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20시간의 가사(假死) 상태
눈을 떴다.
창밖의 조도가 묘하다. 아침의 푸른빛인지, 저녁의 붉은빛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머리가 묵직하고,
온몸의 근육이 녹아내린 치즈처럼 흐물거린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찾는다.
화면을 켜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목요일이 없다. 분명 나는 목요일 아침에 눈을 감았는데, 세상은 금요일을 가리키고 있다.
부재중 전화 몇 통과 쌓인 카톡들이
나의 부재를 증명한다.
20시간.
나는 무려 20시간을 시체처럼 잤다.
중간에 화장실을 간 기억도, 물을 마신 기억도 없다.
꿈조차 꾸지 않는 완벽한 암전(Blackout)
그것은 수면이라기보다 기절에 가까웠고, 남들이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고, 상사에게 깨지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을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이불이라는 두꺼운 껍질 속에 웅크려 세상과의 연결을 끊었다.
지구는 자전했고, 태양은 뜨고 졌으며,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었겠지만, 나의 우주는 멈춰 있었다. 일어나 앉으니 죄책감이 밀려온다.
하루를 통째로 날렸다는 자괴감.
해야 할 일 있었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는데.
나는 게으름이라는 죄목으로
이 귀한 시간을 하수구에 버린 것인가.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개운하다. 늘 과열되어 윙윙거리던 뇌의 팬 소리가 멈췄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불안의 경보음도 잠시 꺼졌다. 마치 블루스크린이 떴던 컴퓨터를 강제로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켠 느낌.
나는 시간을 최우선시한다.
그러나, 그 같은 초조함은
나 같은 불안장애 환자에게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깨어 있는 매 순간이 생각과의 전쟁이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공포니까.
그래서 20시간의 기절은 낭비가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뇌가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주인 놈, 이대로 두면 미쳐버릴 것 같으니
잠시 전원을 내리겠습니다."
목요일을 잃어버렸지만, 대신 나는 금요일을 버틸 힘을 얻었다. 사라진 시간은 아깝지 않다.
그것은 내가 이 지독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지불한 마취 비용이었으니까. 물 한 잔을 들이켠다.
20시간 만에 식도를 타고 흐르는 물맛이 달다.
타임머신 여행은 끝났다. 이제 다시 이 비루하고도 생생한 현실의 땅을 밟을 시간이다.
안녕, 나의 목요일.
나 대신 잘 지냈니.
나는 네가 없는 동안, 죽은 듯이 편안했다.
사실, 아주 가끔 3일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