안 가면 되지 뭐, 하는 마음이 들어 일단 가보았다. 여름 방학 중이어서 그런지 스터디 카페는 한산했다. 그래서 그런지 추가 시간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내게 3달간 100시간 사용권을 결제하면, 50시간을 추가로 주신다고 했다. 그 50시간은 그 50시간권을 시작한 날부터 추가로 2달이 주어진다고 했다. 굿딜이었다. 나는 굉장한데?라고 생각하고 바로 결제했다.


그렇게 들어가 본 스터디카페는 정말 쾌적했다. 책상도 널찍하고, 조용한 데다, 개인 자리에 커튼까지 칠 수 있어 프라이빗하기까지 했다. 그런 자리가 답답하다면 노트북자리로 가면 되는데, 거긴 카페 같은 느낌의 자리들이 있었다. 그날 나는 2시간쯤 자리에 앉아 매일 들고만 다니고 진도가 나가지 않던 책을 꽤나 많이 읽고 뿌듯해하며 집에 돌아갔다.


다음날 내가 스터디카페를 100시간 결제했다고 하자, 회사 사람들이 내게 "기부하시는 건가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중 한 사람은, 내가 8월 말부터 9월까지 해외 출장이 3번 예정되어 있다는 점, 추석 연휴가 있다는 점을 들며, 절대 100시간을 채울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출장 다녀와서 10월에 열심히 가면 되죠,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녀는 "10월부턴 날씨가 좋을 텐데, 밖으로 놀러 나가고 싶을 텐데, 스터디 카페에 절대 안 가실걸요?"라고 자신 만만하게 말했다.


100시간을 채우려면 일주일에 몇 번, 하루에 몇 시간 스터디 카페를 이용해야 하는지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나는 막연한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다. 난 원래 카공족이니까, 잘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일요일 저녁 스터디 카페에 갔다. 가서 두 시간쯤 책도 읽고 놀다 나오며 체크아웃을 하는데 왜 92시간이나 남아있는 걸까? 11월 10일까지니, 이제 남은 기간은 7주쯤이다.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소진해야, 100시간을 채울 수 있다. 스카 시간 소진을 위해 자격증 공부라도 시작하거나, 한자 급수라도 따야 하는 걸까? 나는 본격적으로 무슨 시험공부를 하려고 스터디까페를 끊었던 것이 아닌데... 그저 좀 덜 누워있고, 조용한 곳에서 책이나 보고 그러려고 했던 것이다. 굿딜이었던 100시간이 이제 족쇄처럼 느껴진다. 출퇴근만으로도 지치는 날이 많은데, 그 와중에 매주 10시간 이상 어떻게 채우지?하는 답답함이 몰려온다. 왜 100시간을 결제하던 그때는 마냥 긍정적이 되어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을까? 어쩌면 남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그걸 깨달아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