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막 엄마가 되었을 때는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게 참 많았던 것 같다. 건강한 식사, 좋은 옷, 깨끗한 잠자리, 알록달록 예쁘고 재밌어 보이는 장난감으로 아이 방을 채웠다. 아이가 자라면서 좋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어서 좋은 책, 좋은 선생님, 괜찮은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헤맸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고, 너무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방향을 결정하기 어려웠다. 이것 저것 다 욕심내니 마음이 너무 복잡해지고 힘들어서 정말 부모로서 아이에게 꼭 제공해주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아이를 위해 물질적 환경을 좋게 해주는 것은 끝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어느 정도 좋아야 좋은거라는 기준이 애매하다. 요즘 나오는 아이들 옷은 다 품질이 좋았고 왠만한 장난감은 다 훌륭하다. 물질적 환경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내 아이가 더 잘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뒤쳐지지는 않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를 몰아세웠다. 그러다 보니 조급함, 불안함, 압박감 등 괴로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엄마 마음이 각박해지면 아이에게도 결국 해로울 것 같아서 나는 내 마음이 산란하게 만드는 수많은 정보로부터 나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너무 많은 정보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어서 더 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의견은 하나도 안 듣고 내 생각대로만 아이를 키우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해외에서 혼자 아이를 키워야 했고, 여기가 딱히 선진국도 아니었기 때문에 불편한 게 많았고 낙후된 게 많았고 그래서 더 모든 일에 불안하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믿고 따를만한 멘토가 필요했다.
그럴 때 내가 찾은 분들이 조벽.최성애 박사님 부부다. 두 분께서는 자녀한테 꼭 필요한 환경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다 그냥 금수저를 부러워하지만 사실은 '정서적 금수저'가 진짜 금수저라고 하셨다. 그런 아이들이 미래 사회 인재가 될 거라고 하셨다. 아이들을 정서적 금수저로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가 행복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된다. 안 그래도 해외에서 없는 살림 솜씨로 아이들을 키우려니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이것 저것 다 하지 않아도 되고 엄마 마음 편한 것이 아이들한테 가장 좋다니 이게 제일 나한테도 유리하고 좋은 길인 것 같았다.
한국 식재료 사기도 힘이 드는데 너무 훌륭한 요리 블로거들의 멋진 상차림을 흉내려다 보면 없는 요리실력에 자괴감만 든다. 심지어 아이들은 건강에 좋은 식사에는 관심도 없었다. 힘들여 만들어 놨는데 아이들이 맛있게 안 먹어주면 좋은 음식은 괜한 잔소리의 씨앗이 되어 버린다. 그럴듯한 상을 차리고 편식을 바로잡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냥 적당히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식단으로 간편하게 먹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만큼 상을 차리고 대신 잔소리 안하고 웃으면서 밥을 먹는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훨씬 좋았다.
우리집 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어서 얌전히 놀아야 하는 좋은 옷보다는 함부로 입어도 괜찮은 싸구려 낡은 옷을 더 편안해했다. 괜히 해외 배송까지 해서 품질 좋은 아이 옷을 사 오는 쓸데없는 수고는 더 이상 안하기로 했다. 엄마한테나 깨끗한 집이 필요하지 아이들한테는 집이 어질러질수록 재미가 있다. 싸우지 말고 서로 배려해가면서 제발 사이좋게 놀아주기를 바랬지만 아이들은 싸우면서 나름 갈등조율과 협상을 익혀가며 잘 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차츰 평소에 내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던 모든 기준을 하나씩 버리고 그냥 그때 그때 아이들하고 맞춰가며 최대한 화만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럭저럭 무탈한 하루를 만드는데만 최선을 다했다.
결국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그리고 아이가 행복해야 엄마도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가정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밝고 평화롭고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만들어내는 게 어렵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더더욱 밝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가정 분위기를 만들지 못할만한 이유가 하루에 100개도 넘게 생긴다. 아이들은 매일 싸우고 집은 항상 폭탄맞은 집처럼 어질러지고 할 일은 정신없이 쏟아지는데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문제는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하나님이라는 데 있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거의 하나님 수준인데 엄마는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 아이들한테는 엄마의 기분이 그 날의 날씨다. 엄마가 화를 내면 아이들한테는 집 안에 번개가 치는 셈이고, 엄마가 울면 집 안에 비가 내리는 셈이다. 반대로 엄마가 웃으면 아이들한테는 온 집안에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는 셈이다. 엄마가 신나게 아이들하고 놀아주면 아이들한테는 온 집안이 디즈니랜드같은 테마파크로 변한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이다. 엄마 역시 바깥 환경에 따라 그 날의 기분이 결정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아이들이 아무 걱정없이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내 감정조절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엄마에게 너무나 큰 부담인 것 같다.
마침 긍정성에 관해 연구한 학자가 있다. '바버라 프레드릭슨'이라는 학자이다. 바버라 프레드릭슨이 쓴 <내 안의 긍정을 춤추게 하라>라는 책에서 다음 10가지의 긍정 감정 단어를 제시하고 있다.
기쁨, 감사, 평온, 흥미, 희망, 자부심, 재미, 영감, 경이, 사랑
바바라 프레드릭슨은 우리가 일상에서 위와 같은 긍정 감정을 슬픔, 두려움, 분노 같은 부정 감정보다 3배 정도 더 많이 느끼는 상태가 바로 '티핑 포인트'라고 말한다. 이런 '티핑 포인트'를 만나면 내 내면에서 긍정정서가 활짝 꽃을 피워서 우리는 마음먹었던 좋은 행동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마음 안에는 긍정정서가 어느정도 있다고 해도 그것이 부정정서보다 3배까지 높아지지 않으면 그것은 실제 좋은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엄마들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준다. 아무리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도 그것이 부정적인 마음보다 3배까지 높아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인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긍정적인 마음을 부정적인 마음보다 3배까지만 높이면 그러면 내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내 마음에 긍정정서를 부정정서보다 3배까지 높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상에서는 부정성이 쌓일만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상황 가운데서도 차분하게 위 10가지 긍정 감정들을 억지로라도 깊이 느끼며 그 마음을 잘 간직해보자. 마음에 행복의 씨앗을 뿌리고 나서도 그 씨앗에 햇빛과 물을 주지 않으면 싹도 틔워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서 자라 꽃을 피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동안 꾸준히 햇빛을 쪼여주고 물을 뿌려주는 돌봄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위 10가지 감정을 느낄만한 일들을 놓치지 말고 잘 쌓아나가보자.
나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한 티핑 포인트는 긍정성 : 부정성 = 3 : 1이라면 가족 전체의 행복을 위한 긍정정서의 비율도 있을까? 미국의 존 가트맨 박사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안에서의 행복에 관해 연구한 관계심리학의 대가이다. 가트맨 박사에 따르면 행복한 가정의 긍정정서의 비율은 부정정서의 20배라고 한다. 이렇게 행복한 가정 안에서는 심지어 서로 의견이 대립해서 갈등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긍정정서가 부정정서보다 5배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관계 안에서 긍정성을 높이는데 필요한 요소는 호감, 존중, 감사, 배려이고 반면에 관계 안에서 부정성이 쌓이는 요소는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이다.
호감, 존중, 감사, 배려 vs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마음은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데도, 혹은 말도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아이에게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 할 일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제법 복잡한 것까지 알려줘야 하는 게 참 많다. 하루종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겨주면서 틈틈히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 줘야 하고 바로잡아주다 보면 아차 하는 사이에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를 너무나 쉽게 하게 된다.
만약 그동안 아이들한테 은근히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를 많이 해서 우리집 전반적인 분위기에 긍정정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오늘부터 긍정정서를 높이는 작은 노력들을 해보자. 긍정정서를 높이는 방법은 사실 어려운 게 아니다. 자기 기분을 잘 살피고 아이들 기분을 잘 살피면서 서로 기분이 좋아지는 아주 사소한 일들을 조금씩 자주 매일 꾸준히 실천하면 된다.
예를 들어,
✔ 식구들이 아침에 등교하거나 출근할 때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는 것
✔ 하교하거나 퇴근할 때 반갑게 맞이하는 것
✔ 일상에서 감사함을 자주 느끼고 나누는 것
✔ 서로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말을 건네는 것
✔ 소소한 하루 일과나 오늘의 기분을 물어봐주며 서로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것 등
사소하지만 서로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일들을 목록을 나열하자면 여러가지가 있다. 이런 일들을 평소에 열심히 실천한다면 집안에는 조금씩 조금씩 긍정정서가 쌓여갈 것이다. 정서 통장이 채워지는 것이다.
조벽. 최성애 박사님은 아예 이런 일들을 루틴으로 만들어 실천하라고 제안하셨다. 교수님 부부는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일어난 사람이 배우자의 손발을 주물러주며 부드럽게 깨워주고 출근하면서는 따뜻하게 포옹하며 헤어지고 다시 만날 때는 기분 좋은 인사말을 주고 받는다고 하신다. 퇴근해서 돌아와서는 아침에 늦게 일어난 사람이 이자 붙여서 어깨나 손발 등을 주물러주면서 오늘 있었던 일과 기분을 물어봐 주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이런 작은 실천들이 바로 호감, 존중, 감사, 배려를 쌓아나가는 방법이다. 이런 실천이 일상이 된다면 정말 가족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 같았다.
가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 루틴을 만들어 실천해 본 내 소감을 말하자면 어쨌든 안 하던 행복루틴을 만들어서 실천하기 시작하면 집 안 분위기는 좋아진다. 하지만 루틴은 루틴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패턴이 너무 똑같은 행복 루틴은 일상이 되면서 조금 뻔해진다. 매일 매일 약간의 변화를 주는 창의성도 필요한 것 같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한테 던지는 인삿말을 매일 똑같이 하지 말고 조금씩 바꿔보자. 되도록이면 진심을 담아 진정성있게 따뜻한 말을 건네보자.
✔ 잘 다녀와�
✔ 오늘따라 멋지네 우리 아들~�
✔ 사랑해❤
✔ 오늘도 좋은 하루~!
가정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이의 기본정서를 만든다. 기본정서란 평상시 아무 일이 없을 때 기본적으로 느끼는 감정 상태를 말한다. 사람마다 기본정서의 수준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평상시 기분이 비교적 긍정적인 편이고 어떤 사람은 평상시 기분이 부정적인 편이다. 연구에 따르면 행복도 습관이고 행복의 기본값은 사람마다 어느정도 정해져 있어서 어떤 일을 겪고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거나 나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기 자신의 기본정서 설정치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이런 연구는 아이들에게 현재의 괴로움을 참고 견디면 나중에 행복해질 거라는 어른들의 일반적인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내용이다. 현재 괴로운 사람은 괴로움이 기본정서의 설정값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도 괴롭기가 쉽다. 현재 행복한 사람은 행복함이 기본정서의 설정값이 되기 때문에 살면서 어떤 역경과 시련을 겪고 일시적으로 불행을 느꼈다가도 곧 행복한 자기 자신의 기본정서 상태로 잘 되돌아온다. 이것이 회복탄력성의 원리이다.
이렇게 행복의 설정치를 높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 인생의 모든 순간에 평생토록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일을 겪더라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아이 내면에 행복 설정치값을 높여주는 것이 실제 물질적인 환경을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것보다 안정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다.
물론 공부 안하고 놀면서 마냥 행복한 아이를 지금 행복하니 나중에도 행복할 거라며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은 아니다. 일단 지금, 여기, 나에 만족하고 감사를 느낀 후 어렵거나 하기 싫은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조벽 교수님은 아이에게 꿈은 꾸도록 허락하되 조금씩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로 도우라고 표현하셨다.
꿈은 해맑은 아이의 긍정정서를 의미할 것이고 비전은 힘들고 어려운 일에도 도전할 수 있는 긍정정서를 의미할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비전을 강요하다가 꿈마저 잃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주변 이야기에 휩쓸려서 지금, 여기, 내 아이를 보며 내심 불안하고 불만족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래도 불안함, 조급함, 답답함,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에 지지 않고 아이에게 사랑, 감사, 기쁨, 경이 등 긍정적인 감정을 매일 쌓아나가면서 배운대로 감정코칭을 실천해봤던 것 같다.
오늘 우리집 전체적인 감정날씨는 어떤가? 나는 지금 이 순간 내 아이에게 어떤 정서적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나? 아이가 천진난만한 자신만의 꿈을 잘 간직한채로 세상을 밝히는 비전을 잘 세우도록 도와주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고민거리는 많지만 너무 많은 생각에 매몰되지는 않기로 한다. 생각은 모든 걸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니까. 그냥 내 느낌대로 지금 이 순간 나도 조금 더 행복하고 집안 분위기도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면 그 뿐이다.
오늘도 작은 실천을 하며 우리집 정서통장에 땡그랑!하고 행복을 저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