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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 워블의 본모습

10화

by 현영강

집으로 돌아오는 길, 퓨티는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눈이 퀭했다. 발뒤축이 시티 해안가 낚시꾼들의 바늘에 꿰인 것처럼 뒤로 끌려가 있다는 표현이 알맞을까. 퓨티의 머릿속은 온통 책의 결말 장면이었다. 눈을 얻어맞은 듯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나타나곤 하는 장면들. 장면은 늘 뒤바뀌었지만, 새 장면에서 바뀌는 것이라곤 구도, 색, 형상 같은 쪼가리들뿐이었다. 다른 것은 없었다.


“그래, 맞아. 딱히…”


“딱히 이럴 기분으로 따라나선 건 아니었어.”


퓨티는 제자리서 뒤돌며 멀어진 사형대의 꼭대기를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풀죽은 얼굴로 되돌아와, 처량한 모습을 내비쳤다. 오전에 내린 호우, 마을에 있어 게릴라성 호우는 그러한 존재였다. 겨울을 물리쳐 준 대가로 더위에 빌붙어 공생하는 삶을 허락받은 악귀와 같은 존재.


비가 오는 날이면 나서는 사람 없이 마을은 조용했다. 그들은 쉬었고, 그들은 숨었다. 집의 빗장을 올리기 전, 퓨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속에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기에 어떤 연유로 그런 행동이 나왔는지는 퓨티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거무칙칙한 구름 사이로 옅게 벌어진 작은 틈이 너무도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마을을 뒤덮은 무채색과 맞서는 유일한 샘터였다. 퓨티는 우연으로 발견한 그곳을 한 점의 여백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금 뒤따르는 비참함과 맞닥뜨리려는 그때, 퓨티는 지금의 자신을 꼭 빼닮은 여인 한 사람이 맞은편 난간에 기대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체 푸른 물감에 흰색을 녹인 듯한 연한 색 계열의 원피스, 그리고 그 위에 감긴 베이지색 스카프. 공허한 눈으로 그를 몰래 흘겨본 퓨티는 달라진 한 가지 사실을 속으로 알 수 있었다. 워블을 향한 자신의 오늘 마음가짐엔 평소와는 차이가 있구나, 라고. 퓨티는 왠지 집으로 들어가기 싫은 기분이 들었다. 퓨티는 빗장 위에 올린 손을 거둬들이고 몸을 돌려 축축한 바닥에 몸을 주저앉혔다. 워블은 멀리서 보아도 힘이 없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특히 바람이 워블을 향해 불어, 풍성하던 원피스가 그녀의 몸에 달라붙을 때면 그 같은 면이 더욱 잔혹하게 도드라졌다.


‘죄책감인 건가?’


퓨티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다음 한 번은 소리 내 중얼거렸다.


“저런다고 떠나간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문득, 위에서 불던 바람이 아래로 내려왔다. 적당히 기분 좋은 정도의 서늘함을 유지하고 있는 바람에 퓨티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바람이 지나가고도 뒤이어 전과 같은 것이 불어오진 않을까, 하는 기대로 퓨티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바람은 찾아오지 않았다. 바람 대신 어디선가 노크하는 듯한 소리가 퓨티의 귓가로 들려왔다. 자연의 소리겠거니 퓨티는 무시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동일한 소리가 똑같은 간격으로 울려오자, 퓨티는 눈을 떴다.


‘딱, 딱.’


눈을 뜬 퓨티는 소리가 피어난 위치를 단번에 발견했다. 그리고 손을 든 워블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퓨티는 작게 속삭였다. 이어서 워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라올래요?”


그에 퓨티는 물었다.


“올라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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