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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8. 2023

만들어진 꿈

당구장에서 ~ 38

대치동은 한국 땅 사교육의 현주소다. 그곳에서 당구장을 운영할 때 일이다. 중 · 고등학생들이 당구 칠 시간은 하루 중 겨우겨우 30분이 전부였다. 그나마 빨간 날은 용돈에 맞춰 한 시간 정도를 놀곤 하였다. 그중 유난히 포켓볼을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한 날 짬짬이 놀러 오던 아이가 졸업하면 유학 간다며 이별을 예고한다. 음악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려나 싶어 축하해 줬더니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부모의 강요로 마지못해 떠나는 것이었다. 훗날 TV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며 농담을 하지만 씁쓸함이 감춰지지 않는다. 예견된 운명을 칭찬해줘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당구도 부모의 권유로 입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은 당구 붐 시대라 더 늘어나는 추세다. 주로 부모가 당구장을 운영한다든지, 당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다. 물론 사설학원에서 꿈을 키우는 이들도 없잖다. 총명해서인지 어느 정도 지도받으면 선수들 못지않은 기량을 내뿜기도 한다. 주니어 시절부터 경험치를 높여 지금은 상위그룹에서 세계를 누비는 선수들도 있다. 모두가 그러면 좋으련만, 인지도에 비해 아쉬움을 토하는 선수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른이 된 마당에 그 친구들의 속내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미 은퇴한 여성 피겨선수 무용담은 일상의 흔한 일처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그늘 밑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영웅담인 셈이다. 금메달을 딴 후 수수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서 미소 짓던 모습이 생각난다. 가물가물 기억에 다른 친구들처럼 재미있게 놀고 싶고 맛집도 가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슬프지만 그래도 나는 최고이기 때문에 만족한다. 지금은 행복하다. 뭐 이런 의미로 이해했다.


꿈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또는 보장받는 위치에서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간혹 발생한다. 이해 못 할 공인들의 예를 보듯이 부모의 강요로 빚어진 우울증 때문이었다. 오래전 중학교 동창이 30대에 자살한 일이 있다. 잊히나 했더니 몇 년 후 여동생마저 오빠 곁으로 떠나갔다.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남매가 생을 마감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길거리에서 내 자식을 왜 꼬드겼냐며 곁에 있던 친구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던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원죄를 엄마에게 물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른 나이에 성공한 이력이 눈에 띈다. 천재들의 향연은 다방면에 걸쳐 출현하며 부모들은 주로 공부의 재능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 강요로 시작된 조기교육은 초등학생조차 늦은 밤까지 학원 차량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요즘은 맞벌이로 돌 지나자마자 부모 곁을 벗어날 정도라고 한다. 내 자식이 공부만 잘한다면야 뭘 더 바랄 게 있을까. 버스요금을 모르는 공인들을 향한 한 바가지의 욕이 변색되어 메아리치는 것 같다.


누구나 일등이 될 수 없다. 뒤처진 능력은 특별한 손재주를 기대하는 부모의 욕심과 개인의 욕망으로 재도전하게 된다. 연예인 · 운동선수 · 음악가 · 예술 따위에 문을 두드리는 초조함이 보이는 것이다. 물론 사회도 재촉하는 면이 있다. 재능을 빨리 발견하는 것만큼 다행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이른 나이에 인생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혹시나 돈 주고 살 수 없는 추억의 시절에 미련을 갖는다면, 행여 청춘을 돌려달라면 어찌해야 할까. 성취감과 우울함은 동전의 양면 같다.


조카 녀석이 벌써 다 컸다. 처음 입어보는 교복에 미소가 한가득하다. 녀석이 아가 때 나무 작대기를 들고 공을 겨냥하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가끔 들여다보며 세계 챔피언을 만들고 싶은 욕심을 품었었는데. 고른 체형에 남성스러운 우직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다른 팔의 근력에 매료되어 지금도 미련이 남아있는 솔직함이다. 내가 당구 치는 것을 모른다. 분명 친구들과 어울려 한 번쯤은 당구를 치지 않을까.


‘큰아빠 당구 얼마나 재미있는 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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