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인생의 가장 큰 프로젝트
돌이켜 보면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 내 삶의 무게가 가벼워 진 듯 하다.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한 프로젝트는
초등학생에 입학 할 무렵 인지하지 못한 채 시작되었을 것이고,
2021년에 뭔가 잘 못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은 후에는 예산과 공기가 더 투입되었는데
정상화하는데 시간이 4년이 걸렸고 2025년에 종료되었다.
나는 처음이라 힘들었다.
프로젝트의 끝은 대학 졸업 후의 삶이니 그기부터 출발해서 꺼꾸로
직업-대학전공-대학입학-중고등학교 순서의 Reverse 계획을 세웠어야 했는데,
2019년, 2020년에 두 아들이 가져왔던 성적표로 어떤 대학도 가기 힘들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냅두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한국 아버지에서 달라져야 했다.
자식들의 인생은 각자가 살아가는 것이지만 부모의 무지와 게으름은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구나.
꺼꾸로 이야기 하면 자식들의 삶은 부모의 영향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해야하나.
태어난 국가, 시대, 부모에 따라 아이들 삶의 50% 이상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느낄 수록 씁쓸하다.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내 삶을 돌이켜보면 과외가 없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개인 과외, 그리고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나를 입학시키기 위해 하셨던 젊은 시절의 나의 아버지 노력이 지금이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나의 학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게 더 좋다고 항상 강조했는데
나는 어머니의 영향을 더 받았나 보다.
아이들의 학업이라는 프로젝트의 계획과 목표가 없었던 나의 실수는 셀 수 없이 많다.
1. 중2, 초5가 한국에서 해외 국제학교로 전학을 가는데 그 후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와이프는 한국 학제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었고, 나 또한 3년 이상 해외에서 공부하면
3년 특례가 되지 않나? 라는 단순 무식한 생각이었다.
2. 결과적으로, 2019년에 한국에서 말레이시아 국제학교로 전학을 하고 6년을 공부했음에서 둘다 특례
자격을 갖지 못했다. 국제학교 입학 당시 1년을 월반을 해 특례 학기 규정에 미달되었다.
사전에 알아보지 않고 공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페널티다.
3. 유아기때 영어를 했고, 집에서도 가르쳤고, 초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영어학원을 계속 다녔으니
영어를 좀 하는 줄 았았다.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학교에 들어 갔으니 적응하고 잘 할 줄 알았다.
시험 점수는 정직하다.
4. 국제학교가 모두 좋은 건 아니다. 말레이시아 발령을 받고 국제학교를 조사해 보니 200개나 되었는데,
고르기가 어려웠다. 공부는 학생이 하기 나름이지 학교가 중요하냐는 생각에 집 근처 학교에 등록했다.
첫째와 둘째 모두 첫 번째 학교가 얼마나 안 좋았는지, 왜 가기 싫었는지 지금도 이야기 한다.
5.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미래와 목표는 하나씩 경험하고 부딪쳐 가면서 찾아가는 과정이지
중고등학교 시절에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남자 아이들이 있을까?
주변에 그런 아이들이 간혹 있는데 대단하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왜 자식들은 확신을 가지는 대학 전공을 고를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있고 계획도 세울 수 있다고 믿었을까.
사실 나는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게 정확히 모르겠다.
2019.1월에 말레이시아로 발령 받았고, 아이들은 2019.3월에 쿠알라룸푸르에 들어와
세이폴국제학교에 등록을 했다. 학교 건물이 낡았고 학생 유니폼이 난민들처럼 보여
아이들이 "다른 학교 없어요?" 했던 기억난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라 출근하기 전에 직접 운전해서 학교에 데려다 주었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친구들은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아 별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학제가 3학기제로 4개월마다 성적표가 나왔는데 첫 번째 성적표를 받고 학교 담임과 상담을 했을때
둘다 수업시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처음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고,
두 번째 성적표를 받고, 담임과 교과별 선생들과 상담을 해보니 3개월 전에 똑 같은 피드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