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화 성탄절에 출항하는 배 (1)
1906년 오늘(10월 22일) 사과만 죽어라 그리다 돌아가신 폴 세잔
그가 좋아했던 퓨레 앙소야드를 소개하려다,,, 여전히 소설을 쓰는 관계로
”우리를 테마파크로 만들어줄 친구나 팀 없어?“
20년간 ‘J농원’이었다가 ‘E랜드’로 이름을 바꾼 후 10년간 놀이공원으로 사업을 영위해 온 법인.
2년 전 이 법인의 경영을 맡아 운영해 온 대표이사는
강남에 있는 그룹 본사를 서둘러 빠져나오고 있었다.
방금 그룹 이사회에서 회장님이 직접 주관한 월례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회사로 복귀 중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똥 씹은 표정으로 얼굴은 굳어있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경영 중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답답함과 위기를 친구에게 토로했다.
”아니야! 테마파크 아니라니까! 우린 그냥 놀이공원이야! 좀 큰 놀이공원!
덩치만 컸지 그냥 어뮤즈먼트 파크(amusement park)라고!
근데, 회장님이 테마파크가 되라고 그러시네?
본사가 글로벌기업이 되었는데, 자회사들도 글로벌해져야 하지 않겠냐고!
씨발, 갑자기 디즈니랜드가 되라고 하니 말이 되는 거냐고?
월트 디즈니도 미키마우스 애니메이션 만들고, 30년이 지나서야, 디즈니랜드 만들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갑자기 테마파크가 되냐? 회장님이 미친 거지!
어느 세월에 이야기 쓰고, 어느 세월에 캐릭터 만드냐?
또, 만들면 다 인기를 끄는 것도 아니잖아. 친구야, 방법이 없냐?
나 내일 모레 아침에 테마파크로 변신 합체해야 하는데 어떡하면 좋지?
너 요즘 엔터테인먼트 회사 차려서 업계 SKY 애들 싹쓰리 중이라며?
너희 구성원 중에 날 구원해 줄 똑똑한 친구 없을까?“
위기에 빠진 친애하는 벗의 간절한 요청에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은 응답했다. 구원군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놀이공원 대표이사에게 파병한 것은 팀이 아니라, 딸랑 한 명이었다. 심지어 신입사원.
기대한 지원군은 특수부대였는데, 정작 온 것은 자객 한 명이 온 것이다.
물론, E랜드 대표이사는 친구가 신입사원 한 명만 보낸 것에 화가 났지만
더 열받은 것은 그 친구가 이 애송이를 뽑은 이유였다.
”학점이 제일 낮아서 뽑은 애야!“
”그런 애가 와서 내 민원을 해결할 수 있겠어?“
”학점은 선동열 방어율이지만,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어. 대학 내내 공부를 안 한 거지!
학생운동을 한 것은 아니고, 영화사를 다녔더라고“
”좋은 대학 나왔는데, 학점은 꽝이다? 그게 걔 매력이야?“
”응, 서울대를 갔다는 것은 질풍노도의 고삐리 시기에 자신을 잘 관리했다는 것이고
입학해서 딴짓만 죽어라 했다는 것은, 하기 싫은 건 절대 안 한다는 것이거든!
어차피, 우린 준수한 대학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 성실한 애들은 많이 뽑았잖아.
이런 또라이 하나는 뽑을 만해! 그리고 내가 잘 뽑았어~“
그래서, 친구 회사의 그 신입 또라이가 와서,
국내외 최고의 E랜드 엘리트 사원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하게 된 것이다.
E랜드 대표이사는 그것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별명이 대갈장군인 이 파병 자객은 신입사원답지 않게 너무 당당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습니다! 매력적인 1+1 상품입니다.“
대갈장군 신입사원은 E랜드 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콘텐츠 및 상품 기획팀 임직원을 앉혀 놓고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화면에는 1931년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한 산타클로스가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산타크로스가 튀르키예 사람인 것을 아시나요?“
산타크로스의 유래는 튀르키예 지역에 살았던 성 니콜라오 주교(서기 270-343년)로부터 시작했다.
가난 때문에 사창가로 팔려 갈 세 자매의 집에 몰래 결혼 비용을 두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12세기 프랑스 수녀들이 바로 성 니콜라오 축일 전날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면서
성탄절 산타크로스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겨울철에 매출이 유난히 줄던 코카콜라가 판촉을 위해 산타크로스 이미지를 광고에 사용하면서! 코카콜라가 만든 이미지가 산타클로스의 전형이 되었다.
뚱뚱한 흰 수염과 하얀 눈썹의 백인 할아버지!
”그런데, 우리 모두의 산타클로스를 자국민으로 납치해 간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1985년 산타크로스의 고향을 핀란드 도시 ‘로바니에미(Rovaniemi)’로 선포하고,
산타크로스 테마마을을 그 지역에 건설했다.
전 세계 수만 명의 어린이들이 봉투에 ‘산타마을’이라고만 적어도 카드가 도착하고,
성탄절에는 전 세계로 선물을 보내는 마을.
그래서 365일 내내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찾는 마을!
그곳이 바로 핀란드의 산타크로스 마을이다.
”핀란드는 세상으로부터 산타크로스를 훔쳐 갔습니다!
저작권 없이 세상에 떠돌던 최고 인기 할배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자신들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대갈장군 신입사원은 E랜드 임직원들을 향해 갑자기 퀴즈를 냈다.
”자, 그렇다면! 핀란드가 산타크로스를 영입했듯,
E랜드가 테마파크가 되기 위해 스카우트할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람!
회장님으로부터 칭찬받을 다시 없을 기획! E랜드를 테마파크로 변신시킬 게임 체인저! 그는 누구일까요?“
갸우뚱거리는 사람들, 누군가는 옆 사람에게 귓속말로 자기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고기 한 조각을 물고 강을 건너던 강아지! 강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개는
더 큰 고기를 문 다른 개로 믿고, 그 개의 고기를 뺏으려 짓기 시작했다.
그러다, 입에 물고 있는 고기도 놓쳐버리게 된다.
이 우화는 <貪心잇난개라(탐욕스러운 개)>라는 제목으로 1896년 조선의 학부가 만든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이라는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6개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 실려있었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정직한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도끼를 연못에 빠뜨리는 이야기.
그리고 산신령이 정직한 나무꾼에게 베푸는 선물! ‘금도끼 은도끼’
이 우화는 대한제국 말기 대한교육회가 1906년에 간행한 ‘초등소학 권7 제 28장’에 ‘도끼’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처음 등장했다.
이렇게 조선시대, 대한제국 시기에 출간된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등 숱한 이야기들을
우리 고유의 전래동화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들의 원작자는 기원전 620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564년에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서 죽임을 당한
노예 출신의 ‘아이소포스(Aisōpos)’였다.
바로 이 사람이 대갈장군 신입사원이 E랜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핀란드가 산타크로스를 가져갔다면! 저는 여러분께 감히 추천합니다.
대한민국의 E랜드는 아이소포스! 그를 차지해야 합니다!“
씩씩하게 발표했지만, 회의실의 반응은 냉담했다. 왠 ‘듣보잡’이냐는 반응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아이소포스’란 작가를 알지 못했다.
”아, 아이소포스 모르세요? 영어로 발음하면 아시겠군요! 바로 ‘이솝’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우화 외에도 ‘여우와 두루미’, ‘사자와 쥐‘, 그리고 ’시골 쥐와 도시 쥐‘ 등 총 500여편의 세계적인 동화를 다작한 세계 최고의 작가가 ’이솝‘이다.
”E랜드 내에 ’이솝 빌리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아는 이야기에 어린이들이 사랑하고 호기심 가능한 동물과 곤충들! 테마파크에 딱 맞습니다!“
친구 회사의 신입사원 대갈장군이 발표를 이어갈 때, E랜드 대표이사는 부하 직원 한 명을 불렀다.
그리고 귀에다 무슨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다.
귓속말을 건네받은 부하 직원은 또 다른 두 명을 불러서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신입사원 대갈장군이 한마디 했다.
”앗, 아직 안끝났엉~ ’원 플러스 원(1+1)‘ 중에 첫 번째 이야기만 하고 두 번째 이야기는 아직 안 했는데요?“
E랜드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급한 일이 있어서, 미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 이어서 하세요.“
신입사원 대갈장군은 사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위해서 기꺼이 ’이솝 빌리지‘ 미끼를 내민 것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낙서처럼 써오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제목은 ’별 닦는 마을‘. 그런데 이 대갈장군은 별닦는마을을 동화책에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펼쳐놓고 싶어졌었다.
’동화를 글로 쓰라는 법 있나? 책으로만 출판해야 하는 법도 없잖아?‘
그렇게 황당한 꿈을 일찍부터 키워가기 시작했고, ’<별 닦는 마을>을 건설할 버려진 싼 섬이 없나?‘ 하며
땅값까지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E랜드‘ 뿐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이렇게 막연한 꿈을 간직한 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입사했는데,
회사 본부장님이 사장님 지시라면서 이번 미션을 전달했다.
신입사원 대갈장군은 기쁜 마음으로 임무를 맡았다. E랜드와 인연을 맺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 것이다. 기회가 왔으니까!
세 사람이 자릴 비웠지만, 대갈장군은 심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갔다.
그리고, 대갈장군은 한국의 대표적인 놀이공원 회사라면,
반드시 자신의 프로젝트를 받아들일 것으로 믿었다.
세계적 기업이라면 당연히 ’오리지날 콘텐츠‘를 보유하려고 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솝 빌리지‘에 만족하고 머문다면, 이들은 2류임에 틀림없으니까!
”당신은 아직도 별이 그냥 반짝인다고 생각하세요?
여기 별닦는마을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세상에서 가장 바빠지는 마을,,,“
보통, 캐릭터나 머천다이징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테마파크 꿈이라도 꿔보려면
수십억을 들여서 26편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만들거나
70분 이상의 극장판은 기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인기를 얻으면 다양한 상품화로 멀티 유즈(multi-use)하면서 ’대박‘치는 것이 보통의 순서다.
그런데, ’별닦는마을‘은 그 과정을 압축시키는 장치가 있었다. 바로 ’별‘이다.
’별‘은 어려서부터 모두의 마음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동심의 결정체이다.
따라서, ’별‘이 그냥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졸라‘ 열심히 닦아주는 마을이 있다고 하면!
시청자와 관객에게 특별한 재미를 주지 않아도, ’별닦는마을‘은 인지될 수 있었다.
즉, 제목만 들어도 이미 동심을 건드리고, 행복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
자신이 기획했지만, 대갈장군이 천재적인 프로젝트라고 자화자찬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자,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기대와 달리 밋밋하게 회의가 끝났다.
’이솝‘을 언급하기까지의 불타오르던 열기는 몇 사람이 빠져나간 후 차갑게 식었었다.
E랜드 대표이사는 신입사원 대갈장군에게 악수를 청하고 황급히 사라졌다.
그리고, 몇 사람은 자신의 명함을 대갈장군에게 건네며 인사했고, 그것이 끝이었다.
넓은 회의실에 남은 것은 대갈장군뿐이었다.
’이 반응은 뭐지?‘
그때, 회의실 문이 다시 열렸다. 늘씬한 몸에 아름다운 여인이 캣워크를 걷는 모델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대갈장군과 눈을 마주치며 그녀는 걸어왔다. 그녀의 입술은 미소를 직조해 내고 있었다.
”4시간 주차권 드리면 충분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