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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Jul 19. 2023

우울증? 공황장애? 그거, 정신력 문제 아니야?

2화 _ 님아,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보지 마오

"우울증? 공황장애? 근데 그거, 정신력 문제 아니야?"


간혹, 나의 정신질환을 '정신력'의 문제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

정신질환은, 그야말로 '질환'.

'병'이다.


그들의 말처럼 정말 나는 정신력이 약해서 병에 걸린 것일까?

물론, 몸의 병도 건강한 사람에 비해 체력이 약하고 몸이 약한 사람들이 잘 걸리는 것은 맞겠지.

그렇다 하여, 건강한 사람은 코로나에 안 걸린다는 법이 있던가?


지금부 '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에 대해서, 직접 걸려본 경험자가

마치 코로나에 걸리면 몸의 상태가 어떤지, 후유증으로 어떤 것들을 겪었는지 경험담을 풀어내듯 풀어보려 한다.


사실 처음 정신건강의학(이하 정신과)에 갔을 때의 나의 상태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척 심각한 상태였음은 알고 있다.

두 번째 내원 때 정신과 교수님께서 내게,

대략, "당장 입원하셔야 해요. 죽을 수도 있어요." 와 같이 말씀하셨으니.


내가 나를 해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당시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냐고?

나는 내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정신과를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첫 공황발작은 회사에서 인사담당자의 괴롭힘이 있은 직후 발생했다.

경영지원실을 나와서 부서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심장이 너무 아팠다.


손발이 덜, 덜, 덜, 덜, 떨리기 시작했다.

2월, 추운 날씨에도 땀이 정말 비 오듯이 줄줄 났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가장 기분 나빴던 증상은, 머리에서부터 발끝으로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다.

온몸이 창백해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점점 눈앞이 하얘졌다.

어지러웠고, 당장에라도 토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고, 심장이 뛰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표현하기 조금 어렵지만, 클럽과 같이 큰 음악이 나오는 곳에서 온몸에 음악의 리듬이 전해지는 듯한 기분이랄까.


손발의 떨림이 온몸으로 이어졌다.

감당이 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심장마비로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

눈물도 주룩주룩 났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심장병이 생겨버린 건가? 이렇게 죽는 건가?'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켰다.


부서장님께 온몸을 덜덜 떨며, 심장이 너무 아파서 내과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회사 1층에 있는 내과로 달려갔다.

맥박의 정상범위는 70~90. 나의 맥은 120이 넘었다.

빈맥이었다.

내과 원장님께서는 부정맥 약을 일주일치 처방해 주셨다.


일주일 뒤,

"정신과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체하지 마시고 당장이요."

그렇게 나는 소견서를 받아 들고 정신과에 가게 되었다.

즉, 내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간 것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께서 당장 가야 한다고 하시니 갔던 것이다.


처음 정신과에 내원했을 당시의 내 상태를 떠올려보자면.

나는 분명 가만히 있는데, 손이고 다리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덜덜 떨렸다.

마치 사방에 사나운 대형견들이 곧 끊어질 것 같은 줄에 묶여 나를 둘러싸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는 모습이었달까.

내가 느끼는 느낌도 그러했던 것 같다. 공포감.

문제는, 실제로 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너무나도 두렵고,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증상들이 발생할 때마다 심장에 통증이 심해서, 나는 그것을 정신질환이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니야, 분명 이건 심장의 문제일 거야. 이렇게 심장이 아프다는데 도대체 왜 심장 검사는 해주지 않는 거지? 이러다 정말로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으면 어쩌라고!'

나에게 공황발작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것이 정신질환이라고 받아들이기까지는 나에게도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것이 정말 정신질환이구나, 받아들이게 된 것은 저번에 이야기했던 대표의 메일 덕분?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모두 불인정하겠다던 대표의 메일을 받고서 나는 결국 쓰러졌다.

그때의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다.

응급실에서 안정제를 맞고서야 서서히 정신이 든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절망감에 몸서리를 치며 눈물을 흘렸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정도로 나는 나약하지 않은데. 라며, 나 또한 당시에는 내가 나약해서 생긴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나의 정신질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내원한 병원에는 정신병동이 없었기 때문에 교수님께서는 정신병동이 있는 병원으로 나를 보내셨다.

난생처음으로, '폐쇄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폐쇄병동 입원은 꽤 까탈스럽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만한 모든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없다.

핸드폰 충전기? 안된다.

그 줄이 언제 내 목을 조를지 모르기 때문에.

샤워볼? 안된다.

언제 그 샤워볼을 길게 풀어 나를 해할지 모르기 때문에.

뾰족한 그 어떤 것도 안된다.

샤프? 연필? 안된다.

밖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던 수많은 것들은, 폐쇄병동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언제 어떻게 나를 해할지 모르는 무서운 것들이 되었다.


핸드폰도 압수다.

바깥과 연락을 하고 싶다면 폐쇄병동 내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밥과 약을 먹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야 한다.

잠이 잘 오지 않는 경우에는 수면유도제 같은 것을 처방받아서 먹었다.

약을 먹은 후에는 입을 벌려서 삼켰는지 확인을 받아야 한다.

간혹 약을 먹은 척하고 안 먹는 환자분들이 계신 모양이다.


나의 입원 생활은 길지는 않았다.

생활 패턴이 맞춰지는 것은 좋았으나, 함께 지내시는 환자분들 역시 마음이 많이 아프신 상태다 보니 간혹 견디기 힘들거나, 두려움을 느낄만한 상황들이 생겼다.

일주일 정도 입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퇴원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며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초에 입원도 계속 거부하다가 억지로 한 것이었어서 퇴원을 강하게 요구했다.


나의 공황장애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가장 심해졌을 때, 내 방에는 이동식 변기가 들어왔다.

캠핑할 때나 쓸 것 같은 이동식 변기가 왜 필요했을까?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나는, 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길을 걷고 있었다.

아무 위협도 없었고, 놀랄만한 일도 없었고, 심지어 당시 나는 불안하거나 두렵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소변이 나왔다.


'소변을 지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대로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어찌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었다.

창피할 새도 없었다.

그냥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이러는 거야..'

그런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교제하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에게 전화해서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날의 기억은 거의 없다.

길에서 소변을 본 그 순간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서, 그 후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다.


한날은 지하철에서 소변을 보고, 또다시 무너져 엉-엉- 울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서는 외출을 거의 하지 못했다.

당시 남자친구는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미안하게도 그는 나를 간호해 주고 보살펴주느라 몇 달 동안 취업을 포기했다.


그는 내가 외출을 해야 하거나 병원을 가야 하는 날이면 항상 데리러 와주고 데려다주었다.

그의 차 안에는 늘 페트병과 봉지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언제 실수를 할지 몰라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의 차에도 소변을 자주 지렸다.

소변이 보고 싶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보니, 준비된 물건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는 자면서까지 소변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곧 서른의 나이로 이불에 지도를 그리다니.

자괴감과 절망감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냥, 무너져 내린다.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마음도 무너지고, 자아도 무너진다.

그쯤에는 정말 진심으로, '죽고 싶다' 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살게 될까 봐서. 너무나도 두렵고, 무섭고, 괴로웠다.


엄마께서는 괜찮다며 늘 이불을 빨아주시곤 했는데, 그 모습도 나는 사실,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괜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엄마도 괜찮지 않으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무너진 모습을 보고 괜찮을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실까?

나는 나 자신이 정말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울 정도로 싫었다. 정말 끔찍하게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나 같은 것은 없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과 마음이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이쯤에서 나는 잠시 궁금해졌다.
혹시, 지금까지 정신질환이 정신력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글을 읽고 난 후에도, 정신질환이 '정신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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