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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필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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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Dec 13. 2023

우리는 괴물이기에 서로를 희망할 수 없다

괴물 (Monster, 怪物)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3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괴물>.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9329


영화 <괴물>을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괴물>.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9329

언젠가 나의 아버지는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조롱한 적이 있다. 명절 특집 <스타킹>에서 어느 남자 댄서가 걸리쉬 댄스를 추고 있었고, 아버지는 나를 구태여 방으로 불러 저 모습이, 저런 춤을 추는 남자가 정상인 것처럼 보이냐고 물었다. 옆에서 이모부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춤을 배워본 적도, 어떤 무대를 꾸며본 적도 없지만, 언젠가부터 춤이라는 것은 내게 겸연쩍은 것이 되었다. 


어릴 적 겁이 많고 수다스러웠던 나는 남성이 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나는 아직도 '남성이 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잘 모른다. 부모님이 선택한 방법은 축구였다. 죽어도 가기 싫다고 수 차례 이야기 했지만 나를 강제로 끌고 가서는 풋살 클럽에 등록시켰다. 쾌 큰돈을 들여 풋살 용품을 샀다. 억지로 겨우 몇 번을 출석하고는 그 후로 온갖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이 일에 대해 사과하시곤 한다. 어머니의 사과가 없었더라면 나는 일찌감치 괴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괴물>.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9329

누가 괴물인가? 영화를 본 당신은 영화 속 어른들이 괴물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호리 선생은 아이들의 거짓말에 직장을 잃은 가여운 희생자일 뿐이다.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은 일을 크게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회인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심지어 교장 선생님이 저지른 일조차도 사랑하는 학교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서 일부 정당화된다.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사고로 죽은 미나토의 아버지는 이미 죽어서 없기 때문에 아무리 그를 괴물이라 칭한 들 더는 소용이 없다. 요리를 학대하는 그의 아버지는 괴물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인간이지만, 그의 행동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그를 괴물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괴물>.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9329

그러나 미나토와 요리는 괴물이다. 주변의 시선과 폭력으로 인해 괴물이 된다. 괴물이라고 불린다. 영화에서 괴물은 인간의 대척점으로 그려진다. 괴물이 아니면 인간이고, 인간이 아니면 괴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돼지의 뇌를 가진 인간은 인간인가? 겉모습은 인간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뇌는 돼지의 뇌이다. 누군가 그 자의 머리를 쪼개어 이 사람의 뇌는 돼지의 뇌라고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겉모습만 보고서 우리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이 돼지의 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돼지의 뇌를 지닌 인간은 괴물의 범주에도, 인간의 범주에도, 그 어느 쪽에도 꼭 들어맞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겉도는 신세가 된다. 


요리의 아버지는 폭력을 통해 요리를 인간의 범주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자 했고, 미나토는 갈팡질팡하던 중에 스스로를 괴물이라 규정하고 만다. 어른들의 실수와 추악함은 온갖 이유와 핑계들로 포장되지만, 서로를 아끼고 좋아했던 요리와 미나토는 별다른 이유 없이 괴물이라 놀림받는다. 아이들은 어디론가 숨어들 수밖에 없다. 돼지의 뇌를 하고서도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숨고 또 숨어야 한다. 그들의 이름은 암호가 되어 종이 위에 숨어 깃든다. 글짓기의 주제는 장래희망이다. 그들은 괴물이기에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어 서로를 희망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괴물>.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9329

돼지의 뇌를 지닌 인간이 인간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일이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 일인지 묻고 싶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과 괴물의 범주를 구분하는 기준 자체에도 근본적인 회의감이 든다. 사람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애당초 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에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낭비하고 있다. 누구의 시선을 어느 방향으로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이야기의 구조처럼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 우정도, 사랑도. 각자 살아온 삶에 따라 모두 다른 모습과 형태로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으리라. 미나토와 요리가 겪은 일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안다. 


한때 괴물로 낙인찍혔던 돼지의 뇌를 가진 나는 용케 삶을 버텨 오늘까지 왔다. 어머니가 내게 했던 사과와 같은 것들. 그 비슷한 것들을 여기저기서 드문드문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괴물이 아님을 안다. 그렇다고 인간이 된 건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인간과 괴물 그 사이 어디쯤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미나토는 미나토대로. 요리는 요리대로. 그들이 어디론가 숨지 않아도 서로를 마음껏 희망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을 뜻한다. 그러나 장래는 장차 다가올 앞날을 일컫는다. 


hiphop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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