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의 한 정형외과에서 촬영한 MRI 사진에서 골수암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때 환자가 느껴야 하는 심리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본 병원에 입원했다. 몸이 약해진 나는 한방에 입원해서 양방에 협진을 의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K 한방병원에 입원해서 K 양방병원에 협진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번거로운 예약 절차가 필요 없다. 원하는 과 선생님을 가장 빠른 진료 날에 볼 수 있다. 때때로 시간이 길어지면 진료 날이 아니어도 의사 선생님께서 입원실로 직접 오셔서 진료를 해주신다.
검사 또한 예약했어도 빈자리가 나오면 언제든 먼저 검사받을 수 있다. 약해진 몸을 한방에서 한약으로 몸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위안이 된다. 검사 후 힘든 몸을 병실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편리함 속에서도 대학병원의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따르는 입원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가져온 영상을 우선 영상 의학과에 판독을 의뢰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신경 척추과에 협진 의뢰했다. 금요일에 입원했지만, 월요일이 공휴일인 관계로 화요일에 판독이 이루어졌다. 신경 척추과 선생님은 화요일만 진료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주를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선생님은 목요일에 내 영상을 보시고 오후에 병실로 오셨다. 너무 반갑고 감사했다. 선생님께 나의 증상을 말씀드렸다. 여기서 나와 의사 선생님이 놓친 부분이 있었다.
한방 교수님은 왼쪽 골반 위 골수 부분의 큰 혹이라는 문구를 빼고 척수 L1, L2 쪽 문제만 적어 판독을 의뢰했던 거다. 척수 교수님도 척수 L1부터 L5까지만 보고 오셨다. 나는 골반 위의 혹을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호소했다.
MRI 영상을 보고 오신 교수님은 나의 말보다는 척추에만 신경 쓰고 계셨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신 교수님은 내가 두세 발만 뛰어도 무릎이 아프고 절뚝거린다고 하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조영제를 투입해서 다시 한번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이때 나는 핸드폰에 저장해 둔 문제 있는 내 영상 사진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선생님이 MRI 영상을 보고 오셨다는 말씀만 믿고 내 병에 대해 방심했다.
월요일에 찍고 화요일 진료 시간에 만나는 걸로 했다. MRI는 월요일 5시 예약이었지만, 아침 7시에 자리가 있다며 급하게 영상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조영제를 투입하기 위해 굵은 주사를 손등에 맞고 지하 1층 영상실로 내려갔다. 내 이름이 호명되어 영상실로 들어갔다.
“그러면 다시 알아보고 찍으세요. 저는 척추를 찍으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환자분이 결정하세요?”
“안 돼요. 오늘 찍고 낼 선생님 만나야 해요. 이번에 못 만나면 이번 주 만날 시간이 없어요. 금요일엔 퇴원할 건데?”
“환자분이 결정하세요. 그 부분은 다시 오더를 받아야 해요.”라는 말씀에 잠시 고민했지만, 선생님은 분명 영상을 보고 왔다고 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찍겠다고 했다.
MRI 촬영은 1시간 넘게 걸렸다. 전날 옆의 언니 코골이에 밤을 꼬박 센 나는 찍는 동안 숨이 멈출 것 같았다. 그 작은 통에서 혼자 자가호흡을 했지만, 죽을 것만 같았다. 여러 번 힘들다고 호소했지만, 조금만 참아달라며 쉬지 않고 촬영이 계속되었다.
촬영이 끝나자,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두 분의 남자분과 촬영해 주신 선생님 3분이 나를 부축해 주셨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물었다. 촬영한 선생님은 내가 대퇴골 위를 강조하자, 걱정되어 그 부분도 함께 촬영해서 시간이 길어졌다고 하셨다.
병실로 올라와 쉬고 싶었지만, 옆의 언니는 찬송가를 듣고 계셨다. 아침 시간이고 언니의 유일한 낙을 빼앗을 순 없었다.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왔기에 앞자리를 옮겨달라고 했다. 간호사는 규칙이 안된다며 알아보겠다고만 했다. 기다리다 간호사실로 갔다. 다시 부탁하자, 수간호사가 왔다. 흥분한 목소리로 안 된다며 손가락질까지 했다.
2인실을 요청했으나 병실이 없었다. 화가 난 나는 고객 상담실로 갔지만, 수간호사의 전화를 받은 고객센터 직원의 반응은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두 손을 흔들며 강력하게 병실에서 해결할 문제라며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병실로 올라와 쉬었지만, 회복이 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병을 고치러 온 건지 병을 더 만들러 온 건지? 현재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무조건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다음날 의사 선생님의 부름을 하루 종일 기다렸다. 내 기대와는 달리 선생님은 자신의 모든 외래 진료가 끝난 후 불러주었다. 가슴이 뛰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이라고 기도하며 선생님을 만났다.
“척추엔 디스크 외엔 별문제가 없어요. 말씀하신 L1과 L2는 거의 문제없고 L4,와 L5가 문제이긴 한데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선생님!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4번과 5번은 15년 전에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핸드폰에 저장해 둔 문제의 MRI 사진을 보여주었다.
“선생님! 제가 걱정하는 건 파란색으로 체크한 부분을 알고 싶은 거지 디스크를 알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병실에 오셨을 때도 이 부분 혹을 말씀드렸잖아요.”라며 답답하다는 듯이 호소했다. 깜짝 놀란 선생님은
“정말 이상하네요?”라며 내가 가져온 영상을 다시 보고 이번에 촬영한 영상을 비교해 보셨다. 그러면서 함께 작년과 제 작년에 촬영한 본 스킨 영상도 보셨다.
“오른쪽 팔은 어떠세요?”라는 뜻밖의 질문에
“선생님이 제 오른쪽 팔이 아픈 건 어떻게 아세요? 저는 다리만 말씀드렸는데.”
“환자분. 작년에 본 스킨 촬영하고 손 교수님께서 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여기 보세요. 오른쪽 어깨와 대퇴골 윗부분이 검게 보이잖아요. 작년부터 있었네요.”라는 말씀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크게 뭔가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럼, 골수암이 맞는 건가요?”
“가능성이 크지요. 저는 종양 쪽이 아니니 제가 송교수님과 의논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내일은 석가 탄신일이니 목요일에 빠른 판독 요청해서 송 교수님 만나보고 병실로 갈께요.”
기다리는 이틀은 나에게 정말로 지옥이었다. ‘아니기를 바라는 희망 회로와 정말이면 어쩌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수천수만 번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결국, 나는 무조건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이번 결과를 기다리면서 나는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병원의 복잡한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문제점으로 환자가 겪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 있었다. 이때 환자는 자신의 건강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질문하고,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