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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Dec 16. 2023

구조조정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연말연시에는 한 해 동안 즐겁고 힘들었던 일을 회고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직장에서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희망퇴직의 먹구름이 불길하게 나타난다. 

한 가정의 생명줄 같은 직장에서 느닷없이 추운 겨울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나타나 셀러리맨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희망퇴직은 직원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퇴직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강제적인 퇴직 권고에 희망이란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부추긴다.    

  

나는 제주도에서 삼 년 남짓한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리저리 여러 부서로 떠밀려 다니다가 비서실을 거쳐서 홍보실로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홍보실 업무를 두루두루 경험해서 대부분 업무가 익숙했었는데 홍보실 책임자가 되어서는 경험이 없었던 국제업무까지 맡게 되었다. 

국제업무를 관장하면서 국제회의를 제주도 중문에 있는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국제업무도 익숙하지 못한데 국제회의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된 것이다. 


먼저 급한 대로 직장 내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직원들을 삼십여 명을 모아서 프로젝트팀을 꾸리고 국제행사를 기획해 나갔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250여 명이 참석하는 회의로 인천공항으로 입국하여 김포공항을 거쳐 제주도로 오는 여정을 짜임새 있게 세워야 했다. 

국제회의 장소인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일주일 정도 진행될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한국 참가자를 위한 통역 서비스를 위해 캐나다 샤론신협에서 임직원을 파견받고 제주대 통역대학원 교수를 초빙해서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긴장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했던 터라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마지막 날 국제회의 마무리 만찬 행사만 남았었다.      


행사 마무리 단계여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무전기로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을 때 내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통해 한 직원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실장님 구조조정 명단이 발표되었는데 L과장이 명단에 있습니다.” 

순간 당혹스러움을 참고 만찬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서 서울에 있던 구조조정 담당 부서장에게 상황을 알아보려고 전화했다. 인사담당 부서장은...

“민 실장이 구조조정 명단에 없어서 다행이요. 가만히 있으시게” 

돌아온 답이었다.      


다음날 제주도 국제회의 행사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인사담당 팀장을 만나서 방법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직원들이 개별적인 인사 평정에 따라 희망퇴직 리스트가 만들어졌는데 징계기록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장 크게 작용한다며 난색을 띄웠다.      

내가 그 전에 홍보업무를 맡으면서 인사팀에 의뢰해서 직원 중에 대학에서 홍보 관련 학과를 전공했던 직원을 찾았다. 

그당시 마침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L 과장을 찾아서 의사를 묻고 설득해서 홍보실로 영입했다. 


L과장에게 내가 맡고 있던 대내외 홍보업무 실무를 넘겨주고 쉽지 않은 언론매체 인맥들도 하나하나 연결해 주었다. 내가 하도 인사이동이 잦아서 업무의 특성상 외부의 연결고리가 끊어져서 홍보업무 추진에 난감한 상황이 되지 않게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일은 흘러갈 수 있어야 했다.      

L과장이 한 번은... 

“업무 노하우와 언론사 인맥까지 다 주시면 선배는 어떻게 합니까”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나는 “업무로 나를 쫓아오면 나는 더 업그레이드하면서 도망가면 된다.”라고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이럴 듯 한동안 L과장 함께 일을 맞추어 가던 중 나는 또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이 되었고 그 와중에 홍보실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감독 당국에 감사를 받던 중에 표면상으로만 홍보실을 거친 일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일이 발생했다. 

홍보업무와 관계없는 일로 직원들에게 책임만 덧씌워지는 상황이 되었다. 

직원들은 문제가 된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홍보실에 근무하고 있었던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아야만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L과장은 홍보업무에 흥미를 잃고 다른 부서로의 인사이동을 요청하고 홍보실을 떠났다.    

그 후 홍보실에 휘몰아쳤던 강한 바람이 찻잔 속의 태풍처럼 지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직장의 구조조정과 함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국제회의를 순조롭게 마치고 전날들은 구조조정 소식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인사팀장에게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어찌할지를 몰라 멍하니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어둑한 밤이 되어 사무실을 나섰다. 

퇴근길 집으로 향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 들어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밤새 생각에 지쳐 뒤척거리다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나 오늘 사표 내요. 이따 와서 자세한 얘기 할게요.” 말하고는 집을 나섰다. 

보름 만에 만난 아내는 어이가 없던지 “아~ 네”라고 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내는 내가 제주도 국제행사에 책임져야 할 큰 실수를 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출근해서 사무실 책상 컴퓨터로 사직서를 써서 프린트로 날렸다. 

그런데 깜박하고 내 컴퓨터 프린터 설정을 바꾸지 않아 공용으로 함께 쓰던 프린터로 사직서가 출력되었다. 

이걸 본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오며 이게 무슨 일이냐며 따져 물었다. 

국제회의 행사도 나름 성공적으로 치르고 프로젝트팀 마무리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아해하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인사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를 내고 두어 시간 후에 결재서류를 들고 회장실을 찾았다. 

그동안 밀렸던 결재를 받고 국제회의 행사를 잘 진행했다는 회장님의 격려 말씀을 듣고는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직장에 들어와서 결혼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고 작은 아파트도 마련해서 내 직장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말문을 열고는 그간에 일들을 말씀드렸다.      

내가 필요해서 함께 일하자고 데려온 후배의 아픈 현실을 보면서 앞으로 용기 있게 일할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징계라는 먹구름을 똑같이 뒤집어쓰고도 건재한 나의 모습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던진 사표 하나로 한 명의 구조조정의 대상자를 줄일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뿐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서 무력감에 굴복하고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컸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회장님 말씀을 듣고는 홍보실로 돌아와서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사직서를 낸 다음 날 L과장과 저녁을 같이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힘들게 버티지 말고 희망퇴직하는 편이 낮지 않을까” 이야기를 건넸다. 

L과장은 단호하게...

 “저는 희망퇴직금을 못 받아도 괜찮아요. 내가 왜 나가야 하지요.”

억울한 감정을 쏟아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마음을 저미는 먹먹함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똑같이 실업자가 되었으니 남들 출근한 낯에라도 L과장과 소주 한잔할 수 있다는 푸념 같은 상상이었다.      

사직서를 낸 나로서는 마무리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동안 추진해 왔던 일들을 정리해야 했다. 

그 당시 외부와 연결된 사업 중에 큰 사업으로 MBC 사회봉사대상 심사위원으로서 사회봉사 대상자를 심사해서 선정하는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퇴직이 확정되고 마지막 근무하는 날에 MBC에서 사회봉사대상 최종 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사무실 책상에 짐을 정리하고 가볍지 않은 발걸음으로 MBC로 향했다.      


신협이 MBC 사회봉사대상의 공동 주관 및 협찬사로 나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MBC에서 위촉한 분들로 감사원장을 지낸 분도 있고 방송이나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유명 인사가 함께 참여했다. 

나는 MBC 사회봉사대상의 공동 주관사로 참여한 몇 개월 동안 사회봉사대상 후보를 추천받고 현장 실사하는 작업을 해왔다. 

최종 심사 당일 추천된 후보를 놓고 갑론을박도 있었지만 열 명 남짓의 수상자 중에 다섯 명의 신협 임직원과 조합원을 MBC 사회봉사대상의 수상자로 선정했다.     


사회봉사대상자 최종 심사를 마치고 MBC 사장님의 초대로 여의도 63 빌딩의 중식당에서 심사위원들과 오찬을 가졌다. 

날씨가 청명해서 그런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음식을 마치 눈으로 먹는 듯했다. 

더욱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과 한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하는 내 모습이 마치 나도 그 반열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막 실업자가 된 나로서는 현실을 착각하기 충분했다.     

 

퇴직 후 보름 동안 할 일 없이 지내던 날 MBC에서 사회봉사대상 시상식에 출연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MBC 측에 사정을 이야기했으나 이미 사전에 방송이 나가고 했으니 마무리 차원에서 출연해야 한다고 했다. 

실업자이지만 심사위원 자격으로 MBC 사회봉사대상 시상식에 출연했더니 장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들었는데 오늘 텔레비전에 나왔네”

장모님이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심사위원을 소개할 때 내 얼굴과 홍보실장의 직함을 보셨던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L과장은 희망퇴직 신청 마감 시한을 넘기며 대기발령 상태의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퇴직 압박을 버텼던 L과장은 다행히도 대기발령이 해제되고 구조조정에서 제외되었다. 지금 그는  능력을 두루 갖춘 간부로 인정받아 직장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직장인의 정년은 짧아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새옹지마”라고 하여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여기에 보태어 불행한 일이 생겨도 용기를 내어 노력하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선조들이 경험에서 남겨준 “전화위복”의 고사성어가 현실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나 자신 몸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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