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과 화해력 사이.
얼마 전 한국영화 한 편을 봤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과자를 아작아작 먹고 있어서 그런가 싶어서 과자를 살살 씹었다. 그래도 잘 들리지 않았다. 과자 먹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잘 들리지 않았다. 영화관 만한 사운드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곯아떨어진 시간이라 볼륨도 어느 정도는 들릴 만한 수준으로 조정이 되어 있었는데도 잘 들리지 않았다. 자막이 절실했다. 하지만 자막 옵션은 없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한국 영화든, 외국 영화든, 드라마든 예능이든 모든 콘텐츠들을 다 자막 on 상태로 보고 있었다는 걸. 언제부터였을까.
자막을 켠 상태로 보고 있으니 과자를 아작아작 씹어먹어도 대사를 안 들리는 일은 없었다. 대사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배우의 대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막으로 다 읽었을 것이다. 어떤 프로그램은 1.25배나 1.5배속으로 보기도 한다. 주로 영상이나 감정에 몰입이 적은 정보전달 위주의 콘텐츠들을 그렇게 본다. 소리는 음소거로 하고 자막만 켜고 보기도 한다. 나는 글씨를 빨리 읽어내니 아무 문제가 없다. 자막, 나는 영상을 보면서도 글씨를 읽고 있었는데 그게 꽤 익숙해져 버렸다. 편하게 생각했다. 과자 먹는 소리에 대사를 놓칠 일도 없었고, 배우의 독백이나 액션물처럼 여러 현장음이 섞인 장면에서도 대사가 잘 들리지 않을 일이 없었다. 편하게 생각했다.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자막을 넣으면 애써 만든 영상에 집중도가 떨어질까 봐 주저한다고 하지만, 영상미나 연출에는 까막눈인 나로서는 자막은 고마운 존재였다. 내가 놓치는 구멍들을 메워 주고 있었으니.
나는 그림보다는 이야기, 글씨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아는 배우의 아는 얼굴만 보일 뿐, 신인 배우의 얼굴이 익숙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고 스타일링이나 메이크업 같은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저 어떤 이야기인지, 어떤 대사가 마음을 찌르는지,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잡는데 집중하는 편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 외모나 풍경에 대한 묘사가 나올 때 눈에 훤히 그려지진 않는다. 다만 참고가 될 뿐. 엄마는 그림도 없는 책을 무슨 재미로 봐? 하는 물음에 응, 상상하면 다 보여 라고 얘기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저 스토리만 헉헉 거리고 쫓아가며 읽었던 건 아닐까. 상상이고 나발이고
아이들과는 그림책을 주로 본다. 글밥이 많지 않은 그림책이다 보니 읽는 것은, 읽어 주는 것은 별 일이 아닌다. 하지만 여기에서 엄마의 문해력, 아니 화해력이 드러나고 만다. 글씨보다 그림이 익숙한 아이들은 그림에서 온갖 것들을 읽어낸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림책 주인공의 표정이 바뀌어 있고, 소품이 달라져 있고, 피부 톤이 미세하게 붉어져 있고, 배경의 꽃과 나비들이 살랑이고 팔랑이고 있으며 개미가 웃으며 기어가고 있다. 사실 좀 귀찮아서 빨리빨리 글을 읽어주고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은데 아이들의 그림 읽기에 발목을 잡혀 아이들이 읽어주는 그림을 보다 보면 나는 이 그림책을 얼마큼 이해하고 있을까, 읽고 있는 것은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글씨만 읽고 책장을 덮는다면, 난 이 책을 읽은 것일까 아닐까.
오랜만에 자막 없는 한국영화를 보니 낯설었다. 토종 한국인이 한국영화를 보는데 자막이 필요하다니, 웃긴 일이다. 자막을 함께 보는 것이 익숙해져 영화 역시 읽고 있는 줄도 모른 지가 어느새 꽤 되었다. 정말 영상제작자들의 우려처럼 나는 애써 만든 영상을 놓치고 그저 글씨만 쫓았는지도 모르겠다. 자막이 있다가 없으니 불편했다. 과자 먹기를 멈추고 가만히 집중해서 대사를 들었다. 몇 대사는 놓쳤다. 내 한국어 듣기 능력이 이 정도뿐이었나, 그러다가 몰입이 되니 대사들이 다 들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자막을 먼저 읽고 핸드폰을 보기도 했고, 자막을 읽으며 과자를 먹기도 했으니, 영상이나 대사의 톤, 작은 독백, 한숨소리, 미묘한 탄식 같은 디테일을 많이 놓쳤을 것 같다. 그것마저 여유가 없을 때에는 1.25나 1.5배속으로 빨리 감기를 해서 봤으니 영상제작자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아쉬워을까, 마치 애써 차려 낸 한 상에서 쌀밥만, 훌훌 떠먹고 배부르다고 일어나 버리는 아들놈들을 보는 내 마음과도 같지 않았을까.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막 삽입을 망설이는 이유가 십분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자막을 꺼 놓고 보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도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산만했는지, 핸드폰도 보고, 과자도 먹고, 물도 떠먹고 오고, 애들 잘 자나 귀를 딴 쪽으로 기울였는지 그래도 한 번 자각을 했으니 가끔 자막 없는 영상을 만나면 가만히 더 집중하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읽어내는 아이들의 화해력이 새삼 부럽다. 글씨만 빨리빨리 읽어주고 책장을 얼른 덮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을 조금 반성한다. 가끔은 아이처럼 찬찬히 살펴보고, 가만히 귀 기울이고, 완전히 몰입하는 연습이 필요한 나이가 다시 되었다. 바로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