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안중근의 그 순간
김훈 작가가 안중근 열사의 짧고 강렬한 생애를 모티브로 한 책을 썼다. 제목도 짧고 강렬하게 <하얼빈>이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에 가깝다. 김훈 작가 특유의 건조하고 담백한 문체는 안중근 열사가 이토 히루부미를 저격한 그날,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고 있다. 독자들은 작가의 펜 끝에 이끌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으로 순간 이동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을 고르게 쉬기 어려울 만큼 긴박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가 이어진다. 안중근의 속마음이나 감정보다는 그저 안중근이 말하고 이동하고 했던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 느낌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더 깊은 감정과 감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책의 내용은 안중근 열사의 어린 시절부터의 일대기가 아니라 안중근 열사가 이토를 저격한 그날의 전후만을 짧게 다루고 있다.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김훈 작가는 안중근 열사의 청춘을 주목해서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 김훈 작가가 안중근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50년 전이라고 한다. 그때가 마침 김훈 작가의 청년 시절이다. 김훈 작가는 박정희의 유신정권이 시작되기 전해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정권의 언론 탄압이 극심했다. 언론이 자유롭기 어려운 시절 신입 기자로 원고를 써야 했던 청년 김훈에게 안중근의 청춘은 눈부시게 푸르고 자유로워 보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김훈은 안중근을 품었다고 한다. 무려 50년의 세월 동안 매일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안중근을 품고 이제야 글로 안중근을 살려 내었다고 했다. 김훈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하얼빈>을 읽으며 안중근 열사의 청춘과 김훈 작가의 청춘 그리고 나의 청춘이 동시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그 순간보다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이후 재판과정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책을 썼다고 밝혔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던 안중근이 왜 이토를 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가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그 사건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행위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의 시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테러범이고 한국의 입장에서는 열사다. 그렇다면 안중근 본인의 입장은 무엇인가. 김훈 작가는 그것을 책에 담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안중근은 내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으나,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토는 제국주의의 폭력과 야만의 상징이다. 안중근의 총알은 차분하고 평화적이었다. 당시 야만적으로 패권 경쟁을 하던 제국주의 열강들은 안중근의 총보다 안중근의 말이 무서웠을 것이다. 안중근의 폭력보다 안중근의 기개가 제국을 떨게 했다. 청년 김훈이 청년 안중근을 우러러볼만했다.
책에는 안중근 열사의 거사에 대해 일본의 입장과 한국의 입장, 그리고 안중근 본인의 입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지켜본 천주교 교단의 입장과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주임 신부의 입장이 엇갈린다. 그리고 안중근 아내의 입장과 안중근 어머니의 입장도 있다. 안중근과 함께 거사를 도모한 우덕순도 있다. 안중근의 자식들은 나중에 일본에 자신의 아버지가 한 행동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한다. 한 청년의 푸르른 기상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입장과 마음을 살피며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사건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 결정은 어려웠다.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과 생각들 속에서도 역사와 개인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을 읽었다는 감상은 확실하다. 역사와 공동체 속에서 개인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