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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May 07. 2024

병원 밖 짧은 자유 : 파라핀 치료와 의료파업


봄,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이쁜 계절에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다. 내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끝도 보이지 않는 병원에서 모두 소비하고 있다. 이제는 그만 탈출하고 싶다. 오늘따라 대로변의 가로수들이 나처럼 외롭고 슬퍼 보인다.  

   



엄마의 구순 잔치 후, 다리의 통증을 없애기 위해 여러 치료를 한 나는 오랜만에 병원 밖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단지 내 마음에 조금의 자유를 부여하고 싶었다. 목적지는 근처 새마을 금고로 10분 거리였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 병원 밖을 나와 빌딩 속의 대로변을 걸었다.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복잡한 세상 속에 잠시나마 함께할 수 있었던 나는 어느 때보다 인간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현금을 찾으러 새마을 금고에 왔지만, 카트와 통장이 없었다. 새로운 현금카드 한 장을 만들어 현금을 찾아 병원으로 왔다. 언제 종로로 나갈 수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제든 금을 살 돈을 미리 찾아 놓은 거다.      




30분 정도 돌아다닌 것 같았다. 다리가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외출로 인한 통증은 나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정말 골수암이면 어쩌지?’라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불안에 휩싸인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만의 진단을 시도 하게 만들었다. 골수암의 증상부터 사타구니 염증, 종양 등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자, 가슴이 조여오면서 고립감에 빠져들었다.      


문제의 영상을 노트북에 저장했다. 나는 브런치 스토리와 내 블로그에 올려 판독할 수 있는 분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이 보셨지만,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가족 톡에 올려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내 주위에 이걸 판독해 줄 의사가 없다는 게 화가 났다. 깔린 게 의대생이고 의사인데 어찌 내 주위에 의사가 없지? 나의 인간관계가 이렇게 좁았나? 병원을 11년간 다녔는데?’라고 생각하자 한심했다.     


딸은 내가 올린 영상과 판독지를 보면서 “엄마! 왜 그래? 오진으로 결정한 거 아니야? 아직 검사하지 않았잖아? 혹일 수 있다고 하잖아! 내가 집에 가서 판독지는 다시 볼게!”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해답을 찾지 못한 나는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정말 골수암이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은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선 통증부터 치료하고 싶었다. 내 침상 아래에 있는 발 파라핀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파라핀 치료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말로만 들었지만, 해본 적은 없었다. 어떤 느낌인가 손을 먼저 해봤다. 아팠던 어깨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손과 팔꿈치를 하루에 몇 번씩 했다.      


6개월 이상 속 썩이던 어깨의 통증이 점점 사라지면서 오른쪽 팔에 힘이 들어갔다. 정형외과에서 초음파도 찍고 어깨에 비싼 주사도 맞고 도수 치료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사지사를 불러서 하루에 2시간씩 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팔이 파라핀으로 자유로워졌다.     


발도 하고 싶었지만, 남들 손 하는데 발한다면 싫어할 거 같았다. 하나 구매했다. 내 자리에서는 발하고 공동파라핀에서는 손과 팔꿈치를 했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다. 한번 할 때마다 1시간 이상씩 소요되었다. 손과 발을 하루에 2번 이상씩 했다.     


효과는 어깨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발하고부터는 다리 통증도 점점 줄어들었다. 외출 후, 발 파라핀을 하고 자면 다음 날 통증이 거의 없었다. 할 때마다 온몸에 땀이 사우나 하는 것처럼 흘렀다. 독소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발 파라핀은 나만 사용하는데도 찌꺼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옆의 언니 말씀으로는 우리 몸의 독소가 빠지는 거라고 했다. 내 몸에 이렇게 많은 독소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독소가 빠지면서 혹도 줄었으면 좋겠다.     


생각지도 못한 파라핀 치료가 오랜 시간 내 몸을 괴롭히던 통증을 멀어지게 했다. 나의 일상적인 활동에 힘을 실어주면서 생활의 자유를 조금씩 되찾아 주었다.   

  



어제 나는 병원 밖 출입이 완전히 통제된 감옥 같은 본병원에 입원했다. 한방병원으로 입원해 양방에 협진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병원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병원 파업으로 인해 인력 부족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자마자 영상 CD를 병원 전산에 올려놓자, 한방 교수님은 병원에 판독을 의뢰하셨다고 했다. 판독 결과를 보고 과를 정해서 협진 의뢰를 해주신다고 했다.    

 

지금, 이 병원도 의료파업으로 양방 레지와 인턴이 없어 모든 일을 교수님들이 하신단다. 의료공백이 심하다고 한다. 나에게 피해가 올까? 솔직히 걱정되었다.     




입원할 때, 나의 유방암 수술을 해주셨던 교수님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잘 지내시죠?”라고 묻자,


“어떻게 잘 지낼 수 있겠어요?”라며 힘든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 의료 분쟁 때문에요?”라고 묻자,


저도 사표 쓸까? 생각 중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놀란 나는


“안 돼요.”라고 웃으면서 애원하듯 말할 때, 엘리베이터가 열려 교수님은 나가셨다.     


병동에 올라와 간호사에게 말하자, 지금 양방은 난리가 아니라며 교수님들이 힘들다고 했다. 교수님들이 돌아가며 당직 서고 모든 일을 다 하신다며 걱정했다. 뉴스로만 듣던 의료파업이 나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이 올 줄이야.          




나는 병원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끊임없이 삶과 씨름하고 있다. 외롭고 때로는 절망적이지만,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병원 상황 속에서도 나는 내일의 희망을 품으며 견디고 있다.     


연휴가 끝나면 어느 과로 이동할지, 어떤 검사를 받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직면한 모든 불확실성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이 싸움을 이어가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파라핀 치료가 내게 준 작은 기적처럼, 때로는 작은 것들이 우리를 큰 고통에서 구할 수 있음을 배웠다. 병원 생활이라는 긴 터널 속에서도 빛은 언젠가는 찾아온다고 믿는다. 다가오는 모든 검사와 치료가 나에게 더 나은 건강을 가져다주기를 기원하며, 이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길 소망한다.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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