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시키는 메뉴가 있다. 그건 역시 아메리카노.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아메리카노를 즐겨마신 것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커피를 마시지 못했었다. 커피를 처음 마셨던 날, 심장이 두근거려서 밤을 꼴딱 새웠다. 그 이후 근 십 년 동안 카페에서 음료를 시킬 때마다 처음 커피를 마셨을 때의 그 두근거리던 심장과 잠들지 못해서 고통스러웠던 밤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것은 사실적시이기도 하고 스몰토킹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예민한 기질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하는 유치한 속내였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을 취업하지 못했을 때, 마침내 친구 중 유일한 백수가 되고 친구들과 만나면 얻어먹기만 했을 때, 커피 종류는 입에도 안 대던 내가 아메리카노를 시키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커피의 탄 맛과 신맛을 아는 사람이 된 양 말하자, 친구들은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말했다. 커피 맛을 아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무슨 상관이지?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게 된 이유는 그냥 매장에서 제일 싸기 때문이었는데. 염치가 괴로움이나 취향보다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나도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수록 카페인의 쓴맛이 익숙해져 갔다.
취업을 한 이후에도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여전히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심장이 두근대고 잠을 못 이루지만 더는 그 과정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린 나는 커피 마시면서 느끼는 괴로움보다 잠을 자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더 힘들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는 나에게 상징적인 음료이다. 이 씁쓸하고 시큼한 맛을 좋아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장점이었던 내가 변명을 하게 만든 굴욕감을 줬던 음료이기 때문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싫어하는 것을 견디고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는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을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