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치고는 젊고 건강해 보였다.
"원하시는 동네가 있으세요?"
남자는 답이 없었다. 나는 주거복지사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찾아준다. 상담실에 왔다가 갑자기 실신하는 사람, 욕하는 사람, 우는 사람. 매일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중 가장 어려운 사람은 묵묵부답인 사람이다. 이 남자처럼. 낯을 가리는지 머뭇거리다가 다시 오겠다고 나갔다. 계속 앉아서 버티는 것보다는 나은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어 오후 내내 찜찜했다.
"탁구 칠 줄 알지?"
센터장님이 물을 때는 나는 칠 줄 알아도 모르는 거다. 갑자기 웬 탁구. 며칠 뒤 궁금증이 풀렸다. 긴급주거지원을 받았거나 받을만한 후보인 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탁구를 치기로 했단다. 입주를 해도 특히 혼자 사는 남자들은 외로워서 술을 많이 마시거나 오래지 않아 노숙 생활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졸지에 라켓을 잡았다. 이건 탁구가 아니라 야구다. 탁구공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나는 탁구랑은 안 맞다. 탁구 친 시간보다 공 줍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고맙습니다."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탁구공을 누가 대신 주워 줬다. 왠지 낯익다. 그 남자였다. 이상하게 반갑다. 우리는 그날 조금은 친해졌다. 말은 잘 못하던 남자가 탁구는 잘 쳤다.
"언제 시간 되시면 집 상담받으러 다시 오세요."
그는 그러겠다고 말하곤 수줍게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가 다시 왔다. 이제는 제법 말문이 트였다. 탁구가 효과가 있긴 있었나 보다. 우리는 어느 지역에 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집을 찾아봤다. 집을 찾는다는 것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하는 일이다. 남자는 포기가 빨랐다. 그런데 다음 절차를 진행하려고 보니 풀어야 할 숙제가 나타났다. 주민등록말소, 채무 8천만 원. 처음 있는 일은 아니어서 주민센터, 복지 재단 등 협업 기관을 안내해 줬다. 그러다가 나는 금지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어쩌다가 그러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뿔싸 말을 꺼내자마자 다시 넣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아픔이 있다. 후회하고 있던 차, 남자가 입을 뗐다. 그는 바지 사장이었다. 회사는 없고 오직 빚만 있는 바지사장. 국어사전에 의하면 바지사장은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명의만 빌려주고 실제는 운영자가 아닌 사장이다.
"시골에 엄마랑 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엄마가 아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전에는 공장도 다니고 평범하게 살았는데, 엄마가 안 계시니까 아무것도 하기가 싫더라고요. 밥도 안 먹고, 밖에도 안 나갔고. 계속 그렇게 있을 수가 없어서 무작정 서울로 왔는데, 대책이 없더라고요."
서울역에 노숙인 선배들과 누워있는데 지나가는 남자가 '형씨, 사내로 태어났으면 사장 한 번 해봐야지?' 하는 말에 혹하더란다. 현금 백만 원에 주민등록증을 내어주고 그는 그날로 바지사장이 됐다. 평범한 남자가 노숙인이 되고, 바지사장이 되는데 엄청난 사건도,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후드득."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다. 내 마음도 젖었다. 나는 그에게 내 우산을 내어주었다.
한동안 우리는 격주로 만나 탁구를 쳤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내 공을 주우러 다녔다. 그는 자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다리던 집에 입주도 하게 됐다. 그가 내게 우산을 돌려주러 마지막으로 센터에 왔다. 그가 없으니 나도 탁구를 그만하게 됐다. TV에서 탁구 경기 중계를 보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가끔 그가 생각난다. '잘 살고 계시겠지'. 잘 된 케이스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저릿할 때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숙인 등은 12,725명이다. 노숙인 등의 구성을 살펴보면, 시설 노숙인이 6,659명(52.3%), 쪽방 주민이 4,717명(37.1%), 거리 노숙인이 1,349명(10.6%)이다. 언뜻 보면 거리 노숙인이 많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수가 좀처럼 줄지 않으며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직, 가족해체 등으로 한번 거리 노숙인이 되면 실내 생활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거리 노숙과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일시보호시설을 순회하는 삶이 시작된다.
상담 현장에서 왜 그런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내 공간이 답답해서, 단체 생활에 적응이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많았다. 거리 노숙을 하다가 드디어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정작 거실에서 온 집의 창문들을 죄다 열어두고 잤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들이 거리, 광장, 지하 공간 등에서 노숙하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51.4개월에 달한다. 4년이 넘는 기간이다. 노숙 중 구타·가혹행위, 금품갈취, 명의도용·사기도 왕왕 벌어진다. 그럼에도 이들이 거리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이다.
영등포나 동자동 쪽방, 세곡동 비닐하우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개가 많다. 쪽방 방세는 생각보다 비싸다. 방세 내고 본인이 먹을 것은 없어도 개밥은 준다. 외롭기 때문이다. 집이 없다는 것의 동의어는 무주택이 아니라, 삶이 아프다는 것이다. 나는 영등포와 강남에서 2년간 주거복지사로 일을 했다. 바지사장이 된 노숙인,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할머니, 집세가 밀려 퇴거 위기에 처한 여고생, 집안의 빚을 갚으려다가 카드 돌려 막기를 하게 된 청년, 쪽방에서 아이와 살고 있던 미혼모.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있었다. 모든 엔딩들이 내 마음에 오롯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