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바깥>을 읽고
“못 가십니다. 보호자 없이는 여행을...”
누구나 언젠가는 듣게 될 말이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불쑥 듣게 될 때, 이제껏 당연하게 누려왔던 세계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저지당할 때, 그 누구든 막막함과 충격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경은의 <바깥>은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을 이 경험을 응시하고 곱씹음으로써 눈부신 전복적 결론에 도달한다.
‘조금 빠르다는 생각’ ‘창피한 마음과 서글픔’ ‘가슴에 고인 수액이 사방으로 빠져나가는 소리’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꺼끌꺼끌”함 등을 이경은은 가감 없이 바라본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쉽지 않았다”라고 토로할 수 있으며, 거울 저편에 “다른 몸이 턱 하니 서” 있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다시 제자리로 가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상관없다.”
“휘청거리더라도, 기어서라도 갈 수 있으면 언제라도 언제까지라도 간다, 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이어서 카프카를 떠올리고, 작가의 존재방식과 운명에 대해 성찰하는데, 이에서 그의 시선이 ‘몸’에 갇히지 않고 몸 바깥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은 그를 세상의 ‘바깥’으로 밀어냈지만, 그의 사유는 일찌감치 몸의 한계를 뛰어넘어 종횡무진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는 것이다.
- 나혜영 교수 작품
그 사유의 끝에서, 안과 밖이란 거꾸로 보면 밖과 안이 되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그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 발견은 코페르니쿠스의 전환과도 같다. 안과 밖이란 ‘우리의 눈과 머리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요 환상’이라는 사실, 그래서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기로 결정했는지에 달린 것”이란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으므로.
지적 사유가 힘을 잃을 때도 있어서 온갖 상황에서 벗어나 “통째로 없는 셈” 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작가의 운명은 ‘안에 이미 피기 시작한 그 무엇’을 외면하지 못한다.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두려워 마라.” 외치며 달려갈 수밖에 없다.
바깥은 텅 비었고 천지는 반짝이고 게다가 카프카가 응원하는데 무엇이 겁나랴.
지구라는 행성에 갇히지 않고 “마침내 어느 날 단 하나의 빛이 될 때까지” 날아가는 아폴리네르의 <행렬> 속 새처럼, ‘몸’의 범주와 안과 밖을 경계 짓는 모든 기준을 벗어나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는 작가에게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8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