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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May 19. 2024

삐져있는 당구공

당구장에서 ~ 54

도화지의 둥근달은 항상 희고 노랗게 그려진다. 노란 달. 하얀 달. 시든 소설이든 광고 문구든 달덩이는 어디에 접목시켜도 우리에게 포근함을 건네주는 것 같다. 곱디고운 달을 당구가 품고 싶은 욕심에서 일까, 내가 치는 공도 흰색과 노란색이다. 두 개의 달덩이가 하염없이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다. 하얀 공을 품고 싶지만 원한다고 선택되는 일이 아니다. 설사 노란색이래도 그리 썩 아쉽지만은 않다. 길고 짧은 것은 재어봐야 하듯 마지막에 미소 짓는 당구공이 더 예쁘기 때문이다.


둥근달이 목적지를 향한다. 아래위 · 좌우로 빙글빙글 돌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쿠션과 목적 구에 부딪칠 때면 핑글핑글 머리까지 띵할 터인데 용케도 가던 길을 지켜내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간혹 옅은 웅덩이에(당구천의 파인 자국) 빠지거나 몸에 때가(초크 가루) 많아서 진로를 벗어나기도 하지만 누굴 탓할 운명도 아니다. 언제나 의도한 방향으로 유도한다지만 칭찬보다 꾸중을 많이 듣는 당구공, 오늘도 혼나고 있다.


단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인데 왜 이리도 토라지게 만드는지. 시작할 때 미소는 온데간데없다. 끝나고 나니 말도 안 하고 움직일 생각도 않는다. 엎드려 당 점을 겨냥하는 그 순간까지는 누구나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큐와 수구가 부딪치는 순간부터 득점의 성공 여부가 느낌으로 전달되기 시작한다. 느낌이 좋을 때는 여지없이 적구를 향해 달려간다. 왠지 모를 둔탁함이 느껴진다면 보나 마나 비어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 바쁘다. 아껴주려고 그렇게 마음먹었건만 감정의 굴레를 헤매다 보면 어느새 두들겨 패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갈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색으로 우리에게 울고 웃는 표정을 건네주는 당구공. 주인님을 원망했다가 좋아했다가 셀 수 없는 감정의 고리가 생성된다. 뻔히 낭떠러지인 줄(터무니없는 방향) 알면서도 주인님의 명령에 달려야만 했다. 쉬운 포지션을 두고서 엉뚱한 방향으로 내몰릴 때면 제풀에 주저앉기도 한다. 험한 산맥을(어려운 포지션) 거침없이 돌진하는 용맹성도 보이며 장타가 터질 때면 신이 나서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이참에 승리라도 한다면 얼굴에 새파랗게 때를 묻히고도 환한 웃음이 멈출 새 없다.


이런 기쁨을 건네주기 위해 당구공은 항상 치장(왁스)을 한다. 낡은 집에(오래된 천) 살 때는 짙은 화장을 하고 새집이면 옅게 하거나 민낯으로 손님을 맞이할 때도 있다. 수시로 몸치장을 해서인지 피부는 항상 뽀얗다. 부득이하게 여드름이(큐 미스) 생기거나 때가 많을 때면 목욕탕에서(공 닦는 기계) 깨끗이 씻어와야 한다. 행여 때가 제대로 벗겨지지 않는다면 하얀 크림을(금속 연마제) 잔뜩 발라서 비벼대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역시 화장은 마술이다. 고운 피부에 눈부실 정도다.


간혹 까칠한 손님을 만날 때면 경기 도중 교체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다음 손님이 기다리고 있기에 우울함도 잠깐이다. 정전기 현상으로 몸에 머리카락은 왜 이렇게 붙어 다니는지,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욕먹을 때도 없잖다. 두들겨 맞아서 피부는 항상 상처투성이다. 고약한 선수를 만날 때면 가슴속까지 멍울질 때도 있다. 힘으로 패서라도 득점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럴 일은 극히 드물다. 가끔 집 밖으로 튕겨 나가기도 한다. 잘못했다는 시늉으로 몸을 감싸주지만 서러움 감출새 없다.


경기가 끝났음에도 서러움이 이어진다. 답답한 마음에 반성 구를 쳐본다지만 제대로 반성하는 자세가 아니다. 딱! 딱! 큐 등짝으로 당구공을 때리는가 하면 사정없이 패대기친다. 주위에서 시끄럽다는 눈치를 주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결국 ‘삑’ 소리를 내며 누런 멍 자국을 남기더니 그제야 큐를 놓아버린다. 심하게는 큐를 세워(맛세이) ‘쿵’ 소리 내기도 한다. 그 바람에 애꿎은 당구 천이 찢어지는 난리를 겪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하얀 크림을 바를 수밖에 없다. 피부가 따가워도 주인님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야.


당구공이 불쌍하다. 수시로 목욕하는 통에 피부가 벗겨지며 수명을 다해가는 존재다. 새 단장을 하고서 미소 짓는 모습을 보니 행여 또 울릴까 걱정부터 앞선다. 그 맘 잘 알기에 삐져있는 당구공을 달래 보려 안간힘을 쓴다지만 또다시 헤매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벌써 자정이 넘었다. 몇 판 치르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지나가는건지. 벽시계가 고장 났을까 스마트폰을 쳐다보니 정상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삐져있는 마누라는 또 어찌 달래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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