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스방 Feb 08. 2024

집단지성의 힘과 희망

자연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에서 꿀벌이 생존을 위해 질서를 지키며 서로 역할을 나누고 지혜를 모아 집단생활을 슬기롭게 형성해 나가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꿀벌의 개체 수가 많아지면서 새롭게 거주할 벌집을 찾아 이주하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지성은 꿀벌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집단의 지적 능력으로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능력을 넘어 집단의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직장 복직과 함께 인천지역책임자로 발령을 받고 성과관리에 앞서서 직원들에게 같은 직장에서 함께 근무한다는 동료 의식을 심어주려고 실시했던 대천 갯벌 극기훈련 체험 캠프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성과 지표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 해가 지나면서 직원들 사이에 스멀스멀 생겨나는 동료 의식을 집단지성으로 풀어내기 위해 고심하다가 기업교육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도미노와 산악 OL 훈련을 기획했다.


두 번째 직원 교육 캠프를 차리기 위해 넓은 실내공간과 산악 OL 훈련을 할 수 있는 강원도 횡성에 있는 리조트를 찾았다. 

토요일이 휴무일임에도 불구하고 전년도 보다 많은 300명 남짓한 직원들이 리조트 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스무 개의 팀을 만들어 직장의 구호와 미래의 비전을 디자인한 20만 개의 도미노 칩을 하나하나 세우면서 물리적인 집단지성의 실험을 시작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시장통같이 떠들썩했던 체육관이 조용해지면서 까치발을 들고 걸어야 할 정도로 조심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온 힘을 집중해서 디자인된 동선을 따라 도미노 칩을 세워가다가 손끝의 작은 실수로 애써 쌓아 놓은 칩들이 와르르 쓰러지는 허탈한 상황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아침에 시작한 도미노 칩 쌓기는 직원들의 열기와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넓은 체육관을 빼곡히 채우며 오후 들면서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옛날 돌탑을 쌓았던 석공처럼 능숙해진 대여섯 명의 직원을 중앙무대에 놔두고 직원들은 외곽 담장으로 소리 없이 물러났다.

그리고는 화룡점정의 마지막 도미노 칩이 세워질 때까지 숨 쉬는 것조차도 참아가며 긴장해야만 했다.    

  

마침내 여섯 시간에 걸친 도미노 칩과의 사투를 마치고 완성된 도미노의 향연을 펼치기 위해 체육관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선발된 스무 명의 직원이 도미노 출발 도화선에 섰다.

시작을 알리는 폭죽과 함께 스무 명의 손끝에서 튕겨 나온 칩은 일사불란하게 넘어지면서 

“신협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입니다”라는 슬로건과 각종 구호와 캐릭터를 그리며 체육관을 소용돌이쳤다.      

직원들은 목이 쉴 정도로 환호하며 여섯 시간 동안 정성 들인 도미노 칩의 물결을 보면서 집단지성의 대단함을 여과 없이 만끽했다. 

그 순간의 감격은 곧이어 이어진 축제의 밤을 통해 그동안 준비한 직원들의 재능과 끼를 뽐내며 그 무대의 주인공임을 실감했다.      


열정의 밤이 끝나고 아침을 맞았다.

지난밤에 이런저런 사연을 뒤로하고 산행 출발 점호와 함께 팀을 나누어 산을 오르며 주어진 과제를 풀어나가는 산악 OL 훈련을 실시했다. 

목표를 향한 팀워크와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산악 OL 훈련은 직원들의 동료애를 다지고 또 한 번의 집단지성의 슬기를 모았다.     

이렇게 강행된 일정에 비록 몸은 지쳤지만 처음 겪어본 신선한 경험으로 직원들 서로 간에  강한 동료 의식을 느끼고 목표를 이루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맛보게 되었다. 


나는 여기에 더해서 전년도 갯벌 극기훈련 체험 캠프와 도미노와 산악 OL 훈련을 중심으로 2년간의 활동을 기록한 영상을 CD(Compact Disc)로 제작하여 직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서 전해주었다. 

직원들은 지나온 열정적인 행적을 영상으로 되새겨보면서 또 한 번의 감동 속에 직장에 대한 소속감과 동료 의식을 느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한 간부직원은 집에서 아들과 함께 영상을 보면서 

 “아빠 이런 멋진 직장에 다니는지 몰랐어요”

아들이 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을 밟아가면서 직원들에게 직장의 재무성과를 높이고 한편으로는 실무책임자들에게 목표설정과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시도했다.      

지역을 나누어서 출근 전 아침 7시에 목표대비 성과점검 실무책임자 조찬회의를 가졌다.

평소에는 업무 시간에 이루어졌던 회의를 이른 아침에 하려고 하니 처음에는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이내 취지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갈비탕 한 그릇에 호텔의 회의실을 빌려서 아침 식사를 겸한 회의는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각각의 신협으로 출근한 실무책임자들은 회의결과를 직원들과 공유했다. 

그날 오후에는 해당 신협의 이사장 회의를 해서 이른 아침에 실무책임자들과 가진 조찬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직원들과 함께 재무목표를 공유하고 업무성과를 격려해 주도록 당부했다. 


신규직원에서 중견 직원을 거쳐 실무책임자와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전략적 목표에 대한 공유를 통해 재무성과는 눈에 띄게 높아져 갔다. 

급기야는 그해 연말에 실시된 전국 경영평가에서 3위에 올라섰다. 

그동안 12개 지역본부 중에 끝에서 맴돌았던 성적이 임직원들의 단합된 힘으로 단숨에 수직으로 상승했다.      

새롭게 거주지를 옮기는 꿀벌의 집단생활에서 볼 수 있듯이 개체의 작은 역할이 모여서 집단 전체가 거대하고 체계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런 현상을 꿀벌의 생태에 비유해서 집단지성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나 역시 2년 남짓 인천지역 직원들과 함께 진솔한 협력을 통해 동료 의식을 나누고 성취목표 달성을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렇게 나름대로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내어 일이 잘 풀려가고 있을 때 또 시련이 찾아왔다.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생긴다는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실망스럽고 답답한 상황을 맞았다. 

그동안 소신 있게 행동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사리에 맞게 주장해 왔던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썩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조직의 수장이 바뀌면서 나는 서울지역본부의 일반 직원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이것저것 살펴볼 이유와 여유도 없이 사직서를 써서 인사팀으로 보냈다. 

사직서를 서울 중앙본부로 행랑에 실어 보냈는데 도착이 안 되었는지 이튿날 서울의 인사 발령지에서 내 성향을 잘 아는 직원이 전화가 왔다.

 “오실 거예요” 

사직서를 냈다고 대답하고는 마무리할 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의 일 중에 내가 계획한 실무책임자 싱가포르 해외전략회의를 열흘 남짓 앞두고 벌어진 상황이어서 급하게 새로 부임하는 본부장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천지역본부장으로 부임해서 2년 남짓한 복직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는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퇴직 후 며칠이 지나서 인천지역본부에서 싱가포르 해외 전략회의에 함께 가자는 연락이 왔다. 

해외 전략회의를 기획하고 실행단계에서 사직한 내 처지를 알고 있던 인천지역 실무책임자들이 나의 해외 체류 비용을 모아서 강력하게 동행을 요청했다고 했다. 

이윽고 새로 부임한 본부장도 나에게 해외전략회의에 동행해 주기를 부탁해 왔다. 

내가 해외전략회의의 모든 계획을 세웠던지라 일정 조율을 한다는 생각으로 동행했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전략회의 일정을 진행하면서 공식적으로는 나설 수는 없었지만 담당직원과 같은 방을 쓰면서 그날의 연수 일정을 평가하고 다음 날 계획을 점검하는 실질적인 일정을 진행했다. 

해외전략회의에 함께한 실무책임자들은 열흘 전까지 본부장으로 함께한 내가 더 익숙했던지 새로 부임한 본부장에게 미안할 정도로 연수 일정 내내 나를 정겹게 대했다.      

이렇게 한 직장에서 사직한 전 본부장과 현직 본부장이 함께 자리한다는 것이 어느 직장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우이겠지만 그동안에 직원들과 진솔하게 쌓아온 신뢰와 동료애로 가능했었던 일이었다.      


비록 또다시 실업자가 되었지만 직장의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여 얻어진 업무성과로 집단지성의 힘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주친 현실의 난관을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시에서 답을 찾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그래서 나는 그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갯벌에 누워 담대한 삶을 바라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