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 번화가를 걸어가다가 우연히 하수구에서 머리를 내민 쥐 두 마리를 본 적이 있다. 쥐를 밟을 뻔한 친구가 기겁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사이 쥐들은 유유히 하수구 속으로 사라졌다.
찰나의 해프닝이었지만 집에 오는 내내 쥐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릴 적 쥐구멍에 숨겨놓은 내 돈 오만 원과 그 행방에 대해서.
원래도 부유하지 않았던 우리 집은 도박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나날이 궁핍해졌고 하루아침에 시골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한 칸뿐인 방에는 쥐가 들끓었고 나와 동생들은 쥐새끼처럼 뒤엉켜서 짐승인지 인간인지 모를 꼴로 커가고 있었다.
이런 우리에게 친척들이 동냥 삼아 주는 돈은 학교에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자금줄이었다. 가끔 들어오는 푼돈이야 우리의 몫으로 쓸 수 있었지만, 목돈 특히 명절이면 들어오는 큰돈은 부모님에게 들어가기 일쑤였다. 친척들이 우리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엄마 아빠 얼굴을 보고 주는 돈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더라도 그것은 부모님에게 주는 돈이라는 것이 부모님의 논리였다.
그 해 세뱃돈도 어김없이 부모님께 갖다 바친 후 헛헛해진 마음이 잠잠해지던 설날이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외가 친척이라는 그녀는 서울 사람 특유의 상냥한 말투로 내게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대충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공부는 잘하는지 같은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물어보는 흔한 질문들이었던 거 같다. 나는 그에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어물어물 한 마디씩 내뱉고는 영 어색한 기색으로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멀뚱히 앉아만 있었을 터였다. 그녀의 미끄러울 정도로 보드라운 손은 잔뜩 터서 거칠거칠한 내 손을 연신 쓰다듬더니 어느 순간 무언가를 쥐여줬다.
‘엄마한테 뺏기지 말고 너만 몰래 써야 해.’
친척이 돌아가자, 엄마는 내게 돈을 받았냐고 물었다. 못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친척이 말한 대로 아무와도 돈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에 돈을 숨기자. 나는 쥐구멍 속에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다섯 장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쥐가 돈을 물어갈까 봐 시간이 날 때마다 더러운 구덩이에 손을 집어넣어 제자리에 돈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학교에서 돌아온 후 쥐구멍에 손을 넣었을 때 돈은 잡히지 않았다. 쥐가 물어갔을까? 아니면 내가 손을 자주 집어넣는 것을 본 다른 식구들이 가져갔을까? 짚이는 점이 많았지만 나는 차마 가족들에게 내 돈 못 보았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쥐구멍을 뒤졌지만 결국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저 쥐가 물어갔나 보다 하는 수밖에는.
이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그깟 오만 원 별것도 아니니 잊어버리라는 소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일은 내 인생의 물음표 중 하나가 되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고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내 돈 오만 원. 그 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정말 친척에게 오만 원을 받은 게 맞는 걸까. 아니라면 내가 쥐구멍에서 만진 것들은 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