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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2. 2024

33. 순례길에서 알게 된 파스타 맛 (5월 7일 일)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비야프란카 델 비에르소 Villafranca del Bierzo ~ 라 라구나 데 카스티야 La Laguna de Castilla      

  와이파이도 안 되던 산 니콜라스 수도원 알베르게는 새벽에는 전기가 아예 안 들어와 화장실도 깜깜했다. 어둠 속에서 순례자들은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더듬거리며 움직였다. 이런 곳은 처음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획대로 출발했고 밖으로 나오니 달이 서쪽으로 넘어가기 전 밝게 빛나고 뻐꾸기가 멀리서 울었다.   

  

  오늘도 산을 올랐다. 작은 동네를 자주 지나쳤고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되어 쓰러져 가는 집이 자주 나타났다. 오래된 전통 집 구조를 살펴보고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상상하며 걸었다.

  나무도 많고 계곡에 물도 흘러 그동안 걸었던 메세타 평원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산과 계곡이 많은 이 근처는 사람들이 많이 놀러 오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같은 휴양지 같다. 

  아스팔트가 깔린 산길을 한참 걸은 후 흙길이 나왔다. 풀밭에서 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소가 그렇게 우렁차게 울고,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줄 처음 알았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시원하고, 물감을 흩뿌린 듯한 노란 꽃이 예뻤다. 산에 오를수록 풍경이 멋졌다. 그러나 길에는 가축 똥이 너무 많아 발을 디딜 곳을 찾기 어려웠다. 남은 거리가 100km대로 떨어졌다. 마냥 기쁘고 신날 줄 알았는데 설명하기 힘든 여러 가지 감정이 일어난다.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은 목청껏 울며 겅중겅중 뛰었다. 목장 풍경은 아름다웠다.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바(bar)에서 쉬면서 맥주를 마셨다. 어제 먹었던 파스타가 생각났다. 시간상 파스타를 파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은 주인에게 부탁했다. 주인은 흔쾌히 파스타를 바로 만들어 주었다. 

  소스에는 별 재료도 안 들었지만 방금 만든 따뜻한 파스타는 지금까지 먹어 본 중 최고였다. 파스타는 소스 맛이 아니라 국수 맛이다. 스페인 밀가루는 특별하다. 매일 파스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스타는 소스가 아니라 국수 맛이다. 파스타와 함께 나온 빵도 맛있다. 스페인 밀가루는 특별하다.

  땀을 흘리며 산을 올랐다. 산 정상을 코앞에 둔 마을에 머물렀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 알베르게(Albergue la escuela)에 딸린 식당 외에는 다른 식당도 슈퍼마켓도 없다. 

  산길을 걸어서 피곤하고 허기진 우리는 ‘오늘의 메뉴’에 나온 푸짐한 음식을 모두 깨끗하게 먹고 함께 나온 수제 포도주 큰 병을 통째로 비웠다. 

  알베르게 뒤쪽 산비탈 잔디에 앉아 햇볕을 쬐며 쉬었다. 바람과 햇볕이 좋아 널어놓은 빨래가 잘 말랐다. 바로 옆에서 소와 말이 풀을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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