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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철 May 30. 2024

일 잘하는 싹퉁바가지

사회 초년생이 가질 수 있는 패기

갑자기 신입 시절, 그 패기 어린 때가 생각이 나서 브런치를 끄적인다.


나는 12년 전에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첫 회사에서의 첫해 어느 날, 내 업무 가치관을 결정짓는 문구를 보았다.

화장실에서 본 거라 완벽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그 의미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은 비효율적인 시스템 안에서 효율성을 찾는 것이다.

으레 화장실에 붙여놓는 "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정도의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문구였지만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가슴 깊숙이 박혀있다.

아무래도 내 성격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회사의 윗선에서는 나를 싹퉁바가지로 볼, 바로 그 성격)


그때부터 나는 현재 업무 효율을 방해하는 것들은 없는지, 추가했으면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의했다. 동료와 상사를 설득했다.

운이 좋게도 첫 사수였던, 지금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당시의 과장님께서는 나의 이런 모습을 존중해 주었다. 꽤 많은 부분에서 내 의견을 수용해 주셨으나 때로는 더 윗선으로부터 내 의견이 방해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지만 수직적인 상명하달의 조직문화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선배는 대체 뭘 하셨나요?

내게도 곧 후배가 생길 거라고 했다. 너무 무서웠다. 나는 아직 이 시스템을 고쳐야 했다. 이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주기 싫었다. 그동안 내가 느껴왔던걸 후배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와.. 이 선배들은 이 거지 같은 시스템을 고칠 생각도 없이 그대로 답습해 왔네. 이러면서 일을 하라고?

최대한 좋은 유산을 물려주고 싶었다. 후배가 들어오면서 상사들에게 건의하고 설득하는 내 말투가 조금씩 세졌다. 얼마 전에 만났던 당시의 후배는 내가 부장님께 했던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부장님, 이런 업무 시스템을 후배들에게 계속 사용하게 하시는 거,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3~4년 차에 한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못났다. 건방지다.


왜 저렇게까지 강박에 휩싸여 나서려고 했을까 돌이켜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1. 하필 또 그 당시에 LG경영연구원에서 배포한 글에 영향을 받았다.

헛손질 많은 우리 기업들, 문제는 부지런한 비효율이다. - LG경영연구원 2014.07-

성실함과 유능함, 그리고 충성심으로 위장하고는 보여주기, 시간 끌기, 방해하기 등으로 힘과 자원을 낭비하는 '부지런한 비효율'로 인해 생산성이 높지 않다는 글이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분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안위만 신경 쓰며 개선을 위한 노력은 '긁어 부스럼'이 되어 자리보전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 보았다.

(아.. 너무 건방지다)


2. 나는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부터 완성되기까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였다. 반도체 칩 하나가 개발되려면 많은 부서(설계, 품질, 공정, 생산, 영업)가 협업해야 했다. 제조는 외주를 두었던 회사의 산업 구조상 외주 업체의 생산 일정을 늘 모니터링해야 했다.

한 스텝이 삐걱대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신경은 예민해지고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잘 굴러갈 수 있는 '효율성'이라는 키워드에 푹 빠졌다.


실무자로서 일을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맡은 직무가 '사람에 따라' 다르게 굴러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으면 누가 와도 잘하겠지'

시간이 지나고 후배들이 들어와 내가 매니저 직급으로 가게 돼도 후배들의 실무 능력에 대한 걱정이 없고 싶었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그래서 지금은 다른가? 잘 모르겠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많이 건방지고 일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지금의 나 역시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나름대로 건방짐은 꽤나 사라진 것 같지만 메타인지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회사를 다니면서 싫어하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못된' 사람이 아니라 '일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나 스스로를 일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방짐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 심어 놓았던 '효율성'이라는 강박 딱지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계속 어필하고 설득한다. 나이가 먹으니 건의와 설득의 대상이 '선배', '대리님', '과장님' 쪽에서 '경영진'으로 조금 높아지긴 했다.

회사의 업무 시스템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비효율성'과 '개선점'을 찾아다닌다. 바뀐 점이 있다면 세월이 흐르니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생겨 설득하는 말의 세기가 순한 맛이 되었다고나 할까.


신입사원이 들어오고 며칠이 지나면 물어보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혹시나 회사의 업무 시스템에 건의사항이나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있는지.

질문의 이유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어린아이가 제일 정직하고, 회사를 바라보는 눈은 신입사원이 제일 정직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변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업무를 대하는 내 성격이 싫지는 않다. (딱히 맘에 들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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