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에밀리아 철학
사실,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충분히 이해될 만큼 쉬운 질문이었지만 순간 머릿속이 멈춰버린 듯했다. 심장이 정지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단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나는 평소 잘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얇은 교복에 맨살을 드러낸 채 친구를 매일 기다리곤 했다. 친구는 늘 늦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미련한 짓 같았지만 그땐 그런 기다림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친구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라 생각했는지 아무리 늦어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는 데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부터는 달랐다. 아이가 뒤집고, 기고, 걷는 매 순간이 엄마로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이가 늘 아프지 않았으면, 좌절하지 않았으면 했다.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것이 좋은 엄마라 착각했다. 당시 유행하던 TV 프로그램 속에서 칭찬받는 엄마들처럼 아이의 감정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원하는 것에 귀 기울여 주면 되는 건 줄 알았다. 나는 어렵지 않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했지만, 문제 상황이 닥치면 번번이 무너졌다. 왜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좋은 엄마니까 참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참고 또 참다 폭발하고 반성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머리가 멍한 채로 두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마구 흔들리고 있을 때 또 하나의 뾰족한 질문이 정확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어머니는 기다린다는 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그 말씀 한마디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누구보다 기다리는 일에 자신 있었지만, 정작 내 아이에게는 제대로 기다려준 적이 없었다. 항상 마음이 급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미성숙한 존재로 여겼다.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에 아이가 도전하고 실패할 기회를 빼앗고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시면 아이는 스스로 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입소 상담에서는 아이의 하루 일과와 활동 프로그램에 대해 묻곤 했다. 하지만 이곳은 좀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부모의 철학과 태도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상담을 마치고 집에 가려 아이의 신발을 신기려는 순간, 심지어 원장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어머니! 그러시면 안 돼요. 아이가 스스로 신을 수 있는데 왜 어머니가 대신해주시나요?"
"아... 네네."
머쓱해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아이의 신발을 꺼내주려던 손을 얼른 집어넣었다. 그러자 아이는 주섬주섬 자기 신발을 꺼내 신었다.
원장님 앞에서 눈물도 흘리고 혼도 났던 특이한 입소상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여기에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느티나무 옆 나무문을 닫고 걸어 나오는 순간 곧바로 결심했다. 이곳에서 아이의 두 번째 기관생활을 시작하기로.(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