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간호사가 온다.

30화 : 주사도 못 보는 그녀의 위대한 도전

by 현영강

내 여자친구는 겁쟁이다.


병원에 가서 주사라도 맞을라치면 고개를 돌린다. 뾰족한 바늘 끝만 봐도 얼굴이 사색이 되는 사람.

그런 그녀가 폭탄 선언을 했다.


간호학과에 편입하겠다고. 피를 보면 기절할 것 같은 사람이, 남의 혈관에 바늘을 꽂고 피를 뽑는 일을 하겠다니. 이건 마치 고소공포증 환자가 파일럿이 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 겁 많은 목소리 속에 전에 없던 단단한 돌멩이 하나가 박혀 있었다.


늦깎이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두꺼운 전공 서적들이 책상 위에 쌓이고, 알 수 없는 의학 용어들이 포스트잇에 적혀 곳곳에 붙을 일이다.


그녀는 밤을 새워가며 인체의 뼈 이름을 외우고, 약물의 작용 원리를 파고들 게 될 것이다.


가끔은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기도 하고,

모의고사가 안 풀리면 울상을 짓기도 하겠지만, 포기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 사람.


나는 그 등 뒤에서 조용히 커피를 타다 바치지 않을까.


그리고 생각하겠지.


누군가가 꿈을 꾸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건, 내가 꿈을 꾸는 것만큼이나 벅차고 설레는 일이구나.

그녀가 실습 나가서 처음 주사기를 잡는 날, 아마 손을 덜덜 떨지도 모른다. 상상을 했더니 웃음이 입가에 돈다.


나는 감히 공감한다.


그 떨림은 공포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자가 가져야 할,

거룩한 긴장감이 될 거라는 걸.


​재미있는 건 우리의 포지션이다. 나는 소설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미스터리 작가이고, 그녀는 현실에서 사람을 살리는 간호사가 되려 한다.


죽이는 자와 살리는 자.
이 기묘한 조합이 꽤나 마음에 든다.


나중에 내가 소설을 쓰다 의학적 지식이 막히면 그녀에게 자문할 수도 있겠지.


"저기, 여기서는 어떤 독극물을 써야 심정지가 자연스러울까?"


그러면 그녀는 등짝을 때리며 말해주겠지.

생명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새로운 시작 앞에 선 그녀를 응원한다. 나이 들어 다시 시작하는 공부, 낯선 환경, 그리고 본능적인 두려움까지. 그 모든 허들을 넘고 기어이 흰 가운을 입을 그녀의 미래가 벚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가라, 나의 겁쟁이 간호사여.


네가 꽂을 주사 바늘은 아프겠지만,

네가 건넬 위로는 누구보다 따뜻할 테니까.

​나는 펜을 들 테니, 너는 주사기를 들어라.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그리고 뜨겁게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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