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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lee Nov 29. 2024

아들! 엄마도 바나나 우유 좋아해

-아들과 함께 학원 땡땡이친 날

언젠가 아들이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를 사 오며 '엄마 것도 샀어!' 할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은 1800원짜리 행복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브런치에서는 카톡 알림이 온다. 요즘 글이 뜸하다고 조금이라도 써서 글 쓰는 근육을 기르라고 한다. 최근 바쁜 일도 있었고, 최근 쓸려고 하는 소재가 B급 감성이라 이런 걸 써도 되나 고민하다 3주 정도 글을 안 쓰게 되었다. 전문적이고 유려한 글 사이에 내 유치한 마음이 드러난 글이 뜬다는 건 내향인에겐 자다 가다 이불 킥할 일이지만 그런 고민 끝에 최근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떠올려 봤다.

  아들의 최근에 정기 검진이 있어 대학병원을 찾았다. 조퇴하고 부랴부랴 나오느라 친정아버지께 중학생 아들의 픽업을 부탁드렸는데 마침 이날 스포츠클럽이라 어느 축구클럽으로 가서 픽업하기로 하셨다. 그러나 초행길이라 아버님은 비게이션으로 알려준 곳으로 갔지만 축구클럽 간판이 안 보이신다고 하셨다. 검진 시간은 다가오는데 내가 아들을 픽업할 걸 너무 죄송하고도 마음이 안절부절못하였다. 친정아버지와 몇 차례 통화 끝에 간신히 축구클럽을 찾아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와 내려주셨다. 친정 엄마보다 좀 더 어려운 게 아버지라 "나는 정말 감사해요 이따 전화드릴게요."라고 속사포처럼 소리치듯 말하고 차에서 내린 아들의 짐을 받아 들었다. 체육복 차림에 아들은 어깨에 배낭과 함께 체육복을 입고 있었고 갈아입은 교복은 에코백에 담아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세상 느긋하니 바쁜 게 없다. 나는 늦었다고 재촉하여 간신히 검진을 마쳤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 이것저것 질문하고 다음 예약도 하는 등 분주히 쫓아다닐 동안 아들은 지루했는지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라고 했다. 나도 정말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니다 보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현재 오후 5시. 직장 점심시간이 11시라 그때 먹고 아직 아무것도 안 먹은 거였다. 아들에게 전화하니 편의점이란다. 그럼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리 없지. 그런데 아뿔싸! 시간을 보니 아들 국어학원이 5 시인 걸 깜박한 것이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으면 스케줄을 맞출 수 있었는데...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 00이 병원검진이 있어 왔다가 진료 보니 벌써 5시네요 오늘은 돌아가도 5시 반이라 등원이 어려울 거 같아요.  죄송해요."라고 인사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학원은 못 가게 됐으니 나도 요기를 하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대학병원 옆에 붙은 세븐***  편의점 문을 열자 아들은 벌써 핫바와 콜라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아들! 의리 없게 혼자 먹기냐!" 하며 이제 느긋하게 아들 학원 땡땡이에 동참했다. 다시 따라 들어온 아들은 엄마가 뭔가 더 사줄까 싶어 두리번거렸고 나는 주린 배로  편의점을 한 바퀴 도니 이것도 저것도 다 바구니에 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성을 찾고 가장 끌리는 바나나우유, 소금크림빵, 소시지 2+1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바나나 우유는 왜 이렇게 이상하리만큼 내 손안에 들어오기 힘들었을까?


  그 썰을 풀자면 부모님 생신을 앞두고 시댁모임에서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가곤 하는데 시누이들과 그 남편들 (일명 고모와 고모부)과 함께 펜션을 잡으면 조금씩 함께 모으는 남매계회비로 여러 부식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 다. 과자는 물론 그중에 바나나 우유 및 딸기 우유 등도 몇 팩이 들어 있었다. 저녁을 함께 차리고 먹고 다 치우고 나서 나도 이제 좀 땅에 엉덩이 좀 붙일까 할 때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그러나 슬픔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달달한 우유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중학생, 고등학생 먹성 좋은 나이니 그려려니 하지만 그때 아쉬움이란...

  그러나 또 내 손으로는 편의점 가서 잘 안 사 먹게 되는 게 바나나 우유이다. 한 개에 1800 원하는 바나나 우유라 선뜻 안 집어지는 거 같기도 하다.  편의점에서 아들이 집어도 3개는 좀 무리다 싶어 형제 것 딱 2개만 사게 한다.  

  어찌하다 이날은 바나나우유, 소금크림빵과 소시지를 사 들고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차에 올렸다. 잠시 출발하기 전 바나나 우유를 목에 넘기는 순간....  내 눈은 반짝이는 캔디눈이 되었다. 이 달콤한 바나나우유가 온전히 오늘은 내 차지구나. 왜  나 자신에게 이렇게 인색했지. 소금크림빵은 또 왜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거야. 하루의 고단함이 그대로 녹아내리는구나...

그동안 나는 왜 바나나 우유를  내손으로 사 먹지 못했던가 꼭 1800원이라는 가격 때문인 거 같지는 않았다.

[요즘 쳇지피티 플러스 4를 사용하는 재미를 들였는데 이 장면을 설명하고 그려달라고 하니 이렇게 그려 주었다. 너무 아름답게 그려 주어 조금 당황했는데 또 자연스럽게 해 달라니 완전 아따 맘마가 되어 이 그림으로 선택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햇밤을 쪄 놓으셨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그만 동생이랑 다 먹어 버렸다. 퇴근하신 아버지가 찐 밤을 찾으셨는데 우리가 다 먹었다고 하니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때 아 어른들도 저런 것에 서운해하시는구나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니 맛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어른들끼리 무언의 약속이 있다는 걸 알았고 또 맛있는 게 있을 때 어른이 먼저 집는 것은 체신머리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아들 엄마도 바나나 우유, 소시지, 크림빵 좋아해. 다음에 편의점 갈 때는 엄마 것도 좀 사 와라고.

  

  최근 몇 년 새 아들들에게 내 생일날 아들들 용돈에 맞추어 편의점 커피나 이*아 커피를 사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으나 언젠가 아들이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를 사 오며 '엄마 것도 샀어!' 할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은 1800원짜리 행복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근데 이 행복도 잠시...

"근데 아들 아까 교복 가방 어딨 어?"

"어? 아! 엄마 아까 편의점에 둔 거 같아요." 

"너는~ 잘 좀 챙기지... 혹시 모르니 엄마는 검사실로 가 볼 테니 너는 편의점으로 어서 뛰어~!"

[역시 쳇지피티 플러스 4가 설명 듣고 그려 준 그림. 바나나는 지우라고 해도 말을 안 듣네. 바나나와 우유를 따로 인식했나. 아직 명령어 스킬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도 비슷하게 그려줘서 만족해. 챗지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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