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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24. 2024

우리 집 감자 이야기

‘갓’ 감자의 맛.

감자철이 지나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새삼 제철 음식이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그래도 초여름을 시작으로 쏟아져 나오는 감자, 그 달큰하고 포실한 맛도 한여름을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며 한 꺼풀 시들해지는 듯 하다. 사실 초여름이나 지금이나 덥기는 마찬가지, 감자가 흔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냥 마음, 심경의 변화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벌써 햇 밤고구마가 보이기 시작하고, 햇사과, 햇배, 그러면서 가을로 접어들으리, 하는 기대, 이 길고도 지루한 더위가 어서 물러갔으면 하는 바람, 그런 것들이 아닐까.


우리 집도 감자철을 보냈다. 한두 박스씩 쟁여두고 먹어치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을 보다가 잘생긴 감자를 보면 홀딱 반하듯이 사들고 와 몇 날 며칠씩 두고만 보기도, 바로 요리해 먹기도 하였다. 이제는 잘생긴 감자를 봐도 그렇게 설레지는 않으니, 감자의 제철이 지나가고 있음을 한 번 더 느낀다.


쫀득한 감자채전

우리 집엔 네 식구가 사는데 누구도 감자를 주로 하는 반찬을 좋아하여 즐겨 먹진 않는다. 아직 칼칼한 양념을 못 먹는 아이들은 단짠단짠 하게 졸인 감자조림이나 햄감자볶음 정도의 반찬을 먹을 수 있지만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카레라이스에 들어간 감자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감자조림은 별로 손을 대지 않고, 햄 감자볶음에선 햄만 골라먹으니 나도 굳이 감자로 반찬을 해 주진 않는 편, 아이들의 최애는 감자채전이다. 채 칼로 감자를 쓱쓱 밀어 얇게 채를 쳐서 그대로 소금 간 조금 해서 부쳐도 되고, 아니면 물에 담가 전분기를 뺐다가 부쳐도 되는데 그냥 부치면 쫀득쫀득한 맛이 나고  물에 담갔다 부치면 바삭한 맛이 좋다. 이렇게 감자채 전을 부쳐주면 감자 채전만 먹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주로 어느 주말 아침에 각 잡고 감자를 여러 개 잡아 감자 전을 한껏 부치면 아침 겸 점심으로 감자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엄마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엄지 척이다. 불의 열기에, 기름 냄새에 정작 나는 감자전을 별로 먹지 않고 아이스커피만 줄창 마셔대는 주말이지만 이 보다 맛있는 브런치가 어디 있으랴, 이 한 몸 땀에 절어도 그 정도쯤이야 괜찮은 편.


뜨거운 감자

신랑은 그냥 찐 감자가 좋다 한다. 그도 어릴 적에 엄마가 해 주던 간식의 맛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그냥 솥에서 쪄 준 감자를 소금만 찍어 먹어도 그 맛이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어느 저녁, 퇴근하여 들어온 신랑에게 감자를 쪄 주었더니 한 여름에 뜨거운 음식이라면 질색을 하며 싫어하는 그도 호호 불며 잘 먹는다. 아이들은 찐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니 아빠가 맛있게 먹으니 저녁을 다 먹고도 왔다 갔다 하면서 한 입씩 얻어먹는다. 식어버린 찐 감자나,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찐 감자는 쳐다도 보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역시 갓 쪄낸 맛이 있는 모양이다. 순식간에 감자 몇 개가 순삭, 하지만 남아서 냉장고에 들어갔던 감자는 찬감자,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되었다는 슬픈 현실.


나의 샐러드 한 접시

나도 굳이 감자를 좋아하진 않는다. 입 짧은 아이들에게 지청구를 늘어놓을 자격이 없는 것이 나도 입이 짧아서 갓 부친 감자전, 갓 쪄낸 감자만 주로 먹고 커 왔고 감자를 먹으면 배가 불러 다른 음식을 못 먹으니 주로 다른 음식 위주로 먹는 편이었다. 어릴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크고 나서는 더 자극적인 간식에 손이 가느라 감자는 뒤로 밀리고 햄버거 가게에서 파는 감자튀김이나 케첩을 양껏 찍어 먹는 정도라고 할까, 엄마가 해 주었던 감자조림과 감자채볶음은 맛있었지만 내가 하면 영 그 맛이 나지 않고 반찬을 딱 한 번 먹을 만큼만 하기도, 냉장고에 들어간 반찬을 먹기도 힘들어 감자 반찬보다는 샐러드를 해 두고 꺼내 먹는다. 반찬은 갓 만든 맛이 크게 좌우하지만 샐러드는 원래 차게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와도 별로 거부감이 없고 샐러드와 과일, 커피 정도로 부담 없이 한 끼 먹을 수도 있어서 감자를 쪄서 먹고 남은 식은 감자는 샐러드로 만들어 내 몫이 된다.


우리 집엔 네 식구가 사는데 감자 취향이 이렇게나 다르다. 아니 같을 지도 모른다. 갓 요리된 감자의 맛을 좋아한다는 것, 각자 엄마의 감자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같고도 다른 감자 취향, 감자가 흔히 보이는 여름이 지나고 있으니 곧 고구마에게 왕좌를 내주게 되겠지만 고구마도 어째 갓 구운 고구마만 인기가 좋으니 우리 집 식구들의 "갓" 요리 취향은 어쩔 수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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