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om next door> (2024)
'마사'(틸다 스윈튼)는 뉴욕타임즈의 종군기자로서 죽음을 늘 목도하던 관찰자였습니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광경을 늘 가까이 지켜보았음에도, 자신에게는 그저 멀리있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죽음이 코 앞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녀의 몸 안에서 암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궁경부암 3기로, 진행될대로 진행 되어 다시 건강해지기엔 불가능한 것을 알게됩니다. 더불어 자신은 언제나 죽음을 향하는 존재였음을 비로소 자각하게 됩니다.
작가인 '잉그리만'(줄리안 무어)은 유명한 작가로, 맨해튼의 한 서점에서 사인회를 하는 도중 시한부 인생을 지내는 '마사'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됩니다. 병원에서 재회한 둘, '마사'는 한 때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잉그리만'(줄리안 무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동안 옆 방에 자리를 지켜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잉그리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아직 스스로가 항상 죽음을 향해 가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죽음을 직접 목격한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잉그리만'은 망설이지만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오랜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결국 승낙하고 맙니다.
'마사'는 도시 외곽, 우거진 숲 속의 멋진 집을 한 채 빌립니다. 그 곳에서 불법으로 구한 안락사 약을 입에 털어놓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잉그리만'도 이 마지막 여행에 동행했습니다. 그곳에서 둘은 유유자적하고 즐겁게 때로는 엄숙하게 시간을 기다리며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게 됩니다.
<룸 넥스트 도어>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훌륭한 미술작품처럼 다양한 색채가 아름다운 미장센을 이루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프레임에 배치된 의상과 오브제들의 색조와 채도가 교차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봄으로서 관객들은 인물에 깊숙히 내제되어있는 내면의 추상적 심리를 가시적으로 쫓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공식은 마치 대사가 들리지 않거나 배우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서사를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상징적입니다.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이 붉은색 옷을 입고, 취조를 하는 경찰관이 푸른색 옷을 입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붉은색은 감성과 생기, 푸른색은 차분한 이성 입니다. 초록색은 숲, 나무 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자연그대로의 편안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노란색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 즐거움이라고 볼 수 있겠죠. 물감은 혼합하면 혼합할수록 탁해지고 검게 변하기 마련입니다. 항암치료에 실패한 후 '마사'의 급격히 낮아진 채도와 색조의 변화는 감정이 뒤섞여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그녀의 심리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색조들을 이리저리 대입해 맞춰 보자면 '마사'와 '잉그리만'을 포함해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을 알맞게 유추하는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
'마사'는 쨍한 노란색 자켓을 입고 초록색 선베드 위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행히 그녀는 불안을 머금고 저지른 자살이 아닌 존엄사로서 안락하게 세상을 떠난 것 입니다. 영화의 말미에는 하얀 눈이 내립니다. 흰색은 그 무엇도 섞이지 않은 '무'의 상태이며 숭고하며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룸 넥스트 도어>를 아우르는 선명한 색채와 강한 대비의 이미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도 잘 들어맞습니다. '마사'가 빌린 집에 들어가면 먼저 보이는 것이 에드워드 호퍼의 'People in the Sun'(1960)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들은 멋진 풍경 앞에서 평화롭게 쉬고있지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인 공간 속에서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의 고독을 마주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항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인 외로움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인간의 쓸쓸한 마음을 그려내보인 것입니다. 영화는 화풍을 답습하며 '마사'의 고독하고 건조한 정서를 깊이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룸 넥스트 도어>는 결국공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죽음을 앞 둔 '마사' 그리고 그녀의 옛 연인 '데미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할거라는 믿음을 잃은지 오래야"라고 말하는 '데미언'은 사회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펼치는 사람입니다. 지금 지구는 심각한 기후 변화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데미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의 화합은 고사하고 온난화를 더욱 가중시키는 이기심에 희망을 잃었습니다. 한 개인인 '마사'와 마찬가지로 전 인류는, 지구라는 전장 속에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입니다. 벌어질 종말의 예견처럼 뉴욕 맨해튼에서는 대기오염으로 인해 변해버린 분홍색 눈이 소복히 내릴 뿐 입니다.
종말의 위기에 처한 인류와 마찬가지로 '마사'는 한편으로 비극적인 인물로 비춰집니다. 그녀는 종군기자 시절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피난하지 않고 남아있던 가르멜회 수사 두명을 보게됩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 한복판 안에서 끝까지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마사' 또한 삶이라는 전쟁터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독했습니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 연인 '프레드'는 진작에 떠나갔고, 하나뿐인 딸 '미쉘'은 내내 자신을 원망하고 배척해왔습니다. 자신이 죽을 동안 옆 자리를 지켜달라 가까운 친구들에게 건넨 부탁들도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길 바랬던 것 입니다. 그래서 '마사'는 훗날 누군가 읽어볼 자신의 시선이 담긴 종군일기를 평생 작성했던 것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좋아하던 책을 읽지도 않고 글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더 이상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같이 바라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잉그리'만은 '마사'의 일기를 들여다보았으며 그녀가 누워있던 선베드에 똑같이 누워 같은 곳을 바라보고 목메어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그녀는 드디어 세상을 떠날 준비를 마치고 펜을 들어 그녀에게 편지를 남길 수 있었던 것 입니다. '마사'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딸 '미쉘'은 비로소 그녀가 누워 있었던 자리에 똑같이 누워 아스라히 내리는 눈을 바라 보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마사'는 말합니다. 세상은 암환자가 계속 싸워주길 바란다고, 선과 악으로 나눠 승자와 패자로 나누려고 한다고 말입니다. <룸 넥스트 도어>는 이 논쟁의 중심에서 존엄사의 타당성에 대한 주장을 단순히 설파하기만 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마사'와 시기만 다를 뿐,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정해진 결말 앞에서 '마사'가 남긴 '작별(good bye)'이라는 마지막 쪽지가 함의하는 것은, 종말에 대해 치열한 말다툼을 벌여 승자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에 누워 봄으로서 상대와 진정으로 연결되어 보는 것이 어쩌면 이 지루한 전쟁을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짚어주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