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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Sep 06. 2023

석양의 빛

  40여 년 넘는 직장 생활을 마치면서 동료들과 함께 북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일정 중에 저녁 무렵 알프스 언덕의 숙소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숙소 맞은편에 황금빛으로 물든 마테호른의 장엄한 모습이 숨 막히게 펼쳐졌다. 


  석양의 찬란한 빛은 어떠한 색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황홀함이요 찬탄을 금치 못할 빛의 축제다. 우뚝 솟은 마테호른을 황금빛으로 칠한 저녁노을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얼마 전에 어느 사진 전시회에서 내가 목격했던 바로 그 장면을 ‘석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대면했다. 석양 앞에서 두 눈을 감고 있으니 마테호른의 저녁노을을 보면서 얼음처럼 정지했던 순간이 다시 전율로 떠올랐다. 


  퇴직 후 재취업을 해 바다가 보이는 당진에서 지내고 있다. 그동안은 대도시 한복판에서 해가 뜨는지 떨어지는지도 모른 채 사무실에 코를 박고 일만 했다. 그러니 석양을 감상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지금은 화려한 생활은 아니지만 가끔씩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당진의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웅장한 마테호른의 석양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그래도 내 인생을 반추하듯 고요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석양의 빛이 사라지면 남은 내 삶도 저녁노을과 같이 어둠속으로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주말에 노후를 보내려고 마련한 텃밭으로 친구 몇이 모였다. 둘러앉아 추억을 소환하니 달달하기도 하고 씁쓸하다. 벌써 저녁이다. 한낮의 햇살이 그렇게도 눈부시더니 친구들의 굽은 어깨 위로 금방 어둠이 내려앉는다. 취미 삼아 피아노를 치는 친구가 색소폰으로 ‘석양’이나 불어보라고 한다. 원래 이 곡은 김인배 님이 생전에 트럼펫을 위하여 만든 곡이지만 색소폰으로 불어도 잘 어울린다. 그래 나도 평소에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친구의 아르페지오 피아노 반주 사이로 알토 색소폰의 부드러운 선율이 허공을 갈랐다. 이윽고 잔잔히 또는 격렬한 숨을 몰아가다 클라이맥스 이후 천천히 그리고 쓸쓸한 여운을 남기며 호흡을 마무리했다. 둘이 연주한 ‘석양’은 끝났어도 귓전에 맴도는 멜로디는 여전히 남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석양은 서쪽으로 펼쳐진다. 해가 진다는 것은 하루가 끝나면서 어둠이 시작된다는 신호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수록 서쪽 하늘에 더 눈길이 가고 아스라이 다가오는 저녁노을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석양은 마테호른의 황금빛 석양처럼 화려하거나 찬란하지도 않다. 그저 매일 보던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어둠에 잠기는 높지 않은 산봉우리와 아스라한 수평선이 전부다.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의 빛도 여러 가지 색들이 파스텔 톤으로 섞여 붉은듯하다가 금세 푸른빛이 도는 회색에서 곧장 어두운 색으로 바뀌고 만다. 


  석양이 황금빛으로 물들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속상해할 것 없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 허전하거나 쓸쓸한 것도 모두 내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날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더 아름답다. 봄 같은 젊은 날을 일출이라면 가을 같은 노년은 석양이다. 일출이 설렘이라면 노년은 돌아봄이다. 


  남은 인생 이제 무엇을 하며 살겠냐고 묻는다면 이런저런 대답 대신 석양 무렵 텃밭에서 친구들이 떠난 빈 의자를 조용히 바라볼 일이다. 그래도 적적하거든 다시 색소폰을 잡아 ‘석양’이나 한 번 천천히 불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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