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과 독후감
소설의 장점이라 함은 극장에서 보고 나오는 영화와는 다르게 시간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안한 결말로 끝맺음을 하는 작품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나서, 몽글몽글한 감정에 취해 깨어나기 전, 책을 덮지 않고는 곧바로 첫 장을 다시 펼쳐보았다. 글자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밟아가며 훑어왔던 언덕의 산새길을 훌쩍 뛰어넘어 소설의 도입부에 안착하자 펼쳐지는 첫 문장은『오만과 편견』을 오르며 미쳐보지 못해 지나쳤던 풍광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워낙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에 이웃에 이런 남자가 이사 오면 그의 감정이나 생각을 모르더라도 다들 그를 자기네 딸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소설을 여는 이 문장으로 『오만과 편견』이라는 숲 속의 두 가지 그림자를 들쳐볼 수 있다.
첫 번째, 사회적 통념에 대한 풍자이다.
『오만과 편견』이 출판된 1813년에는 상속한정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이는 당시 19세기 영국에서 장자가 우선하여 부모의 전부 혹은 주요 재산을 상속하는 당시 법률이나 관습을 말한다.
그로부터 무려 200년이 지난 2011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영국 왕실의 '장자상속법'이 개정되어 윌리엄 왕자 부부에게서 태어날 아이가 딸이 되더라도 왕실 재산의 일부를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 보도를 통해 우리는 장자중심의 상속관습이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개인주의, 특히 결혼에 있어서는 비혼주의를 희망하는 청년들의 비율이 나날이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오만과 편견』에 그려지는 풍속도와 현재의 시대상을 비교해 보면서, 마치 계몽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상과 가치관을 가졌던 당시의 사람들을 가리켜 단순히 어리석거나 무지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지구 반대편에 자리 잡은 한국이라는 나라 또한 이러한 관습들이, 미미할지라도 아직까지 은연중에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알지 않는가. 이런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남성 중심의 상속한정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중요하고 필연적인 통속(옳은 가치라는 뜻이 아니다)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상호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도움 하에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보이는 점은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풀(pool)이 지금보다 현저히 좁았다는 것이다.
또 거리와 시간 개념 자체가 현재와 상당히 다르다. 마차의 속도는 시속 10km 내외였으며, 통신 수단은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하루 이상이 꼬박 걸리기도 하는 편지를 사용하였다. 편지를 쓰기 위해 상당 부분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마차 또한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오전시간 내내 편지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거나 매일 편지를 꾸준히 써야 한다는 다짐이 담긴 대사, 자매들이 마차의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의 묘사에서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저택에 들려 보름간 머무르는 것을 짧은 기간이라고 그들은 표현한다.
지금이야 자신의 비전을 펼치기 위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정보를 얻고 싶다면 클릭 몇 번으로 인터넷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아예 타지로 쉽게 훌쩍 떠나버려 그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지금처럼, 그렇게 쉽게 그러지 못한 듯 보인다.
교통수단이나 통신기기의 발달이 지금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던지라 당시에는 결속력 있는 가족관계 혹은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지한 삶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권위에 가려져 사회적 진출이 억제된 당시의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장치가 재산과 지위를 얻는 중요하고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에 묘사되는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단단한 관습에 묶여있어 남성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엘리자베스는 진정한 사랑보단 가문과 재산 같은 조건을 보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콜린스'와 결혼한 '살럿'을 보곤 안쓰러워하거나, 경제적 조건과 사회적인 체면을 내세우며 청혼을 서두르는 남성에게 실소를 던지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진보하고자 하는 소망이 엿보인다.
둘째, 진정한 사랑에 대한 회의이다
『오만과 편견』의 인물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표면적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처럼 보인다.
첫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결국 여성은 남성에게 일방향적으로 의존하는 존재가 아닌 서로에게 필요한 상호적 관계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시작한다.
이어 진문장 "그의 감정이나 생각을 모르더라도 다들 그를 자기네 딸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즉 사회적 관습아래, 남녀를 연결해 주는 마음속 깊은 사랑과 애정은 뒷전이 되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대한 회의가 담겨있다.
어쩌면 엘리자베스가 잘못 선택했을 그런 미래를, 너무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베넷씨와 베넷부인으로 그려내 미리 보여주며 말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라는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를 찾았지만 그들의 화촉점화를 지켜보면서 『오만과 편견』이 아름다운 남성과 여성이 사랑에 빠져 행복하게 살아가는 '신데렐라적 플롯'으로 단순하게 해석하기엔 아쉬운 이야기이다.
작품은 여러 군상을 통해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제시한다. 선남선녀로서 이상적인 한 쌍을 이룬 '제인과 빙리', 진정한 사랑이 '오만과 편견'이라는 서로의 결함을 메꿔주며 더욱 단단해져 가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현실을 직접 마주하며 적극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동반자를 찾은 '샬럿과 콜린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찾아 나섰지만 자칫 불행할 뻔한 위기에 처했던 '리디아와 위컴'까지,『오만과 편견』은 사랑과 인생에서 절대적 정답이 있는 것처럼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며 균형을 유지하려 애쓴다.
또한 제인 오스틴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라고 표현하였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을 말하지 않듯,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인식하여 써 내려간 이 글을 보면, 사실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깊은 사색에 의하여 도출된 문장 일지도 모른다. 누이들보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 결혼시장에서 동떨어져 있지만 책을 좋아해 가장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메리를 통해서 말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끝나면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안부가 담긴 몽타주들처럼『오만과 편견』의 결말은, 우악스러운 캐서린 드 버그 부인을 포함해 그 누구도 불행한 여생을 살았다고 묘사하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여태껏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지 않은가. 그것은 사회적 통념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회의를 느껴, 편향된 주장으로 반증하는 과격한 저항과 독선이 아니라, 시대를 아울러 사려 깊은 고민 끝에 건네는 제인 오스틴의 따듯한 위로와 조언이 우리에게 닿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