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HAPTER 12: 지킴이, 페리의 정체

12화

by 현영강

적당한 선 즐기기에 능한 유혹이었다.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고 넘어갈 만한 둥글둥글한 말. 어조, 몸짓, 표정, 모든 게 그랬다. 방심도 아니었다.


「어디서든 완벽에 가까운

능청스러움을 나타내 보이던

그녀였으니까.」


그녀의 잘못이라곤 첫 경험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너무 신뢰했다는 점뿐일 것이다. 대화를 마친, 그러니까, 페리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의 군. 그는 재빨랐다. 군은 소식을 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서둘러 불러들였고, 과거의 페리가 가드였었다는 사실을 마을 곳곳으로 내돌렸다. 이유는 글쎄. 군이 저렇게 행동한 데 장황한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그가 얻을 수 있는 항목에 볼거리가 늘었다는 점과 그로부터 오는 어중간한 포만감. 딱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온 페리가 후련한 얼굴로 문을 닫고, 잠시 숨을 돌린 시간과 같은 정도. 그 시간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창밖에서 뜨거운 소리가 들끓었다. 멀리서 들리던 소리는 금세 조여 왔고, 거리가 좁아질수록 더욱 과격해졌다. 과거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소년의 살인범 지목이 확정됐을 때.


2층에서 소리를 들은 페리에게 처음 든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창으로 간 페리는 곧장 창밖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리고 그녀는 얼어붙었다. 발끝에서 시작된 광활한 떨림이 머리까지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유일하게 눈동자가 요동쳤다. 창밖의 그들은 늑대 떼처럼 뭉쳐 있었다. 늑대는 발에 불을 지펴 있었고, 늑대는 없는 허기를 갈구하듯 바닥에 몸을 튕기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페리의 오른 어깨 옆으로 뾰족하게 깎인 나무 막대 하나가 지나갔다. 관통당한 유리창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방 안으로 쏟아졌다. 페리는 뒷걸음질 쳤다.


“더러운 년!”


뚫린 창 안으로 욕설이 날아들었다. 바람 없이 고요히 나부끼던 나뭇잎이 흔들리자, 그때야 페리는 작금의 순간이 현실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페리는 뒤로 물린 걸음을 다시 앞으로 되돌리며 잘은 파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창으로 걸음을 가져갔다. 그리고 떨리는 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였다. 페리는 직감으로 알았다. 자신은 마녀이고, 저들은 마녀를 태우러 온 신자들이라는 걸.


“잠시만요. 지금 내려갈게요.”


페리는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연녹색의 블라우스를 주워 입었다. 그리고 서둘러 문을 열고 계단 아래로 걸음을 내밟았다. 그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자갈 같은 작은 알맹이들이 페리의 얼굴로 끊임없이 날아왔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람들 앞에 선 페리는 한쪽 팔을 감싼 채로 허리와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던지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고위층의 옷을 만졌다는 게 이거였어? 그래, 네가 쌓은 공적으로 몇몇 사람들이 아주 편하게 살았겠네.”


“자네 같은 사람 때문에 목숨을 잃은 가족이 몇이나 되는지 알고 있나. 차마 세지도 못할 걸세.”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현영강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반갑습니다. 소설 쓰는 글쟁이 '현영강' 이라고 합니다.

15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1화CHAPTER 11 : 대회 3일 전, 디케이의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