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어렵겠어요.”
“왜요?”
“사정상 미성년자 혼자 있대요.”
“혼자요?”
부동산의 특성 중 하나로 유한성을 꼽는다. 옮길 수도 없고, 새로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과자나 양말처럼 계속 만들어낼 수가 없다. 주택도 부동산이라서 계고 후에도 임대료를 계속 연체하면 기다리는 다음 사람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퇴거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 집도 형평 차원에서 그래야 하나 검토하던 참이었다. 이 선생님이 설명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여학생인데, 엄마가 구치소에 있는가 봐요, 계속은 아니래요.”
순간 난감했다. 우리는 일단 그 집에 가보기로 했다. 4층 건물에 3층 집이었다. 4층은 옥상이니 사실상 맨 윗집인 셈이다. 3층 집 계단을 오르려고 하니 앞이 막혀 있었다. 쓰레기가 가득했다. 좁은 틈으로 물건들을 하나씩 치우면서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비집고 들어갔다. 집안도 사정은 비슷했다. 방 한 개에 작은 거실 겸 부엌 하나. 나머지 공간은 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방 안 이불속에는 소녀가 있었다.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났다. 덩치는 작은데 사나웠다.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속으로 무서웠다.
“집 때문에 왔어요. 혼자라고 들었는데,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개밥 사고, 굶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말뿐이 아니라 정말 그래 보였기 때문이다. 조만간 다시 오겠노라고 인사하고 황급히 일어났다. 센터로 돌아와서 대책 회의가 열렸다. 나는 밀린 임대료 해결을 하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은 세대 청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곳저곳 수소문해 본 결과 구청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구청 복지사례 회의에 올려주십사 신청했다. 어려운 사람들이 워낙 많아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일도 아니고 미성년자가 아닌가. 그사이 세대 청소팀이 그 집에 다녀왔다. 같이 가지 못해 미안했다.
“어떠셨어요?”
“냉장고를 열었는데, 바퀴벌레가 우르르. 내가 다녀본 집 중에 제일 심하다. 나 다시는 세대 청소 안 간다.”
착한 박 주임님이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쉬었다. 본심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오죽하면 이럴까 싶었다. 옥상까지 싹 치웠다는데, 그래도 뿌듯하긴 했단다.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 더욱 미안해졌다. 그 사이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복지사례 회의에 참석해서 세대 사정을 간곡하게 설명했다. 다행히 구청에서 일정 기간은 임대료를 부담해 주기로 했다. 모든 세대가 이렇게 해결이 되면 좋겠지만, 미성년자가 있던 특이한 사례라 가능했던 것 같다. 계속 괜찮을지 살며시 불안감이 올라온다. 그래도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딸과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믿어 본다.
요즘은 사회복지관 외에도 복지사례 협의체를 운영하는 지자체가 많다. 복지 예산을 다루기 때문에 집으로 힘든 사람들에게도 좀 더 장기적·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다만 집 자체를 옮기는 사례보다는 임대료를 보조해 주거나 낡은 시설을 보수해 주는 경우가 많다. 혼자 사는 김 할머니 경우도 그랬다. 현장 확인차 집에 갔을 때 첫 느낌은 집이 너무너무 춥다는 것이었다. 사과랑 삶은 달걀을 내어주셨는데, 손이 시려서 달걀을 손에 꼭 쥐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왜 이렇게 춥나’하고 집안을 둘러보니 온통 쇠로 된 옛날 창틀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왔다. 지역 다른 센터를 통해서 구청 복지사례 회의에 전달했는데, 에너지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교체되었단다. 두 달쯤 후에 할머니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오셨다.
복지사례 협의체의 단골 사례는 저장강박증 세대이다. 일명 쓰레기 집. 저장강박증은 강박 장애의 일종이다. 통상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과도하게 쌓아두는 집착적 행동을 보인다. 저장강박증에는 우울, 불안, 트라우마, 사회적·경제적 스트레스 등 심리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미영이네 집은 사실 저장 강박 세대는 아니다. 그냥 상황이 혼자 어찌하지 못해 나빠진 것이다. 버리지 못해 과하게 쌓였다고 할까. 진짜 저장 강박 세대는 손을 댈 수가 없다. 쓰레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이 화를 내기 때문이다. 아마 하나하나가 보석으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심리치료 등을 병행하면서 접근, 설득을 시도하지만 열에 아홉은 실패한다. 생각만 바뀌면 되는데 싶지만 사실 나이가 들면서 나도 점점 생각 바꾸는 게 어려워지는 건 맞다.
우리에게 집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막아주며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집이라고 하면 아파트가 생각이 났다. 잘 골라서 사야 손해 안 보는 것. 그런데 주거복지사로 2년간 상담을 하면서 집이 내게 그 이상의 무엇으로 다가왔다. 집이 곤궁한 사람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모든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만큼 집은 생사고락을 뒤흔드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아마 이것이 우리가 미영이를 쉽게 집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닐는지 싶다.
※ 이 글에 언급된 모든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