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떠한 모습이든 뒷모습을 좋아한다. 아마도 내 마음껏 오래도록 볼 수 있어서일 것이다. 사람의 뒷모습에도 독특한 그만의 표정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군중들 속에서도 뒷모습만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찾을 수 있다. 젊은이의 뒷모습은 활기에 넘치고 자신감 있는 눈동자를 보는 듯하다. 중년의 뒷모습에서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볼 수 있고 노인의 뒷모습에서 마음을 비워 가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서부 영화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석양을 향해 휘파람을 불며 홀연히 떠나는 사나이의 모습은 얼마나 멋있었는지, 그래도 마음에 아련히 남는 것은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채 돌아서는 이의 뒷모습일 것이다.
20여 년 전 나는 회사에 잠깐 근무한 적이 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남자 사원이 있었는데 그는 나와 결혼할 것이라는 등의 소문을 내며 내게 접근해 왔었다. 그러던 중 그가 전근을 가게 되어 동료들은 송별회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는 바로 나의 맞은편에 앉았었다. 그리고 술잔을 비우고 비우며 안 취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나에게 술을 가득 채운 술잔을 권했다. 나는 마시지 않았다. 그가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잠시 후 그는 엎드려서 펑펑 울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잘 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에서 한없는 외로움을 보았다. 그가 휘청거리며 걸어갈 때 내 마음에 다가왔던 허전함, 그것이 사랑이라는 느낌이었을까, 늘 가까이하려고 다가올 때 못 느꼈던 감정이 왜 그가 조용히 돌아서는 순간 나에게 찾아온 것인지…. 그가 한 번 더 가까이 와 함께 걷자고 했다면 아마도 나는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쓸쓸하고 아름다운 뒷모습은 내 가슴에 남아있지 않으리라.
올 스승의 날이 지난 후 처음 맞는 일요일 아침, 동창으로부터 고교 선생님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이제 막 회갑을 맞으신 한창의 나이이다. 작년에 만났을 때 아직 출가시키지 못한 딸을 염려하시며 중매를 부탁하였던 선생님과 올 초 따님의 결혼식장에 서 계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위암 수술로 모든 기력이 다 소진된 듯 큰 키가 더 커 보였다. 따님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실 때 선생님의 표정에 어린, 따님을 보내는 아쉬움과 흐뭇함을 동시에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었다. 그리곤 잠시 나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었다. 그 딸을 결혼시킨 지 겨우 석 달이 지났다. 졸업 후 선생님을 뵌 단 두 번 중, 마지막 만남이었다.
친구 한 명과 같이 선생님의 빈소가 마련된 대학 병원으로 갔다. 병원 입구에서 영안실로 가는 인도에는 봄빛을 받아 나무들은 날로 푸름을 더해 가고 있었다. 그 싱싱함 속에서 병이 들어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발끝에 밟히었다. 잎사귀 군데군데 갈색을 띠고 있었다. 선생님의 모습이 제 시간을 못 채우고 떨어진 나뭇잎에 비쳐 보였다. 빈소에 세워진 사진 속 선생님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계셨다. 사모님과 따님을 보자 참았던 울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사모님은 내가 스승의 날 선생님께 선물로 보내준 모시 한복을 입어보지도 못한 채 돌아가셨다면서 나를 껴안으며 통곡하셨다. 병원을 수차래 드나들었고 그렇게 빨리 가실 분이 제자에겐 암 초기이니 염려하지 말라 하였었다.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뵈었어야 하는 데….
작년 초 졸업 후 처음 고교 동창 모임에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 나를 매우 아껴주시던 선생님께서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만남은 그 소식을 들은 후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면서이다. 나는 내 모습이 늘 부끄러워 졸업 후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병환 소식을 듣고 찾아뵙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졸업 후 30년 만이었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선생님께서는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다정하게 맞아 주셨고 나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을 기억해 주셨다.
나는 끝없는 죄송스러움으로 인해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아올 때 등 뒤에서 보고 계시는 선생님의 눈길을 느끼며, 돌아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교정을 내려오다가 모퉁이를 돌게 될 때 참지 못하고 돌아다보았다. 그때 막 돌아 들어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늘 제자를 지켜봐 주셨던 선생님의 은혜로움을 보았다. 또 패기에 차셨던 모습대신 병으로 나약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파 옮을 느꼈었다. 중년이 된 제자의 뒷모습은 선생님께 어떤 여운으로 남아있었을까 ….
선생님이 가신 지 이제 6달이 되었다. 간직한 사진도 없고 눈을 감고 선생님을 떠올려도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가 이내 사라진다. 선생님을 뵈었을 때 이야기를 건네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도 희미하다. 제자가 보낸 한 통의 편지를 받고 고맙다고 전화를 주신 전화 속의 목소리는 더더욱 희미하다. 다만 고교 내내 제자를 지켜 봐 주시던 그 마음으로, 중년이 된 제자를 염려하며 제자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서시던 선생님의 뒷모습은 신기하게도 내 마음에 또렷이 남아있다.
우리는 자기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다만 다른 이의 모습에서 조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나의 그 모습이 쓸쓸함이던, 사랑스러움이거나 은혜로움이거나 아름다움이거나 누군가의 마음 한 자리 차지하는 뒷모습이고 싶다. 그리고 나와 스쳤던 많은 이의 뒷모습을 나의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련다. 우리는 떠날 때 뒷모습의 흔적을 있던 자리에 남겨 두고 떠난다. 후일 먼 곳으로 돌아간 뒤, 모든 이에게 아름다운 자취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