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백 Feb 02. 2024

31. 잃었던 아이폰 충전 케이블 (5월 5일 금)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폰세바돈 Foncebadon ~ 폰페라다 Ponferrada      

  산 정상 가까운 마을 폰세바돈에서 출발하여 산을 넘었다. 새벽 기온은 낮고 바람도 차가웠다. 산 정상에는 ‘철의 십자가’라고 부르는 조형물이 있고, 그 십자가와 주변에는 저마다 사연을 담고 있는 물건들이 잔뜩 놓여있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어슴푸레한 분위기 때문인지 신비함과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어떤 순례자는 추운데도 불구하고 십자가 근처에서 넋을 놓고 한참을 있었다.                                                                           

순례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철의 십자가’

  그곳에서 다시 만난 이무송 씨는 우리 자세를 연출하며 사진을 찍어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인생 사진을 얻었다. 사진 몇 장 찍느라 손도 곱고 너무 추워서 오래 머물기 어려웠다. 부지런히 내려오는데 해가 뜨고 날이 밝았다. 패딩을 입었지만 춥고 차가운 바람에 손끝이 얼어 스틱도 쥐기 힘들었다. 

  산에서 내려가는 도중 멀리 푸드 트럭과 옆에 장작이 타고 있는 벽난로가 보여 반가웠다. 벽난로에 손을 녹이고 카페 콘 레체와 빵을 사 먹으며 몸을 녹였다. 따뜻하니 살 것 같았다. 산 위에서는 순례자들이 추위에 떨며 계속 내려오고, 몸이 데워진 우리는 따뜻한 자리를 양보하고 다시 걸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 난로 앞에서 꽁꽁 언 몸을 따뜻하게 녹였다.

  오늘 26km 정도 걸었는데 산을 오르내려서인지 7시간 이상 걸렸다. 산을 넘으니, 집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다. 산 동쪽 지역 집들은 성벽이나 요새를 연상시키는 두꺼운 벽과 폐쇄적인 대문으로 바깥과 단절된 모습이었다. 반면 이곳은 2층에 발코니가 있고, 대문이 좀 더 개방감 있다.                                                                                          

발코니 있는 개방적인 집이 있는 골목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순례자들


  며칠 전 핸드폰 충전 케이블을 잃어버리고 아스토로가에서 샀던 충전 케이블은 충전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지만, 남편은 나와 다르게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남편은 먼저,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충전 케이블을 보관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다음 배낭 택배기사에게 충전 케이블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문의하고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다시 충전 케이블을 보관하고 있는 알베르게 주인에게 충전 케이블을 택배 기사에게 전달하도록 부탁했다. 

  한국이었다면 간단한 일지만, 우리는 영어도 능숙하지 못하고 스페인어는 전혀 불가능하고 또 전화가 안 되는 e-심을 이용하고 있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이 모든 과정을 번역기와 문자로 해결했다. 그런데 충전 케이블을 보관하고 있는 알베르게 주인이 택배 기사에게 케이블을 전달하도록 해야 하는데, 남편이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그러자 어제 머물렀던 알베르게 여주인에게 전화 통화를 부탁했고 여러 차례 시도로 통화가 되었다. 스페인어로 주고받는 대화가 한참 이어졌고 마침내 오늘 우리는 잃었던 아이폰 충전 케이블을 오늘 머무는 알베르게(Guiana hostel)에서 전달받았다.    

  

  우리가 아스토로가에서 산 핸드폰 충전 케이블은 정품이 아니라 충전 속도가 너무 느리고, 순례길에서 정품을 사기 힘들고, 정품을 산다고 해도 택배비 6유로보다 더 비싸서, 남편은 잃어버린 충전 케이블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충전 케이블을 버리지 않은 알베르게 청소원, 보관했다가 전해 준 알베르게 주인, 전달해 준 택배기사(택배 비용은 냈지만), 스페인어로 전화 통화를 대신해 준 알베르게 여주인의 배려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친절과 도움이 고맙다. 

  남편의 문제해결력이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 일로 국제적으로 증명되었다. 남편에게 존경을 표했더니 별일 아니라면서도 어깨와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다. 남편도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30.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던 순례길 (5월 4일 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