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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방송인 정재환

2019년 2월 레전드매거진 게재

[취재/글: 이준동]

[사진: 이준동 / 정재환 제공]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인터뷰 중 [사진=이준동]


1979년 유성찬과 함께 동시상영이란 개그듀엣으로 데뷔한 정재환은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1989년 문화방송의 청춘행진곡으로 얼굴을 알렸다.


SBS 개국과 함께 활동 무대를 옮겨 많은 코미디,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으며 문화방송의 연애의 기초, 아줌마 등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지금은 모든 개그맨들이 꿈꾸는 최고의 자리인 방송 MC라는 분야를 개척해, 개그맨에서 방송 MC로 활약한 제1호 연예인이기도 하다.


정재환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한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독학으로 한글의 역사부터 올바른 한글 사용법을 공부하다가 2000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한국사, 한국 현대사, 그리고 한글 운동사 등 한글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다.


2003년 입학 3년 만에 수석 조기 졸업을 했으며, 2013년 동 대학의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업을 통해 쌓은 우리말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더 많은 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YTN 방송에서 ‘재미있는 낱말풀이’ 코너를 최근까지 진행했으며, 현재는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로 있다.


대한민국을 웃게 만들었던 개그맨에서 방송 MC로, 그리고 이제는 우리말의 소중함을 알리는 ‘한글 전도사’로 묵묵히 전진하고 있는 방송인 정재환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정재환]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계신 모든 국민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방송인이자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정재환입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저는 개그맨으로 시작해 방송 MC로 활약하며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진행하다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들이 과연 정확한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고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들이 혹시나 국민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의구심이 저를 한글 공부의 길로 이끌었고, 방송일을 하면서 틈틈이 한글의 역사와 바른 한글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당시 읽었던 책들이 이익섭의 ‘국어사랑은 나라사랑’, 그리고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 쓰기’ 김상준의 ‘방송언어 연구’ 등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고, 저 스스로에게 가졌던 의구심이 단순한 의구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그렇게 저 자신이 잘못된 우리말글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순간 독학을 하는 것보다 좋은 선생님에게 배우고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한글문화연대]

처음 한글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저 스스로 너무 엄격했습니다. 표준말, 표준 발음 등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지요. 동료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실수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조언을 서슴지 않았는데, 그 결과 ‘왕따’가 되었습니다 (웃음).


뒤늦게 깨달았지요, 내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쓰면 되지, 뭐 그걸 굳이 엄밀하고 엄숙하게 잣대를 대고 맞다 틀리다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저를 멀리하게 되는 지경까지 가게 됐죠. 그래서 지금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 한글의 소중함을 알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올바른 우리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은 말로 밥을 먹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예전 방송이나 신문은 올바른 한글과 우리말을 지키려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제 생각과 행동에 확신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매체들은 국민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한글과 우리말을 올바르게 고쳐 나가기 위해 솔선수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매체, 미디어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미디어는 자신들의 본분을 잊은 지 오래며, 나아가 직무유기 상태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미디어가 앞장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잘못 사용하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 통용되는 이른바 ‘줄임말형 신조어’의 확산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미디어, 매체입니다. 새롭게 탄생한 전혀 근거 없는 줄임말을 유행처럼 쓰고 있는 학생들을 계몽해도 모자랄 판인데, 오히려 그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를 퀴즈처럼 문제를 내고 맞히며, 그것을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을 만들어버립니다.


물론 세대차이를 줄이고 중장년과 청소년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줄임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외계어와도 같은 말들은 삼가도록 하고 올바른 한글과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이런 얘기하면 또 왕따 당하는데…(웃음)


이렇게 미디어와 매체가 괴상한 신조어를 우대하며 사회분위기를 묘하게 바꿔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문화연대’가 우리말글 운동을 하는 데 몹시 힘이 듭니다. 언어 규범이라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 아니다 보니 강제성을 가질 수 없기에 열심히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이 ‘호소’마저 불편해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말에 대한 인식]

최근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정부부처에서 발행하는 공문서에 외국어, 외래어를 바로잡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공문서를 한글문화연대 활동가와 회원들이 직접 확인하고 ‘국어 기본법’ 위반에 해당되는 내용이 있으면, 작성한 공무원에게 내용을 알리고 고쳐달라는 요청 합니다. 처음에는 해당 공무원들이 굉장히 당황해하셨지만, ‘공무원들께서 올바른 한글과 우리말 사용에 모범을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말씀드리고 호소하며 꾸준히 운동을 이어가다 보니 이제는 공무원들께서 많이 이해하시고 동참하고 응원해 주십니다.


외국어와 외래어 남용을 바로잡는 운동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용하는 외국어, 외래어들 대부분이 더 아름답고 예쁜 우리말로 충분히 순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외국어는 우리에게 상당히 어리둥절한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걸 알아야 한다는, 사용한다는 이상한 풍토가 돼 버린 것이죠. ‘야~ 너는 그것도 모르냐?’라는 말을 듣기 두렵고 창피당하기 싫어 어떻게든 알려고 하고 아는 척 애를 쓰죠. 그렇지만 외국어나 외래어를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자신의 품격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그 외래어와 같은 뜻을 가진 우리말을 쓰면 촌스럽다고 놀리기도 합니다.


‘동아리’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는 ‘서클’이라는 외래어를 썼습니다. 처음 이 동아리라는 말을 사람들은 상당히 불편해했습니다. ‘서클’이라는 품격 있는 단어가 이미 있는데 왜 굳이 이걸 ‘동아리’라는 어색하고 촌스러운 우리말로 바꿔 불러야 하느냐고 했습니다. ‘한글은 어색하고 촌스럽다’ 반면 ‘영어는 세련되고 품위가 넘친다’라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놀랍게도 동아리가 서클을 이긴 거죠. 아마 그 당시 사람들은 ‘서클’이라는 말이 ‘동아리’로 바뀔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웃음).


지금은 동아리가 통용되고 있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 품위 없고 촌스럽다고 놀림을 받았던 '동아리'하고 지금 쓰고 있는 '동아리'는 똑같은 말입니다. 말이 달라진 것이 아니고 말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지요. 이렇게 의식을 조금만 바꾸어도 아름답고 예쁜 우리말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우리말글 사랑을 생각만이 아닌 실천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사랑 실천]

최근 개봉했던 영화 ‘말모이’는 한글과 우리말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한글과 우리말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가 우리말글을 지켜냈듯이 21세기에도 우리말글은 우리가 지키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우리말글을 지켜주겠습니까?


우리말글 사랑의 첫 단추는 우리말을 많이 쓰는 것입니다. 정말 쉽죠? (웃음) ‘커피’는 바꿀 수 없다 해도 커피를 마시는 ‘스트로’는 ‘빨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바꿀 수 없어도 인터넷으로 접속하는 ‘홈페이지’ 대신에 ‘누리집’을 쓰면 됩니다. 사실 마이크, 컴퓨터, 파일, 폴더 같은 명사류 외래어는 바꿔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술어만큼은 우리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면서 많이 들은 말이 ‘핸섬하다, 스마트하다, 젠틀하다, 터프하다’라는 것들인데, 이런 말들은 ‘잘 생겼다, 똑똑하다, 신사답다, 박력 있다’라고 하면 됩니다. 박력과 터프는 어감이 다르지 않느냐고 따지실 수 있지만, 그런 태도로는 외래어 남용을 줄일 수 없습니다. ‘박력’이라는 낱말, 얼마나 박력 있고 좋습니까?


영화 말모이에서 ‘민들레’는 문의 둘레에 많이 피어나 ‘민들레’가 되었다고 하는 설명에 많은 관객들이 감동을 받으셨을 겁니다. 우리말은 이렇게 예쁘고 아름답습니니다. 우리가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외래어가 얼마나 우리말글을 괴롭히고 해코지하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재환, 그리고 우리말]

사랑은 하는 게 아니고 빠지는 거라고 합니다. 살다 보니 한글 사랑에 빠졌습니다. 어렸을 때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올바른 한글과 우리말을 쓰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저에게 한글과 우리말의 소중함을 알려주신 국어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조금은 철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방송을 하다가 말로 ‘밥’을 먹고살고 있는데 최소한 ‘밥’ 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 사이에서는 말이 좀 틀리거나 표현이 부족하고 부정확해도 다 이해해 줍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이해는커녕 저의 부정확한 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방송을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오해는 없을 정도로 우리말글을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방법]

살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순식간이죠.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걱정하게 되고, 자꾸 보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게 되죠. 우리말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방법은 정말 쉽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랑보다 쉽죠. 우리말은 우리가 사랑만 표현하면 언제든지 우리의 사랑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웃음)


우리말글을 사랑한다면 한마디라도 더 우리말글을 쓰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해 조금 더 정확하고 올바른 우리말을 찾아가며 쓰면 되는 것이에요. 어느 언어나 그 언어가 가진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빨간불에 멈추고 초록불에 길을 건너듯이 처음에는 좀 불편하고 귀찮고 힘들어도 차츰차츰 몸에 익히면 됩니다. 우리말 사랑의 실천,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인터넷 시대의 신조어]

인터넷과 각종 매체의 발달로 모든 것이 빠르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말의 보급과 확산도 빛의 빠르기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옛날로 돌아가면 요즘 나오는 신조어의 대부분이 한 집단에서만 통용되는 은어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정한 은어를 쓰는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라면 들을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은어는 말 그대로 집단 내부에서 은밀하게 사용되다가 어딘가 틈이 생긴 수도관에서 물이 새듯이 아주 조금씩 외부로 유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은어는 일반인들의 건강한 언어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은어와 같은 신조어들이 날마다 인터넷을 타고 전파되고 널리 유통되고 있습니다. 낯선 신조어가 세대 간 소통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습니다. 신조어를 몰라서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신조어를 몰라서 젊은 세대와 소통을 할 수 없는 세상은 현재와 미래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중장년 방송인들이 손녀들과 소통할 때 손녀 세대들만 알고 있는 신조어를 몰라 곤란해하는 장면을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깔깔 웃고 즐기며 ‘저 할머니, 저 할아버지는 저것도 몰라’ 합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신조어는 생겨나야 합니다. 신조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그 언어가 저수지에 고인 물처럼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인터넷에서 ‘한국어 줄임말’을 검색하면 최근 유행하는 ‘줄임말 신조어’에 대한 내용이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일단은 너무 낯선 말들이 많아 당황스럽습니다., 게다가 읽기조차 힘든 외계어 같은 신조어들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신조어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되도록 좋은 말을 만들어 사용하자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신조어는 바로 ‘충’입니다. ‘OO충’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 개인이 대상이 아닌 한 집단을 아무 근거 없이 혐오하는 말입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너무나 큰 잘못을 해서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싶다면 그 당사자에게만 화를 내야지, 이렇게 그 당사자가 속해있는 모든 무리를 ‘악의 축’으로 만들어버리는 ‘충’이라는 신조어는 세대 간의 갈등을 만들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 집단과 다른 집단 사이의 분열과 충돌을 초래하게 됩니다.


‘OO충’처럼 하나의 말을 만들어 특정한 다수를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OO녀’, ‘OO남’ 등과 같은 말들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 아름답고 예쁜 대한민국 여성들이 모두 ‘김치녀’라 불려야 하나요? ‘김치’는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음식입니다. ‘된장녀’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된장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 아름답고 예쁘게 써도 모자랄 우리말들이 이렇게 나쁘게 쓰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런 말들이야 말로 누군가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의심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인터뷰 중 [사진=이준동]


[맞춤법이 뭐가 중요해?]

1990년대 개인 컴퓨터의 상용화를 이뤄낸 것이 바로 ‘PC통신’입니다. 우리는 ‘지지직 삐삐삐’ 거리는 모뎀 접속 잡음 소리에도 열광했습니다. PC통신이라는 공간에 들어가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죠.


PC통신 이전까지는 남이 쓴 글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서적이나 잡지, 신문 등에서만 볼 수 있었죠. PC통신 시대에 들어서며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쓴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작가나 언론인이 아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글들 속에서 맞춤법에 맞지 않는 낱말이나 표현 등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쓰거나 연애편지를 쓸 때는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꼼꼼히 살피며 정성스럽게 써 내려갔습니다. 이력서 쓸 때 맞춤법 하나하나 세심히 확인하며 작성했습니다. 명색이 대학 졸업생인데 이런 거 틀리면 안 되지 하는 경계심이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PC통신을 하게 되면서 피차일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쉽게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뭐야? 나만 들리는 게 아닌데! 다 똑같잖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글을 올리고 읽다 보니, 맞춤법 따위는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그냥 키보드의 글자쇠를 누르는 대로 글을 쓰면 됐습니다. ‘밥머것니’라고 물어보면 됐습니다. ‘밥 먹었니?’ 같은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Ai em a sutudent.’라고 쓰지 않고 ‘I am a student.’라고 쓰듯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정확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마지막 메시지]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공들여 쌓아 온 질서와 법을 외면하고 막가파 식으로 살아가는 느낌이죠. 오늘은 질문을 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말글 얘기를 많이 했는데, 평소에는 ‘지적 꼰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자중하는 편입니다.


‘꼰대’라는 말을 하고 나니 또 하나의 잘못된 혐오 문화가 생각나네요. ‘틀딱’이라는 이름으로 혐오 집단이 되어버린 어르신들. 예전에는 내 할아버지, 옆집 할아버지, 동네 할아버지 모두 우리 어르신이었고 공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삭막해져도 우리가 버려서는 안 될 가치관이 있습니다. 바로 웃어른에 대한 ‘존경과 공경’입니다.


저희들 학창 시절에도 선생님에게 ‘악질’, ‘뱀눈’과 같은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선생님들을 싸잡아 ‘담탱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선생님은 더 이상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 아닙니다. 존경과 공경 없이 과연 선생님에게 잘 배울 수 있을까요?


언어는 얼굴입니다. 조폭의 언어를 쓰면 조폭으로 보일 겁니다. 재미로 쓰다가 조폭이 될지도 모릅니다. 말은 그렇게 무서운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고운 말과 아름다운 말을 쓰는 사람은 곱고 아름답게 보일 겁니다. 성형외과에 갈 필요도 없이 미스코리아대회에 나가 진으로 뽑힐 수도 있습니다.


모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맘껏 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말은 어머니와 같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우리말을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를 지키듯이 우리말글을 지키면 좋겠습니다. 한국어와 한글로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꿈꾸며 이야기를 줄이겠습니다. 


한글이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청춘행진곡 - MC 정재환 (1990.02.19)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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