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식당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부장 Oct 27. 2024

1027 오늘의요리,술,영화 (꼼수의 달인 10화)

제 10 화 Dead Line 위의 비디오걸(3)

“위스키가 ‘영혼’이라고 불린다면 싱글몰트야말로 그중에서 가장 정제된 형태이며, 순수한 영혼은 천사뿐 아니라 악마의 것이기도 하다.”

#은희경 단편 소설 ‘중국식 룰렛’은 어느 싱글몰트 위스키 바가 배경이다. 술집 주인 K는 격이 다른 수많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라벨을 가린 채 같은 값에 내놓고 손님이 직접 골라 마시게 한다. 한 청년이 이 술집주인이 진짜 갖고 있는지 알아보려 기를 쓰는 술이 있다. #맥캘란 55년. 전 세계 420병 한정 생산된 이 술은 국내 5병이 수입돼 1,300만원에 판매됐다. 이 내용을 은희경 작가 생일인 1959년 오늘(10월 27일)을 맞아 쓰려다, 아직도 웹소설 쓰는 중이라,, 대신 웹소설을


033 비디오걸의 진심     

그녀의

 얼굴은 리코보다 귀여워!

몸은 리에 미야자와보다 아름다워!

그 마음은 노리코 사카이보다도 친절하고 여자다울거야!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훌륭한 몸과 특히 가슴이 크구나!

<전영소녀 중에서, 남자주인공 요타의 대사> 

    

자, 요타 그럼 뭘 할까?

우리들 비디오걸은 있잖아.

남자를 위로하기 위해 생겨났어….


<전영소녀 중에서, 비디오걸 아마노 아이 대사>     


게임과 아니메를 좋아하던 그녀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대한민국은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있던 직원도 정리하는 판에 새로운 신입사원을 뽑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와 캠퍼스 연인이었던 첫사랑과도 아주 무미건조하게 헤어졌다,

취업이 멀어지자, 몸도 멀어졌고, 마음까지 멀어졌다. 남자 친구가 남긴 건 그녀에 대한 애칭이었다.

1990년대 최고 인기 망가(manga)였던 ‘전영소녀’ 주인공을 닮았다고 남자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래서, 홍대 국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모든 SNS상에서 모든 아이디를 비디오걸(VideoGirl)로 바꿨다.

그리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문과 졸업생은 그 당시에도 인기가 없었고, 국가 경제가 폭망한 상황에서 더더욱 취업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 중 하나였다.

각종 시나리오 강좌나 교육 프로그램을 받으면서 천천히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비디오걸은 인기는 많았다.

그러나, 그녀의 글이 인기가 많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만난 남자들은 모두 비디오걸의 위로를 원했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외롭고 슬프게 만들었다.

그러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 모집 공고를 보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에 실패한다면, 그녀는 완전히 포기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비디오걸의 생일이었다. 마감을 하루 앞둔 처음으로 반갑지 않은 생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더 슬픈 날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034 해피버스데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나름의 준비를 했는데도 사장 아저씨는 찬밥이 되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촛불 켤 틈도 없이 바로 냉장고에 감금되었다.

한 마디 잘못하면 큰 사고라도 일어날 것 같은 묵직한 침묵이 흐르는 비디오걸의 작업실!

자막 두들기는 ASMR 모드가 지속되던 중, 갑자기 프린터기에 불어 들어오더니, 인쇄되기 시작했다.     


“오빠, 한 번 읽어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잔뜩 기대한 얼굴로 빤히 사장 아저씨를 쳐다보며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왜 말을 안 해? 그렇게 형편없어?”     


사장 아저씨는 그냥 미소만 짓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대답 없이 다시 읽기만 하는 모습에 비디오걸은 눈치를 챘다.     


“알았어!”     


그리고 칼바람을 일으키고 돌아서서 다시 노트북으로 달려갔다. 

그때야 사장 아저씨는 입을 열었다.     


“음, 다 완벽한데, 이야기에 영혼이 없어! 그런 거 있잖아.


깃털같이 가벼운 이야긴데 마음에 남고, 웃기는 소재인데 자꾸 생각하게 만들고

야하고 질퍽한데, 생각할수록 유쾌해! 그런 다각적 감동을 만드는 것을 나는 ‘영혼’이라 부르거든”     

이번에는 비디오걸이 반응이 없었다. 그냥 노트북 자판기 소리가 조근조근 들릴 뿐이었다.

사장 아저씨는 격려를 해볼 생각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음, 아직 그대에게는 12척의 시놉시스가 있지? 그지? 열심히 쓰네?”     


사장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미 비디오걸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사장 아저씨가 가장 스스로 초라해지고 무능하다고 느껴질 때가 바로 우는 여자 앞이었다. 

여자를 웃기는 재주는 나름 있다고 생각하는데 울음을 멈추게 하는 재주는 그에게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무 생각나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사장 아저씨는 다시 물러서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비디오걸 뒤에 서 있었다.

사장 아저씨는 곤란한 상황을 즐기는 인간이었다. 

난처한 상황이 찾아오면 그는 귀신에게서 숙제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마치 빠져나갈 틈 없는 방탈출게임을 하듯이, 오히려 난감함을 즐기는 이상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의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에는 어떤 대응 프로토콜이 없었다.     

토닥거리다,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고! 그녀가 하는 대로 온순한 양처럼 대기하며

그녀가 자발적으로 위로 당하길 빌며 엉거주춤 서있었다.     


“나 시나리오 작가로 희망 없지?”

“그게,,,”

“왜? 그냥 말해. 직선적으로 말 잘하잖아.”

“그게, 그러니까”     


비디오걸은 사장 아저씨에게 안겨 울었다.

밀폐된 공간, 미션은 에로, 작업은 애로, 남녀는 청춘!

‘위로’가 필요했던 비디오걸은 오디오걸로 변신했다. 

그녀는 평소에는 아름다운 비디오걸이지만, 침대에서는 오디오걸로 변신한다.

교성교향곡! 그녀는 훌륭한 연주자를 만날수록 더 놀라운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성스러운 악기였다.

만감이 뒤섞인 그날의 눈물의 정사는 완벽한 쿵쿵짝이었다. 

사장 아저씨는 비디오걸을 ‘홍콩’으로 보냈다.     


“한 편의 영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시나리오 작가가 그 모든 작업을 다할 수 있지만,

한 팀이 그 작업을 할 수도 있어! 어떻게 생각해?

내가 모티브를 제공하고, 자기가 각본 작업을 하는 거지! 당신과 나의 위대한 공조! 

그렇게 몇 번 작업하면, 당신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가 구축된 작가로 거듭나지 않을까?”     


이렇게 말을 하면서, 사장 아저씨는 냉동실에 감금되어 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꺼냈다.     


“오빠, 무슨 소리야? 어떻게 하자는 거야?”     


사장 아저씨는 그저 웃으며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큰 초 2개, 작은 초 5개!     


“일단 소원을 빌어볼까?”     


사장 아저씨는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해피 버스 데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타고나 음치였다.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비디오걸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035 교성의 아티스트     


“어차피 우린 초보잖아!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자!

처녀작이 술술 나오면 좋겠지만, 부족한 우리끼리 ‘공조’를 해야지? 그지?”


사장 아저씨의 제안은 아이디어와 시놉시스을 자신이 쓰고,

익숙한 각본 작업을 비디오걸이 해서 그녀의 이름으로 제출하자는 것이었다.     


“이번에 성공하면, 우린 환상의 복식조로 활약할 수 있지 않을까? 침대 안팎에서!”

“지금 사랑 고백하는 거야?”

“아니, 작업 고백! 나도 당신이 필요해!”     


공동작업을 통해 팀으로 데뷔하고, 작품 소재와 장르에 따라 효율적으로

‘따로 또 같이’ 작업을 해보자는 것이 사장 아저씨의 제안이었다.     


“오빠, 고인돌 시나리오 마감이 내일이야! 가능하겠어?”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던 사장 아저씨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치웠다.

몸매와 외모에 자신있었던 비디오걸은 놀라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알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미 굶주린 머리 큰 늑대는 발기 탱천하여 합체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침대에선 ‘지루’인데, 아이디어 시스템은 ‘조루’야!

한 판 더 뜨고, 신속하게 아이디어 싸지를게! 그럼, 아이디어 축적을 위한 몸풀기 들어갈까?”    

 

결과적으로 ‘자만추(자보고 만남 추구)’가 되어버린 그들의 지난 일주일간의 ‘잠자리’ 중

가장 위대한 교향곡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036 사 없는 에로 명작의 탄생      


선사시대 고인돌 부족 마을     

부족장 움막에서는 요리가 한참이다.

온갖 산짐승, 날짐승, 물짐승? 아 물고기!

돌도끼, 돌칼을 들고 돌판 위 식재료를 리드미컬하게 요리하는 손길들     

부족 마을 커플들은

화려한 가죽자켓, 풀잎드레스를 걸치고

남자들은 다양한 짐승 가죽 매트리스를 끼고 각자의 러브 움막을 나서고 있었다.     

족장의 마을에 모두 모인 씨족 커플들과 싱글들

커플들은 족장 앞에 각자 가져온 짐승 가죽 매트리스를 펼친다.     

그리고, 무대 위 나란히 선 족장 부부

마을 중앙 쌓여있던 땔감에서는 불꽃이 치솟기 시작했다.

족장은 생일상에 앉고

족장 부인은 나뭇가지 하나를 부러뜨리더니

부족 커플들 앞에 섰다.     

뭔가가 준비된 듯한 분위기

족장 부인은 족장에게 미소를 한 방 날리더니

비장한 눈빛으로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나뭇가지를 높이 쳐들었다.     

그때, 커플 남자들은 각자 파트너의 가죽 옷과 풀잎 드레스를 벗겨 하늘로 날렸다.

이번엔 족장 부인이 나뭇가지를 내리꽂듯이 땅을 향해 뻗었다.

그때, 남자들은 각자의 거시기를 내리꽂았다.

여기저기서 교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춤추는 족장 부인의 지휘봉

자기 애인의 동굴에서 각자의 리듬과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남자들의 육봉들     

남자들이 연주하는 여인들의 교성은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고 있었다.

아, 흥, 헉, 아응, 아아아

바로 ‘교성 해피버스데이’ 탄생의 순간이었고,

구경하던 모태 솔로들은 환각에 이끌리듯 짝짓기에 나서고 있었다.     

<사장 아저씨의 구술 시놉시스 ‘제목 : 에로 버스 데이’ 중에서>  

   

037 쌈밥이 알려준 운세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나는 사장 아저씨에게 물었다.     


“비디오걸은 성공적으로 데뷔했지!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 여자가 어떻게 그런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다들 신기하게 생각했고, 모두 술 한잔하고 싶어 했지. 예쁘고 어린 성인물 작가는 드물었으니까! 고인돌 OVA는 지금도 중고 거래가가 상당히 높아! 마니아들 사이에 레어템이거든!”     


그렇게 찰떡같은 궁합을 자랑하던 두 사람이었는데, 왜 비디오걸이 다른 남자랑 결혼했는지 물어봤다.     


“응, 내가 씹새끼였어. 다른 여자가 내 대가리를 탐냈거든, 넘어갔지! ^^”     


사장 아저씨는 나쁜 남자를 능가하는 졸라 나쁜 띱때끼였다.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땡!”     


자레인지에서 2분 30초가 지났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전자레인지에서 비디오걸 시어머니의 쌈밥 도시락 2개를 꺼내왔다.

배추, 호박잎, 깻잎과 곰취, 그리고 다시마까지 다양한 쌈밥 12개가 들어있었다.

사장 아저씨와 나는 하나씩 꺼내서 입안에 넣었다.     


“윽”     


사장 아저씨에게 신호가 왔다. 나의 첫 번째 쌈밥은 달콤하니 건강한 맛을 입안에 채우고 있었다.

겨우 씹어 삼킨 사장 아저씨와 나는 두 번째 쌈밥을 선택해서 입안에 넣었다.     


“아, 씨발~”     


사장 아저씨의 두 번째 쌈밥도 매운 쌈밥이었다. 

나는 두 번째도 달콤 쌉쌀한 건강한 맛의 곰취 쌈밥이었다.

사장 아저씨는 세 번째, 네 번째 쌈밥을 연이어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얼굴은 붉어지고, 사장 아저씨는 찔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친애하는 알바야. 나 망한 거 같아. 1월, 2월, 3월, 4월 

벌써 넉 달이 문제라는데? 나 망한 거 같아! 아 진짜 시봘. 넌 좋겠다. 계속 맛있지?

쌈밥 목구멍 넘기는데, 네 얼굴은 평화롭기가 끝이 없더라. 내년은 달달하겠네?”     


마치 여자가 질투하듯 사장 아저씨는 자신이 고른 도시락을 원망하고 있었다.     


“사장님, 자! 아~ 여기 파머리 피클 드세요. 파대가리로 만든 피클!

매운 쌈밥 걸리면, 파대가리 하나 먹고 액땜하라고 하셨잖아요. 비디오걸님이!

벌써 잊었어요?”  

   

사장 아저씨는 허겁지겁 파대가리 피클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자기 도시락에 있는 것은 물론, 내 도시락에 있는 파대가리까지 모두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26 오늘의요리,술,영화 (꼼수의달인 9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