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같은 액션 그 ‘잡채’인 영화를 볼 때, 뇌를 버리고 봐야 하는 게 맞다. 우스갯소리지만 번역할 대사가 거의 없어서 황석희 번역가에게 극찬을 받았다는 이 영화는 정말로 킬러들의 액션과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는 음악으로만 가득 차 있다. 이런 영화에서 서사가 뭣이 중헌디, 킬러 중의 킬러 존 윅이 왜 폭주하는지 왜 쫓기거나 쫓는지 정도만 간단히 설명되면 그만이다. 애초부터 시리즈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전편의 흥행으로 어쩌다 보니 4편까지 와서 우리 키아누 리브스 행님께서 환갑을 앞둘 때까지 맷집 좋은 킬러 역할 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아무리 뱀파이어설의 주인공이고 세계 최강동안을 지키고 계시긴 하지만, 가는 세월과 노화를 어찌 막으랴. 1, 2편에 비해서 무거워지고 더 둔탁해진 그의 몸놀림을 볼 때마다 조금 안타깝기는 했다.
이런 액션물, 특히 폭력적인 킬러세계를 다룬 영화를 나는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그런데 존 윅 3편을 먼저 영화관에서 우연히 그리고 아무 기대 없이 보았다가, 이상한 힘에 끌리듯이 바로 뒷날 1편과 2편을 결제해서 열심히 아니 열광적으로 보고 있더라. 그리고 4편이 나오기를 그 누구보다 기다렸다. 그러다 정작 개봉될 당시에는 개인적 사정으로 너무 바빠 영화관을 도저히 가지 못했고 이제야 뒤늦게 대망의 완결편(아닐지도?)을 집에서 보게 됐다. 1편이 나온 뒤 거의 8년이 지나서야 만들어진 4편이니 그 이전 스토리 다 가물가물하지만, 이 흐릿한 기억은 4편을 보는데 어떤 지장도 주지 않았다.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잘 즐기며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정말 쉼 없이 끝없이 싸우고 죽여야만 했던 이 영화가 일단 이 선에서 잘 마무리됐다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흡족했다. 그런 의미에서 5편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무서운 할리우드 놈들, 1조 넘는 돈맛을 봤는데 멈추지 않겠지. 감독도 인터뷰에서 존 윅이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떡밥을 계속 남기니 뭐라...
그런데 나름의 완성미를 갖춘 4편까지 다 보고 나니, 그리고 잃어버렸던 전편들의 기억을 인터넷의 힘으로 재소환, 다시 짜 맞춰 보니 좀 의아했다. 이 영화 보고 나서 심각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그래도 계속 밀려드는 질문들이 있었다. 4편을 보는 동안에는 존 윅이 이 킬러의 세계 최고 존엄인 ‘최고 회의’를 들이받고 대학살에 가까운 킬링을 하게 된 연유는 당연히 그리고 뻔하게도 ‘복수’였겠거니 했다. 그러나 가만, 1편까지 거슬러 따져보니, 그가 너무나 사랑하고 늘 그리워하는 죽은 아내에 대한 복수가 그 시작점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은 죽은 아내가 본인을 대신하라고 선물로 남겨놓고 간 강아지의 죽음 때문이었던 것! 아내의 분신과 같던 강아지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가 복수로 이끌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강아지를 죽인 것은 동네 양아치 짓이었지, ‘최고 회의’ 장로들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고 킬러 생활을 정리하고 은퇴한 존 윅이 다시 킬러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화려하게 뉴욕, 모로코, 도쿄, 프랑스, 베를린 등을 헤집고 다니며 그 엄청난 전투와도 같은 싸움과 살인을 한 원인이 도대체 뭐였던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 친구를 잃은 데 대한 처절한 복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잠시 대혼란) 그가 살고자 전쟁을 벌일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그가 킬러들의 세계 속 엄정한 규칙을 어겼고 이에 대한 최고 회의의 심판과 제재로부터 이 모든 사단이 난 것이다. (누군가가 이 지점에서 서사와 개연성은 애초에 밥 말아 먹은 영화에서 왜 이러시냐 하면 부끄럽고 머쓱할 뿐이나...그래도 좀 더 파고들고 싶었다. 날 말리지마.)
<존 윅 1>은 <독 윅>으로 불리기도...
그러고 보니, 이 영화도 그렇고 소위 킬러들의 세계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그 세계 외부인이 보자면 좀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공통적으로 있다.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살인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세계에는 현실 세계의 실정법보다 더 무서운 그들만의 규칙과 질서가 있다. 무법자로서 내키는대로 살 것 같은 킬러들이 이상하게도 이 규칙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절대 법칙으로 엄수한다. 존 윅처럼 킬러 중의 킬러 전설적 존재이자 자유로운 영혼이더라도 예외가 아님을 이 영화는 4편에 걸쳐서 고집스럽게 보여준다. 이를 어길 시 몰고 올 후폭풍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전 세계 킬러들의 대환장 온갖 대결을 통해 입증해 버렸다. 그리고 존 윅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 세계의 규칙 중 하나를 어긴 결과로 바로 ex-communicado ‘추방’된다. 이 직후부터 그는 죽어야 마땅한 존재로 규정되고 모든 킬러들의 표적이 되어 눈 한 번 붙일 새 없이 내내 쫓기고 쫓긴다. ‘이 세상의 법을 어긴 자’ 존 윅, 그리고 그 대가로서 바로 ‘추방당한 자’ 존 윅, ‘어느 누구나 가차 없이 죽여도 되는 존재’ 존 윅... (뭔가가 머릿 속에 맴돌기 시작한다.) 응? ‘벌거벗은 생명’ 존윅?!
사실 너무나 난해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이와 더불어 언제나 같이 얘기되고 논쟁의 대상이 되는 칼 슈미트(<정치 신학>은 읽지도 않았으니 더 입을 닫아야지)의 주권자와 예외 상태를 아무 데서나 운운하면 안 된다. 특히, 원초적 재미만 따지는 <존 윅> 영화에 이런 걸 들이대는 것은 무리와 억지를 넘어선 위험한 짓임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 법 위에 서서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국가 권력처럼 이 영화에서 ‘최고 회의’는 군림하고 있으며, 이 법적 세계에 예속되는 자와 배제되는 자가 끊임없이 결정, 구분되고 지워지는 것이 이 세계에서 추방된 존 윅이 호모 사케르로서 죽지 않기 위해 고투를 벌이는 모습과 이상하게도 중첩이 된다.
소위 근대 국가 체제에서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 권력의 폭력에서 비롯된 생명 정치 그 판을 킬러들의 세계로 보여줬다고? <존 윅>이? 분명, 감독(동시에 작가)이 이를 의도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너무 확신해서 쏘~리) 하지만 폭력의 최정점을 보여주고자 한 영화는 결과적으로 (감독은 또 어쩌다) 그 폭력의 기원과 본질까지 꿰뚫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무법천지일 것 같은 킬러들의 세상이 오히려 작위적일 정도로 경직된 법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은 이 세상 가장 폭력적인 집단 우두머리들이 쥐고 있다. 이 최고 권력의 결정 사항으로 킬러들이 죽여도 마땅한, 아니 죽여야만 하는 대상이 정해진다. 그러고 보니 벌거벗은 생명을 처리해야 하는 과제가 킬러에게 주어지는 거 가장제격인 듯 싶다. 이런 통치 방식, 그야말로 현대 국가들이 자칫 선 넘고 전체주의적 폭력을 휘두르는 행태와 닮아 있는 거 아닌가!
존 윅이 왜 분노하고 싸우기 시작했는지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 그가 어느 누구에게나 죽임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로 끝나지 않기 위한 엄청난 노력 끝에 마침내, 과거의 귀족이나 황야의 무법자처럼 명예 회복을 위한 결투로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는 사회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수많은 평범한 사람처럼 다정다감한 남편이라는 비명을 남긴 채. 호모 사케르로 죽지 않은 그의 결말, 하지만 이러기 위한 그의 저항과 분투에도 불구 '최고 회의' 권력 시스템은 변하지 않고 계속 존재한다. 그걸 집행하는 사람들이 바뀔지라도 말이다. <존 윅>이 재현하고 보여 준 세상은 결국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폭력은 너의 것’이라고 우긴다면, 나 선 넘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