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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Mar 15. 2024

봄날의 풍경 (1)

<별 헤는 밤>과 <배따라기>의 봄 


 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가 몽글몽글 녹기 시작한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순이 살며시 돋아나고 남녘엔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봄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다. 

기후변화로 이상 현상이 많아지는 요즘, 봄을 다시 만날 수 있음이 새삼 감사하다. 


겨울을 견디고 맞이하는 봄은 고난을 감내했을 때 밀려오는 환희를 연상시킨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이겨낸 후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 길수록, 추위가 모질수록, 봄을 맞는 기쁨은 크다. 

이런 까닭에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봄은 고난과 죽음, 시련을 이겨낸 생명과 삶, 희망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무력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던 윤동주는 그래도 ‘봄’이 오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자각으로 (<쉽게 씌어진 시>) “밤이면 밤마다” 참회하면서(<참회록>), ‘겨울’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별 헤는 밤> 중에서     



 곧 지금은 죽음처럼 암담한 겨울이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고, 그때 부끄러움은 ‘자랑’으로 변할 것이라는 소망을 품었던 것이다.     





1921년에 발표된 김동인의 <배따라기>는 또 다른 성격의 봄을 그린다.   


 이 소설은 일종의 액자소설로서, ‘배따라기’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는 사내의 사연이 속이야기라면 그 사연을 듣고 독자에게 전하는 화자 ‘나’의 이야기가 액자의 틀 역할을 한다. 


 어디선가 ‘배따라기’ 노래가 들려오기 전까지 ‘나’는 모란봉 기슭에서 따스한 봄의 정취에 흠뻑 취해 있다. 

대동강의 뱃놀이, 모란봉 기슭의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 ‘우단보다도 부드러운 봄 공기’ ‘꽤 자란 밀 보리들로 새파랗게 장식한 장림(長林)의 그 푸른빛’ 등, ‘사람을 취케 하는 푸르른 봄의 아름다움’과 ‘봄의 정다움’을 만끽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봄 풍경에서 그는 유토피아를 떠올리는데, 이 상념은 진시황에 대한 생각으로 번진다. 

일반적 평가와는 다르게 그는 진시황이야말로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자로서 ‘인생의 향락자며 역사 이후의 제일 큰 위인’이라고 여긴다.


이는 도덕과 무관하게 향락을 중시하는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한편으로, 삶에는 예상하지 못한 결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직 겪지 않은 젊은이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태도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라는 ‘배따라기’ 사내의 사연과 배치된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평생 회한을 안고 살아가는 사내의 삶은 화자의 삶과 달리 봄날로만 채워지지 않는 삶의 비애를 곱씹게 하는 것이다.  


* 격월간지 <그린에세이> 2024. 3,4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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