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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성 리더 Oct 11. 2023

전국민 다 알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기(버킷리스트)

나를 믿는 순간 꿈은 현실이 된다 10화

난 당신이 사업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결혼한 거야.


돌이켜보면 정말로 내가 사업하는데 가장 힘들었던건 와이프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결혼함과 동시에 신혼 1년 간, 나는 와이프에게 매일 신혼의 달콤함을 속삭이기 보다는 매일 '나는 꼭 사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꿈을 이야기 하면서 내가 사업을 해야하는 이유들을 열렬히 이야기하며, 와이프를 매일 설득하고자 노력했지만, 나보다 5살 어린 우리 와이프님 생을 이기는 건 어려웠다. 각보다 더 완고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와이프는 당시 나랑 결혼을 결정한 건 내가 경찰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하필 왜 그 힘들다는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거냐며 와이프는 속상해했다. 결혼 전에 딱히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는데 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을 것이고 황당했을 것이다.


나의 어릴적 가난을 이기고 싶었고 그때부터 키워온 부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업을 해야 함이 맞다고 판단했다. 특히, 결혼과 동시에 가장이 되어보니 내가 그 당시 받고 있는 월급으로는 우리 가정이 원하는 삶을 살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고 나면 육아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 갈 것이 자명했다. 만약 아이를 낳으면 맞벌이를 하고 있던 와이프가 출산 이후에는 직장을 잠시 쉬거나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다닐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체 가계 소득은 줄어들 것이 뻔했다. 아이를 키워 보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을 통해 기저귀값, 분유값, 아이 봐주시는 이모님 인건비 등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이 월급으로는 부담스럽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이가 생기는 순간 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빨리 결정하여 내가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가장으로서 내 사업을 통해 조금이라도 여유있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오랜 설득 끝에 드디어 와이프의 허락을 받았다.


와이프와 많은 의견을 나누고 결국 사업을 해보자고 결론이 났다. 와이프가 나를 위해서 내 의견을 들어 줬으니 이제 반드시 사업을 성공시켜야만 했다. 사업이 실패하여 원망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사업이 실패하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죽기살기로 어떻게든 성공을 시켜야 했고, 의심하기 보다는 몸으로, 머리로, 하루하루 확신의 이미지를 만들며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잘 될 수 있을하까는 생각 뿐이었고, 예행 연습 없이 바로 행동으로 나서야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6개월 동안 가게 자리를 보러다니기 위해 주말, 밤낮 상관없이 쉬는 날, 퇴근이후 서울의 주요 상권을 돌아 다니며 가게 자리를 물색하였다. 마음에 드는 가게 자리가 있으면 잠복형사 마냥, 가게로 유입되는 사람들의 인원 수, 연령대를 나만의 방식으로 계산도 해보고, 손님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먹어 보면서 앞으로 생길 내 가게에 어떠한 것들을 도입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국에 있는 음식점이 내가 사업을 공부하는 현장이 되었다. 

창업 비용이 여유롭지 않았기에 대출을 받아야했고, 그 대출은 당시 다니고 있던 직장인 대출이라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높은 인건비과 자재비는 이미 계획했던 예산을 초과 했었고 준비해둔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많은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다. 직접 황확동, 을지로, 종로를 돌아다니며 직접 확보 할 수 있는 것들은 직접 했다. 어찌보면 지금의 셀프 인테리어인 셈이다. 그렇게 어렵게, 내가 원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발품을 팔아 10년전 시작된 첫 사업장은 지금도 운영 중에 있는 서울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한우 전문점 '백억하누'다. 임대차 계약을 시작으로 한 달 간의 공사 기간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공사가 끝나고 내 나이 33살 2014년 12월 20일 가오픈을 했다. 나도 사업이 처음인지라 하루하루가 설레임만 가득했었던 것 같다. 당시 거주하던 집이 경기도 김포여서 강남역까지 차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휴직 중에 있던 와이프와 열심히 준비를 하여 아침 7시에 나와 드디어 가게 오픈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던 첫 날, 출근 시간 내내 성공에 대한 부분 꿈과 대박을 꿈꾸면서 가슴 뛰는 하루가 시작되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 오픈 당시, 매장의 외부 인테리어를 떠올려 보면, 외부 인테리어랄 것도 없이 우리 가게의 간판 하나만 있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입간판, 베너, 현수막도 없이 어설프게 오픈된 상태였다. 여유자금이 없었으니까. 나중에 돈벌어서 하나씩 하니씩 채워 나가는 전략(아니 사실은 현실)으로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첫 날 인원은 나, 와이프, 주방이모, 혹시나 바빠질 수 있을 것을 대비해 알바생 한명을 오후에 불러놨었다. 오픈 첫날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은 한명도 오지 않았다. 가게 안에서는 오픈 첫 날이라 음식준비에 한창이였다. '가게 문을 열어놓으면 당연히 손님은 오겠지?'라는 자신감으로 보내다가 첫 날 점심 시간이 지나갔다. '무슨 자신감이였는지? 이게 맞나? 내가 괜히 하자고 했나? 이 상황이 지속되면 어떻하지?' 등등 근심 어린 걱정만 머리 속을 가득채무며 왠지 멍해졌다. 




허무한 점심시간을 보내고 저녁시간이 되었다. 


저녁 6시, 7시가 되어도 손님하나 없없다. 그야말로 파리 한마리 조차 없었다. 마침 연말이었고 강남이라 유동인구는 많았는데, 오픈 첫 날의 내 음식점은 오픈빨은 커녕 적막함이 가득했다. 오후에 바빠질 것을 대비해 불러 온 알바생은 오후 5시 출근하여 유리창만 닦다가 저녁 8시 정도 퇴근을 시켰다. 그 친구도 미안했는지 먼저 '제가 혹시 오늘 필요 없으면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라며 나를 위로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퇴근을 했다. 


전단지라도 들고 호객행위라도 해야했다. 이미 점심시간을 앞두고 그랬었어야 하는데...그 당시엔 무슨 자신감으로, 쪽팔림을 먼저 생각하며 가만히 매장만 지켰는지 모르겠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으로 전단지를 들고 나갔다. 매장 오픈 이벤트로 당시 제작한 전단지의 내용은 메뉴 중 하나인 한우국밥을 할인해주는 내용이었다. 한우국밥의 당시 가격이 5,900원이였는데 1,000원 할인해서 4,900원에 판매를 하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마스크를 많은 사람들이 쓰는게 당연시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을 때다. 하지만 나는 당시 마스크를 쓰고 롱 패팅과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전달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창피함을 줄이고자 했던 것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각자 가야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 하나 나에게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당연히 내 전단지를 받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겨울 추운 날씨, 주머니에서 사람들이 손을 꺼내 저녁 8시에 국밥을 먹겠다고 하는 자체가 지금 생각해 보면 헛웃음만 나오는 것이었는데, 온 몸을 꽁꽁 싸매고 가리며 전단지를 소심하게 내밀던 수상한 내 모습에는 더 받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저녁 8시가 넘은 시점에 퇴근하던 한 50대 아저씨가 내가 건네준 전단지에 관심을 보이며, 가게 위치를 물어보셨다. 너무 소중한 분이였기에 강남역에서 같이 이동하여 가게까지 안내했다. 가게에 도착해서 자리를 안내해 드리고 내가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 분에게는 내가 추운날 고생하는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 생으로 생각되었을지도 모르고 그런 딱한 나를 생각해서 와주셨을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이 고마운 손님 덕분에 내 사업 첫 날의 매출은 한우 국밥 1그릇 값 4,900원이었다. 아마 그 손님이 아니였다면 0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장소에서 10년을 운영해 온 나의 사업 브랜드가 '백억하누'이다. 




백억하누 브랜드를 전국민이 알게 만들고 싶다.


백억하누는 한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며 10년을 운영해 온, 현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B2B, B2C 판매는 물론,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확장하고 있는,  나의 모든 것이 투입된 나 자신이자, 내가 낳고 키운 브랜드이다. 그렇기에 백억하누 브랜드를 전국민이 아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백억하누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만 대략 200만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강남 본점의 매출 4,900원이었던 첫 날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강남 본점의 매출만 연간 30억이 넘는다. 


가끔씩 누군가는 나에게 질문을 한다. "얼마를 버는 게 목표예요?" 내가 회사원이라면 아마도 연봉 1억, 2억 등의 액수를 정해서 대답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수입의 목표를 묻는다면 나는 명확하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올해의 목표는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사업을 하는 것에서 최종적으로 생각하는 목표는 단순히 돈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최종 목표를 달성하면 돈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를 버는 것이 목표냐 보다는 궁극적인 비즈니스 목표가 뭐냐고 묻는게 더 적합한 질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비즈니스 목표를 누가 묻는다면,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의 브랜드 이름이 전국민이 알게 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 중에 하나는 마케팅이다. 모든 영역의 사업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게 잘되면 돈을 벌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마케팅 행위들이 가지는 목표에 있어 가장 꼭지점에 있는 중요한 목표가 바로 브랜드가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이게 되고 브랜드가 가치를 가지게 되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렇게 될 때 벌어들이게 되는 돈은 지금의 2배, 5배, 혹은 10배가 될 수도 있고, 그 꿈의 가능성이 매우 열려있으며 현실 가능성이 높다. 나는 백억하누 브랜드를 전국민이 알게되는 그 날을 매일 꿈꾸고 있고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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