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어공주는?

- 디즈니의 인어공주와 한국 영화 <인어공주>

by 한혜경


슬픈 이야기가 주는 여운은 길다.

주인공의 아픔에 함께 빠져들어 저릿한 가슴을 누르던 기억은 잊었나 싶다가도 삶의 모퉁이를 돌다가 문득 마주하곤 한다.


인어공주 이야기도 그렇게 내 마음에 와 자리를 잡았다.

상상하기 좋아하던 어린 시절, 깊은 바닷속 인어들이 사는 세계는 매혹적이었다.

화려한 궁전과 아름다운 인어들, 선연하게 빛나는 산호와 해초들 사이로 색색의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바닷속도 푸른빛일까, 거기에선 인어와 물고기들이 사이좋게 지낼까, 바다 저 아래라면 비가 오고 천둥 쳐도 상관없겠지? 물은 따뜻할까? 계절은? 내 머릿속에서 상상은 무한대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 가슴 아픈 마지막!

인어공주가 왕자를 사랑해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다리를 얻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주기로 한다.

걸을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왕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위험천만한 조건이지만 인어공주는 감행한다.

오직 왕자를 보고 싶고 왕자 곁에 있고 싶다는 소망만 오롯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왕자는 자신을 구한 이가 인어공주임을 모른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었으니 자초지종을 알릴 수 없다. 결국 왕자는 다른 이와 결혼하고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결말에, 인어공주가 가여워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때는 그저 인어공주가 불쌍했지만, 사랑을 위해 소중한 것을 희생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그의 용기가 마음속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어려움을 견디는 일이 고귀하다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으므로. 아울러,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 모든 이가 내 진심을 알지 못한다는 것, 피하고 싶지만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 항상 행복한 결말만 만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느끼지 않았나 싶다.


이후 디즈니 만화가 나온 뒤 내 머릿속 인어공주의 가녀리지만 용기 있던 모습은 디즈니 만화 속 이미지로 새겨진다.

더 시간이 흘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인어공주>(1989)를 봤다. “Under the Sea”란 주제가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재미있게 봤던 영화이다.


인어 왕국에 ‘아틀란티카’란 이름을 붙였고, 인어공주엔 ‘에리얼’ 왕자는 ‘에릭’, 인물들에도 이름을 붙이고 악인도 설정하고 액션 장면도 넣어, 구체적이면서 갈등과 대립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는 서사를 만들었다.

가장 큰 차이는 결말이 다르다는 점이다.

왕자와 결혼하는 행복한 결말은 훈훈하기는 하지만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을 주었다. 마지막에 거품이 되어 애틋한 마음으로 왕자를 내려다보는 내 인어공주가 사라진 것 같은 쓸쓸함이랄까.


그리고 디즈니사의 기술과 전략은 계속 발달하여, 2023년 <인어공주> 실사판을 제작한다.

이때 인어공주 역에 할리 베일리라는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여 많은 논란을 자아냈다. 앞선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인어공주는 흰 피부에 붉은 머리를 한 백인이었으므로, 이 이미지를 간직해 온 사람들에게 흑인 인어공주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원작을 훼손했다며 거부감을 표시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포용성의 확대”라고 반겼다고 한다. 머릿속에 저장된 이미지가 얼마나 견고한지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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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제작된 한국의 영화 <인어공주>는 또 다른 얼굴과 이야기를 전한다.

영어 제목이 “My Mother, the Mermaid”인 것에서 암시하듯이, 딸이 바라본 엄마의 이야기이다.

배우 전도연이 딸 역할과 젊은 시절 엄마 역을 맡고 고두심이 현재의 엄마 역을 맡아 열연했다.


고두심이 분한 조연순은 현재 때밀이로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다.

20대인 딸 나영이 보기에, 엄마는 돈이 제일 중요한 여자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함부로 침을 뱉으며 욕을 입에 달고 산다. 계란 값 400원을 받아내려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울 정도로 억척스럽다.

착하지만 무능한 아빠에게 악다구니는 예사이므로, 나영에게 가족은 아름다운 기억이란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한 어떤 것이다.

오죽하면 고아가 부럽다. 남자 친구가 있지만, 엄마 아빠처럼 살까 봐 결혼할 생각이 없다.


아빠 진국은 돈도 잘 벌지 못하는데 그나마 있는 돈을 빚보증으로 다 날린 인물이다.

감독은 영화의 첫 장면을 “내 꺼여, 내 꺼여.” 연순의 울부짖는 소리로 시작하여 이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국이 빚보증해 준 사람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것이다.

그러니 텔레비전 앞에서 웃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은 한심해 보일 뿐이다. 그러던 중 쉬고 싶다며 집을 떠났는데, 알고 보니 병이 깊은 상태였다.


나영은 아빠를 찾으러 엄마의 고향 하리로 떠난다.

뉴질랜드 교육이 잡혀 있었지만 “여행은 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 중얼거리며 하리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나영은 시간을 거슬러 젊은 시절 엄마와 아빠를 만난다.

천진하고 순수한 섬 소녀와 따뜻하고 친절한 젊은 우체부. 소녀는 우체부를 짝사랑하고 우체부 역시 소녀를 좋아하게 된다. 까막눈인 소녀에게 글을 가르치며 둘의 정은 더욱 깊어진다.


푸른 바다, 맑은 하늘, 물질하는 해녀들, 바다 위 둥둥 떠 있는 붉은빛 테왁들, 소박하지만 정겨운 돌담으로 구분된 마을 집들과 논, 그 사이로 우체부를 태운 자전거가 한가롭게 지나가고, 우체부를 불러 막걸리 한 잔을 권하는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는 정과 사랑만 피어난다. 갈등과 싸움, 악다구니, 욕설, 살기 위한 몸부림, 땀과 눈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녀 일을 하며 철없는 동생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연순도 씩씩하게만 보인다.


전화백.jpeg 전창운 화백의 작품



이에 비해 현재 연순과 진국의 모습은 사랑을 이룬 후의 현실이 얼마나 처참하게 변할 수 있는지 잔인할 정도로 리얼하게 보여준다.

착한 성격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니다. 빚보증으로 돈을 날리고 사기당하기 쉬운 어리석음의 다른 표현이다. 풋풋한 소녀도 무능한 남편 대신 생활을 꾸리다 보니 함부로 침을 뱉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여성이 되었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은 훼손되지 않은 영원한 기쁨으로 간직되어 있다.

진국이 죽음을 앞두고 찾아온 곳이 연순을 만났던 섬이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바다를 향해 앉아 있는 젊은 진국의 뒷모습이 현재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오버랩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싱그럽던 젊은 날이 지나가는 동안 거쳐왔던 길들, 겪었을 아픔과 슬픔,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 등이 그 뒷모습에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오지 않겠다고 고집 피우던 연순은 결국 와서, 누워있는 남편과 등을 지고 앉아 속마음을 토로한다.

미안하다는 남편의 말에 떵떵거리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왜 죽냐며, 이 꼴 안 보려고 오지 않으려 했다고 울음 섞인 소리로 한탄한다.

“평생을 나한테 못 들을 소리나 듣고...” 하는 말에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거친 물살에 밀려 엉뚱한 지점에 와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다음 장면은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어린 딸과 함께 옛 사진첩을 보는 나영을 비춘다.

사진첩에서 부모의 젊은 날이 담긴 마을 단체 사진을 본다. 마을버스가 생긴 기념으로 온 마을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인데 버스 옆으로 삐죽 우체부가 서 있다. 아빠의 표정이 애매해 나영은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본다.


목욕탕에서 변기 청소 중이던 연순은 바쁜데 전화질이냐며 욕을 한다.

“웃고 있어? 안 웃고 있어?” 묻는 딸에게 연순은 욕을 하면서도 답한다. “웃겄제.”


그리고 손님 때를 밀고 욕탕에 기대앉아 사진 찍던 날을 회상한다.

찡그려 있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번진다.

“으이그, 싱건 년. 웃지, 울겄어?” 혼잣말한 뒤, 탕 속으로 잠수한다.

이어지는 장면은 푸른 바닷속에서 자맥질하는 젊은 연순의 모습이다. 비록 때밀이로 목욕탕을 헤엄치고 있지만, 이는 젊은 날 해녀 삶의 연속임을 암시한다.


이 마지막 시퀀스는 세상을 떠나도 사진으로 남아있는 풋풋했던 젊은 날을 부각하면서, 험한 삶을 헤쳐오면서도 진국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화면 가득 환한 미소가 피어오른 연순의 얼굴은 사랑을 확신하는 자의 득의만면한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가슴속에는 거칠고 각박한 삶을 꿋꿋하게 감당해 온 당당한 인어공주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 <그린에세이> 2025 7,8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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