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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01. 2024

부산, 빨간 뭇국의 맛.

잊고 있던 음식의 맛.

부산이 고향이신 아빠덕에 어릴 때부터 빨간 뭇국과 빨간 무나물을 자주 먹고 자랐다. 대파와 무가 잔뜩 들어가서 칼칼하면서 달큰한 소고기 뭇국과 새우젓과 돼지고기, 고춧가루로 맛을 낸 무나물은 다른 반찬 없어도 밥 한 공기 뚝딱 할 수 있는 우리 엄마표, 아빠를 위한 반찬이었다. 우리 집에서 늘 그렇게 먹으니 다른 집에서도 다 그렇게 먹는 줄 알았지 그게 경상도식인지는 전혀 모르고 자랐다.

아빠는 돌아가시고, 친정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을 일도 점점 없지고, 매운 거 못 먹는 나의 아이들의 밥을 해 주며 수도권에 살다 보니 빨간 뭇국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었지만 그것과 그것은 다른 것.


이번에 부산에 와서 저녁으로 숙소 앞 삼겹살집엘 가니 기본 찬으로 빨간 소고기 뭇국이 나왔다. 어머나, 이게 얼마만이야? 눈앞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뭇국의 자태에 넋이 나간다. 삼겹살이 채 익기도 전에 뭇국부터 후루룩 먹었더니 삼겹살 맛도 제대로 못 느낄 판. 부산까지 와서 회 한 접시 못 먹는 마음을 빨간 뭇국이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이런 맛이 있었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맛.

아이들은 맨 김 구운 것에 간장 찍어 먹는 맛에 푹 빠졌다. 조미김 아니면 김밥만 먹어보다 맨김에 싸 먹는 맛을 처음 본 것. 질기고 맛없다고 안 먹던 음식도 잘 먹는 걸 보니 그새 또 큰 건가 아니면 일곱 시간 물놀이의 시장기가 반찬인 건가 모르겠다.


전국 택배시대에 밀키트, 곳곳에 뻗어있는 프랜차이즈점이 있으니 이제는 향토음식이나 특산물의 개념이 모호해진 것 같아도, 그래도 그 지역에 여행 와야 만날 수 있는 맛이 있다. 그게 진짜 양념맛이든, 재료맛이든, 기분 탓이든, 시장기 덕이든 무엇이든 간에 여행 와서 먹는 맛은 집이나 동네에서 먹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게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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