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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 대회 3일 전, 디케이의 부상

11화

by 현영강

대회 3일 전, 거리는 고조된 사람들로 가득했다. 번들거리는 무테안경을 눌러쓴 디케이가 주인공이었다. 흰색 가운을 펄럭이며 사람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친 디케이는 그대로 길을 질러 단상으로 걸음을 내려놓았다. 달아오른 군중들 사이로 눈동자가 바삐 굴렀다.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네 명…, 그들은 오래전 꿈을 보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래된 것이라, 그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자각할 만한 척도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때마침 군중에 섞여 있던 ‘그’가 소리치지 않았다면 그들은 혼란 속에서 영영 눈을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약속의 날이 아닙니다, 디케이 씨! 거기서 내려오세요!”


혀가 풀린 목소리였다. 또, 검은 모자에 덮여 있음에도 취한 얼굴이 외관에 드러났다. 홈의 손에는 술이 담긴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찰랑이는 율동을 보건대, 이미 병을 거의 비운 모양이었다. 디케이는 홈, 그리고 그의 옆에 붙어서 힐끔거리는 사람들 쪽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 다음, 헐렁한 가운에 넣어 있는 팔을 좌우로 벌려 몸집을 부풀렸다. 확성기가 디케이의 오른손에 쥐여 있었다. 그를 본 홈이 다시 구시렁거렸지만, 이제는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디케이의 손을 응시하며 어서 확성기의 전원을 켜라는 무언의 눈길을 보냈다.


“실례하겠습니다.”


디케이가 특유의 굵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리고 이내 본래의 성량으로 되돌아와, 꾸짖음 가득한 목소리로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은 속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눈이 가려진 채 살고 있습니다!」


“저 디케이는 오늘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밝힐 것입니다! 그간에 행한 거짓과 농락을 여러분들로부터 모조리 뿌리 뽑을 것입니다!”


수선하던 단상 아래로 일순 적막이 찾아왔다. 술에 젖은 홈 역시 찢어진 눈초리로 디케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망자들은 눈치가 빨랐다.


머물던 어둠으로 자극적인 빛이 들어오는 때면, 그들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육체적 신호보다는 정신적 신호인 것이다. 언제고 곤두서 있는 이라면 오늘 하루가 시작되면서부터 알았을지도 모른다. 마을의 단상에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과 그곳에 나갔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디케이의 아래 서 있는 이들은 모두 그를 알고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말해 보시오.”


군중의 제일 좌측에서 피어난 목소리였다. 중년 남자의 오른팔에는 고개를 꾸벅이며 졸음을 참는 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선 여러분들이 기존에 아는 지킴이라는 틀부터 거짓이라고 부정해야만 합니다! 또한, 제가 지금서부터 하려는 말들은 저만이 알고, 혼자만이 상상하여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닌, 진실에서 비롯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들은 진정한 즐거움과 진정한 행복의 차이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계시기에, 오늘의 제 말뜻을 잘 헤아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디케이의 서두가 끝나자, 졸던 아이의 고개가 완전히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털썩.’


말을 꺼낸 남자에게서 난 소리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조용히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곳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아래로 내려갔다. 뻣뻣했던 사람들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만큼 번지는 속도가 빨랐다.


“좋습니다!”


단상 아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자리에 주저앉기를 마치자, 디케이가 말했다. 디케이는 손에 쥔 확성기를 입술에 바짝 붙이고서 말을 이었다.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마토 씨가 등장하고부터일 겁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그가 저만큼 학식이 깊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불필요한 부정! 애초에 마토 씨는 마을이 발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숨은 가장 큰 오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를 포함한 모두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입니다!!!”


디케이가 남은 숨을 내쉬며 단상 아래를 보는 때는 이미 검고, 낯선 자리로 변한 뒤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 그늘이 덮여 있었고, 이미 일그러짐을 예상했다는 사람처럼 눈을 감은 이도 있었다. 제일 앞자리의 한 여인이 디케이를 향해 계속하라는 제스처를 보내왔다. 디케이는 그녀를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 했다.


“본디 지킴이는 이름 그대로의 일을 도맡는 직책이었습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있는 존재! 시티의 창을 막아 세울 지주와 같은 존재! 하지만 시티에서 도망친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은 마음속 삶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하기 위한 최선의 위안거리에 불과하며, 특수한 힘을 가진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요! 그러나 우리는 모른 척했습니다! 그로써 투지라는 감정을 유지하고, 그로써 도망자라는 신분을 외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홈이 입을 열었다.


“지킴이가 하는 일이 겨우 위안거리라고요? 제가 들었던 사실과 다른데요, 디케이 씨.”


“그래, 홈. 지킴이는 네 머릿속의 그런 대단한 존재가 아니야.”


디케이는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디케이의 말을 들은 홈은 앉은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 경련하듯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홈의 손에 들린 유리병이 그를 따라 비틀거렸다.


“그런 거짓말이 어딨습니까?! 저는 마을이 눈에 보인 그 순간부터 지킴이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게 다 헛꿈이었다고요? 그 말을 하는 겁니까? 디케이 씨?”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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