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흔이라니
정말 중요하지 않은 기억인데도 나에게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90년대 어느 뉴스 속 인터뷰 장면. 화면에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이름과 그 옆 괄호 속에는 21이 적혀있었는데 그 숫자를 보고 그 당시의 나는 '와, 완전 어른이네.'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당시 6학년 사춘기 소녀의 다이어리엔 HOT 오빠들의 스티커 옆에 이런 문장이 적혀있었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다 커버린 느낌이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전혀 어른이 된 것 같지가 않다. 사실 1도 믿을 수가 없다. 내가 마흔이라고???? 언제 이렇게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을까.
올해 봄,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났다. 약 십년의 기간동안 누군가의 결혼식이라는 절대 피할 수 없는 행사에서 겨우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이었다. 그것도 식을 보고 밥을 먹는 정도의 시간만이 허락된 빡빡한 우리의 삶이 때론 씁쓸하기도 했다.
13살 그 때를 떠올려보면 학교를 마치자마자 학교 옆 아파트 놀이터에서 저녁이 될 때까지 뭐가 그리도 재밌었는지 눈물을 줄줄 흘리고 배를 붙잡으며 웃고 놀았었다. 놀고 놀아도 또 놀거리가 샘솟았다. 때론 싸우기도 했지만 싸울 정도의 관계를 가진다는 게 어려운 요즘, 나는 그 때의 우리가 참 소중하다.
오랜만에 만난 마흔의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작년에 결혼해 돌배기 아이를 키우는 친구, 딸 하나가 좀 크고나니 남편과의 시간이 어색하다는 친구,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된 친구는 집에서 주식과 부동산 공부를 하고 열심히 투자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의 일상과 다양한 종류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애를 쓰며 살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있어?"
친구들의 물음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 주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요즘 어려운 학교 얘기를 해줄까, 아님 두 아들을 키우는 얘기를 해줄까?' 그런데 그런 얘기말고 진짜 내 얘기가 하고 싶었다. 나는 불쑥 이 말을 꺼냈다.
"나는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어."
"엥? 뭔 뚱딴지 같은 소리고??"
친구들이 엄청 웃었다. 나도 같이 한참을 웃었다.
하지만 그 때 나의 마음은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안정적인 직장과 그로 인한 고정적인 월급. 그냥 그 때의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히 별탈없이 일정수준을 유지하며 잘 살 수 있으리라.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이 항상 답답했다. 이 일 자체가 엄청 갑갑했다기 보다는 내가 정말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다는 욕구가 깊은 곳에서부터 계속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노트에 적었다.
'앞으로 나는 모험하는 삶을 선택한다.'
니체의 말했다. "너의 오두막을 불태워라." 자신에게 익숙한 모든 것과 치열하게 결별을 할 때 지금과 다른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가족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삶이었다면 이제는 내 삶을 향해 모험을 떠나리라. 도전하며 살리라.
11월 중순에 접어든 지금 돌아보면 나는 이미 작지만 큰 도전들을 해왔고 내년에는 더 큰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도 정말 궁금하고 기대된다. 앞으로의 여정들도 차근차근 글을 써봐야지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