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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솜 Sep 09. 2023

지금 내 마음이 오븐에 넣고 구운 마시멜로우 같아.

가까울 뻔했다가도 거리를 두는 겉바속촉 어른의 삶이란.

웬만하면 지하철을 타는데. 정말 문득 창밖을 구경하고 싶어서 버스에 탔다. 마침 출퇴근 시간이 지나 버스는 한적했고. 평소대로라면 항상 복도 쪽에 안아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텐데. 문득 창밖을 보고 싶었다. 사람들 사는 게 보고 싶었다. 에어컨도 더 잘 나오길래 창가로 자리를 슬쩍 옮겼다.


그리고, 기분이 마냥 좋지 않던 버스 운전사와 얌체 운전자 3대를 직전 사거리에 끼워주고 짜증이 났던 하얀색 승용차는 양보 없이 서로 속도를 내고. 우회전을 하던 버스의 중앙을 크게 들이받았다. 그렇게 몇 초 전 자리를 옮겨 창가에 앉아있던 여자는 죽었다.


버스 타고 가다가 든 저의 상상 혹은 공상인데요. 우리가 마주하는 인생이 가만 보면 이런 거 같습니다. 기이합니다. 간혹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바쁘게 바쁘게. 내게 주워진 이 하루를 긴박하고 버겁게 살아가다가도 믿을 수 없이 어이없게 인생을 뒤통수 맞기도 합니다. 요즘은 뉴스만 틀어도 그런 일들이 즐비하잖아요. 그 찰나의 타이밍. 이 신비하고 경이로운 우주 속에서 우리 나약한 인간들은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 셀 수 없이 많은 타이밍에 스스로를 끼워 넣고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연애를 하고 싶은 열정이 사라졌어요. 참 신기합니다. 운명론자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운명과 필연에 기대어 살고 있었습니다. 나와 코드가 잘 맞는 건실한 미래의 남편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뻐끔뻐끔 숨 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길 바라면서 말이에요. 나의 진정한 인연이 있을 거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도통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렵고 정말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게 더 부담스러워지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건 그 이전의 경험들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그로 인해서 생겨나는 겉은 바삭바삭 딱딱한데도 속은 쭉쭉 늘어나는 마시멜로우같이 은근슬쩍 연약한. 그런 마음 같달까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던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들이 다양한 경험 혹은 상처와 지혜를 얻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딱딱하게 변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에요. 어른들의 마음속 저 깊은 곳에도 무언가 촉촉하고 보드라운 마음과 순수를 향한 열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치열한 사회로 나와 살아가는 우리들이 180도 오븐에 몸을 구운 마시멜로우처럼 겉이 딱딱해지고. 스스로를 더 단단히 감싼채, 감추어 버리곤 하는 거 같아요. 때론 에둘러 멀어지거나,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 지레 겁먹어 도망을 갑니다. 어쩌면 우리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일까요.


며칠 전에 새로 안면을 트게 된 친구와 각자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훤칠한 친구였는데요. 입을 열기 시작하니까 깨더라고요. 어른이 되고 알게 되는 다른 어른들에게 저의 무수한 경험, 살아온 인생, 겪어온 환경, 도전.. 이런 모든 것들이 가벼운 한 두문장으로 요약되는 게 은근히 슬픕니다. 그 친구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저한테 등이 따스운 인생이라 하던데요. 제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 천불이 났습니다. 당신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쉽게 나의 인생을 몇 마디로 단정하는지. 그러다가도 앞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더더욱 나를 숨겨야겠다. 한 번에 쉽게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 나의 모든 걸 쉽게 말하거나 판단하게 내버려두지 말아야겠다. 거리를 둬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나를 존중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부터 제 이상형은 남을 함부로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사람입니다. 배려와 존중은 사랑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모든 만남과 경험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할래요. 오븐 속에 들어가서 겉이 좀 바삭한 마시멜로우면 어때요 여러분. 우리 그래도 맛있는 건 똑같고, 달달한 마시멜로우, 우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 그냥 행복해봅시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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