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불안하면 아이들도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내가 감정코칭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때는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 작은 애가 유치원생이었을 때다. 그때는 단순히 아이들을 야단치지 않고도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 만드는 방법이 궁금해서 감정코칭을 배웠다. 감정코칭은 아이가 어떤 감정을 내비쳐도 어른이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래. 그런 마음 들 수 있어. 엄마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겠다.’라고 인정해 준 뒤 ‘그렇지만 방금처럼 물건을 던지거나 동생을 때리는 게 아니라 더 좋은 방법으로 네 마음을 표현하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며 아이가 스스로 감정적인 상황을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아이를 양육하면 어떤 일이 닥칠 때마다 매번 엄마가 옆에서 도와줄 필요 없이 아이가 여러 인생 문제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잘 성장해갈 수 있다. 배우고 실천하면서 정말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양육 방법이고 아이와 부모가 좋은 관계를 맺는 훌륭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문제는 이론은 정말 간단해도 실제 일상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이었다.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울 때처럼 여러 번 넘어지면서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결국은 엄마인 내가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자꾸 해보면서 아이의 감정을 포착하는 거,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거, 적절히 반응해 주는 거 등 차츰 내공이 쌓이게 되고 이제는 아이들하고 잘 소통하는 엄마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로 흥분했다가도 엄마가 자기감정을 잘 알아주고 들어주면 금방 자기를 진정시키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날씨처럼 변하는 게 감정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감정을 비가 오는 날처럼 우산을 받치는 것처럼, 바람 부는 날 겉옷을 입는 것처럼 적절하게 반응해 주니 나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아이들도 웃었다, 울었다 하며 자연스럽게 잘 크고 있다. 아이들은 그새 십 대로 접어들었고 청소년기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심각하게 방황한다거나 크게 부모와 갈등한다거나 하는 일 없이 밝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니까 그저 부모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인생의 큰 문제를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바로 청소년기의 가장 큰 과업인 자아정체성 찾기이다. 큰 아이 같은 경우 딱히 고민거리 없는 편안한 일상을 살고 있는데도 한 번씩 우울해하고, 괴로워하고 그런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잘하는 것도 하나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하나도 없고, 친구들은 다 특별한 재능이 하나쯤은 있는데 자기는 그런 것도 없다, 스스로가 너무 보잘것없다… 뭐 이런 이야기다. 그런 게 마음에 걸리고 우울하면 아무거나 뭐 하나라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 보면 자신감이 생길 것 같은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뭘 시도하지는 않는다. 뭐든 처음 익히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엄마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한 일이다.
감정코칭에서는 아이의 어떤 이야기도, 어떤 감정도 비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들어주라고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맞장구 쳐줘 가면서 잔소리나 훈계하지 않고 들어만 주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는 날도 있고, 결국은 한 소리 하게 되는 날도 있고 그렇다. 가만히 들어보면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급 우울해지면서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으니 엄마 입장에서 깊이 공감하기가 어렵다. 성적이 떨어져서 하는 고민도 아니고 고작 컴퓨터 게임이 잘 안 풀린다고 난 잘하는 게 없다, 틀려먹었다, 인생 때려치우겠다, 이러면서 징징대니 엄마로서 사실 공감이 별로 안된다. 그래도 힘을 내서 그렇구나, 정말 속상하겠다, 뭔가 내 마음대로 잘 안되면 누구나 그런 마음 들 수 있어, 게임 자꾸 지면 정말 답답하지.. 하면서 억지로 맞장구를 쳐 주고 있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작은 아이는 이런 고민마저도 안 하고 있다는 점이다. 큰 아이는 하루 종일 게임하다가 게임이 잘 안 풀리고 하루가 허무하게 지나가 버릴 때, 난 정말 쓸모없는 사람인가,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 뭐 잘하는 것도 하나도 없고… 이러면서 인생에 대한 고민이라도 하는데 작은 아이는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서도 이런 문제의식조차도 없다. 그냥 학교 선생님이 숙제 많이 안 내주시기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좋은 게임 아이템 하나 득템하기를 바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잘 살고 있다. 이런 작은 아이를 보면, 그나마 큰 아이는 자기 인생에 대한 고민이라도 하는구나, 내가 보기에는 영 한심해 보여도 아이 나름대로는 열심히 자라고 있구나 하면서 좋게 좋게 봐주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엄마가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그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 같다. 엄마가 뭔가 불안해하거나 결핍이 있으면 아이는 정서적으로 부모를 돌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엄마가 뭔가 불안해하니까 자신이 뭔가 열심히 하거나 엄마의 이상향이 되어 주면서 엄마의 불안을 덜어주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는데 방해가 된다. 나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기보다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커서 겉보기에는 좋은 학교 졸업하고 좋은 직장 다니면서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속은 허전하고 남의 인생을 사는 것 같은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정서적으로 공허한 상태에서 엄마가 되면 다시 자기 자녀가 엄마의 공허감을 채우게 만드는 악순환을 대물림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건강하고 마음이 넉넉하면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채워 주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정말 자기의 진짜 모습대로 살 수가 있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찾지 못한 거 같아 보인다. 하지만 어른들 중에도 자기 정체성에 대해 잘 알고 사는 사람이 드문데 아직 십 대밖에 안된 아이들은 당연히 자기 정체성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자기 모습이 그렇게 근사해 보이지 않아서 속상하고 낙담하고 있는 아이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그런 과정 중에 점차 자기 자신이 또렷이 보이는 날도 오리라고 기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엄마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 마음 잘 살피고 챙기면서 아이를 기다려주고 싶다. 오늘도 소소하게 게임 아이템 속에서 기쁨을 찾으며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내 사랑의 마음햇살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