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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Sep 14. 2024

그래도 파타고니아 세로토레를 등반했다

아르헨티나 여행

파타고니아 세로토레와 피츠로이     

 산악인이라면 듣기만 해도 설렌다는 피츠로이는 3,375m 날카로운 봉우리의 설산이다. 등산복 브랜드로 유명한 파타고니아 상표에 있는 산이다.      


 피츠로이 등반하는 날, 숙소에서 아침 일찍 차를 타고 호스테리아 엘 필라로 이동해서 그곳부터 피츠로이를 오르고 정상에서 숙소로 내려오는 거의 9시간 이상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 팀에는 산악인도 여러 명이고, 칠레에서 등반할 때도 각자 산행 실력에 따라 자유롭게 올랐는데, 무슨 이유인지 이 날따라 인솔자는 흩어지지 말고 따라오라고 했다. 속도가 빠른 산악 고수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대다수는 인솔자 뒤를 따랐다. 또 인솔자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외국인 단체는 반드시 현지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규칙도 무시했다. 

 한술 더 떠, 인솔자는 풍경이 멋지지만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나는 기분이 싸해지며 엉거주춤하는데 다른 여행단체의 현지 가이드가 우리 일행의 규칙 위반을 목격했고, 현지 가이드를 동반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우리 팀 인솔자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며 현지 가이드와 실랑이 벌였다. 그러나 우르르 몰려있는 동양인인 우리는 누가 봐도 한 팀으로 보였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벌금을 물도록 하겠다는 이야기까지 오고 갔다. 창피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다 하다 별 경험을 다 했다.


 우리 팀 인솔자는 피츠로이에 올라갔다 내려오며 그들에게 다시 걸리면 여권을 뺏길 수도 있으니 목적지를 세로토레로 바꾸고 조별로 흩어져 등반한 후 각자 숙소로 내려가라고 말을 바꿨다. 또 누가 무엇을 묻던 아무 대답하지 말라고 다짐시켰다. 낯설고 말도 안 통하는 남미에서 이런 일까지 겪으니, 불안이 밀려왔다. 

 칠레에서처럼 그냥 알아서 등반하라고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남편과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적당히 산길 걷다 숙소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산을 빙 둘러 걷더라도 세로토레 정상을 오르는 거였다. 


 남편과 나는 세로토레를 오르기로 했다. 걷는 동안 몇 개의 호수, 설산, 산을 뒤덮은 구름을 보았다. 멋진 풍광을 보면서도 흥이 나지 않았다. 비까지 추적거렸다. 정상에 올랐지만 구름에 가려 산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뿌듯함은 밀려왔다. 

 정상에서 잠시 쉬다가 한참을 내려오니 숙소가 있는 엘 찰텐이 보여 반가웠다. 많이 걸어 지쳤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숙소로 향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산 아래 보이는 엘 찰텐

 내가 씻는 동안 남편은 나가서 먹을 것을 사 왔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수박을 베어 무니 하루 종일 터무니없이 걷느라 지친 몸에 새로운 힘이 났다. 남편도 힘들었을 텐데 저녁 사 먹으러 나가기 힘들어할 나를 위한 배려가 고마웠다.      

 아타카마 사막에서 다툰 이후 남편은 다른 일행에게 향하던 관심과 수다를 줄이고 내 기분을 살폈다. 일행 중 다수를 차지하는 여자들이 남편에게 하던 부탁이나 농담도 자연스레 줄었다.      

남편이 장 봐온 시원한 맥주와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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