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히어로의 똥 닦는 법.
엄마도 아이도 학교 적응이 한창이다. 일곱 살 때는 유치원에서 가장 형님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그렇게 크고 듬직해 보이더니, 학교 교문을 넘어가는 일학년 아이의 뒷모습은 조그마하고 귀엽기 그지없다. 학교에 가면 40분 동안 잘 앉아는 있는지, 선생님 말씀을 듣기나 할지 걱정이 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참고로 아이가 다녔던 유치원은 생태 유치원이라 매일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세먼지가 몰려오나 바깥 놀이를 나갔다. 밭에 나가고, 놀이터에 나가고, 숲에 다녀오느라 운동화가 똥색이 되고 손톱 밑에 때가 잔뜩 끼어 오기가 일쑤였는데, 교실에 실내화 신고 앉아있을 아들을 생각하면 가엾기 그지없다. 아이는 힘을 못 빼 밤잠을 못 이루고, 나도 덩달아 뒤척인다. 아이의 체력은 넘쳐나고, 나의 체력은 한 없이 고갈되는 이 시기, 적응기가 지나면 괜찮아질까.
다 큰 일곱 살인 줄 알았는데 아직 가르쳐줘야 하는 것 투성이인 아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가장 큰 걱정이 똥 닦기라는 것이,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이야기이다. 밖에서는 큰 일을 보지 않는 아이이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것은 절대 참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며 여덟 살이 되고부터는 스스로 닦도록 하고 있는데 자꾸 엄마를 불러 대는 통에 그리고 자칫하면 똥빤쓰를 빨아야 하니, 그것도 그것대로 고역이라 아이의 똥 닦기는 엄마와 아이에게 숙제로 남아있었는데, 이 책을 만났다. <슈퍼 히어로의 똥 닦는 법>
책은 아주 다정하다. 휴지를 몇 칸 뜯어야 하는지, 정답은? 여섯 칸, 배가 아파 설사를 했다면 더 뜯어야 한다고도 알려준다. 똥 닦는 자세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자세인지, 손은 왜 씻어야 하는지 리얼한 사실을 다정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생각해 보면 나도 알려주긴 알려주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책을 읽어주는 것만큼 친절한 모드로 알려주진 못 했음을 떠올리고는 반성했다. 안 친절한 모드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다그치고, 짜증도 내고, 신경질을 냈던 것도 인정한다.
책의 주인공은 똥 닦기를 집에서도, 학원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그러자 사부님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곳은 잘 없지.라고 주인공을 다독인다. 크게 공감했다. 나도 살다 보니, 은행업무, 부동산 업무, 세금 관련 업무를 배워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마땅히 배웠어야 할 부분인데 나는 뭘 배운 거지? 매 끼 밥에 허덕이며 한 끼 한 끼 넘기며 살아보니, 밥이라곤 앉힐 줄도 모르면서 세끼 꼬박꼬박 반찬, 국, 찌개에 투정을 부리는 일부 가부장의 모습에 분노하기도 했다. 아니, 저 나이 먹도록 자기가 먹는 밥 하는 것도 안 배우고 뭐 한 거야?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들을 우리는 잘 가르치고, 배우고, 알아 나가고 있는지, 아이에게 무얼 가르치고 나는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무척 철학적인 생각에 까지 이르게 한 이 책이었다.
큰 아이에게 연속 수 쓰기를 시키고 있다. 나는 아이가 100까지 세고 쓸 줄 알길래 당연히 200까지도, 300까지도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100 다음에 200인지, 110인지, 101인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식하고도 완전한 방법, 1부터 쓰기를 시작했다. 하루에 100씩 쓰기로 했다. 100 다음엔 101, 200 다음엔 201, 을 차분히 배워 나가더니 1000까지 써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엄마, 오늘은 2000까지 쓸 거야.라고 하는 아이. 무슨 일인가 봤더니 1099 다음에 2000이라고 써 놓고는 흐뭇해하고 있었다. 지우개를 들고 가 1099 다음에 2000이 아니라 1100이라고 알려주니 실망이 가득한 눈빛이다. 그렇게 아이는 숫자를 1씩 늘려가며 3000까지 썼다. 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아직도 똥 닦기에 미숙하지만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학교 적응에 필요한 것들은 공부가 아니고 젓가락질하기, 물병 잘 닫기. (입학 이틀 만에 물병을 덜 닫아 가방과 공책, 가정통신문을 흠뻑 적셨다.) 우유팩 따기, 주스병 열기 등이다. 정말 다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다. 아이의 공부도 봐주지만 학교 적응을 시키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잘 가르쳐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똥 닦기로 시작된 다짐이지만,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공부만이 아닐 테니, 국영수에 묻혀서 사는 법, 살아남는 법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