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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8. 2023

영감탱이

당구장에서 ~ 44

오랜만에 당구장업을 하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먹고살기 바빠서 자주 목소리 듣지 못하는 것은 서로 잘 안다. 당구 소식이 궁금할 때만 찾는데도 귀찮은 내색 없이 반갑게 맞이하는 선배가 늘 고맙기만 하다. 벨 소리로 보고 싶은 마음을 미리 건네보지만 웬일인지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좋지 않은 직감이 스쳤지만 그저 바쁜가 보다 생각하며 흘려버렸다. 한참이 지나고야 벨이 울린다. 왜 전화 안 받느냐고 따져 물으니 아프단다.


어디 아픈지 말도 하지 않는다. 수초 간 침묵을 지키더니 애들 징징 짜듯 “이제 당구 못 친다.”라며 나지막이 울먹인다. 힘내시라 통화를 마쳤지만 미지근한 여운이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예전부터 피곤하다는 소리를 자주 하곤 했지만 시합 때문인 줄 알았다. 경기 한 번 치르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정도로 피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좀 달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언제부터인가 기력도 떨어진 모습이었다.


이제부터인데 이제부터 꽃피는 시절이 시작되는데 당구를 치지 못한다니. 그 심정을 누가 헤아려줄까. 전국대회가 있으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더랬다. 그 세월만 수십 년이다. 해진 가방에 큐 한 자루 달랑 넣고는 툭하면 서울 간다, 강원도 간다, 전국을 돌아다니던 모습이 선하다. 시합 끝난 후 복귀 과정은 잊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때마다 그것도 못 치냐며 벌써 노인네가 되었냐며 놀려대곤 했었는데. 세월의 구력이 아까워서라도 시련을 극복하리라 믿었다. ‘영감탱이 힘내소.’라고 외치고는 통화를 마쳤다.


아주 드물게 당구의 슬픈 소식이 들려올 때가 있다. 공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어깨너머로 다 듣게 된다. 주로 생활고를 겪는 답답함이 많다. 병원 신세를 질 때면 남 일 같지 않은 착착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사망 소식이라든지 장애를 겪는 가슴 찡긋한 얘기들이다. 주로 간암과 폐암으로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술 담배를 달고 다니니 이렇다 할 변명거리도 없다. 나 또한 숨을 곳이 마땅치 않다. 술과 담배만 멀리한다면 당구만큼 좋은 운동이 또 어디 있을까.


당구가 많이 걷는 운동이라고 건전함에 더해 건강을 내세우는 공인들의 홍보는 여전히 유효하다. 당구 치면 얼마나 걷는다고? 우습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건장한 남녀가 두어 시간만 큐를 쥐어 봐도 몸으로 느껴진다. 선수들은 자전거나 달리기 운동으로 하체 근력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타격하기 위해 엎드리는 순간 안정감 있는 하체의 균형이 스트로크의 정교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걷기뿐만이 아니다. 수구를 컨트롤(control) 할 수 있는 재빠른 손놀림은 젊음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득점하기 위해서 논리적이고 명확한 길을 내게 제시한 후 확답을 받게 된다. OK 사인이 떨어지는 순간 스트로크가 시작되고 집중력이 민첩성의 보조 역할을 다. 최소 한 시간 이상 장시간을 요구하기에 지구력과 두뇌활동으로 유지된 젊음이 노화 과정을 퇴치해 버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구는 허리에 많은 도움을 준다. 크게 다쳐본 경험이 있어서 더 진지해졌다. 당구 치기 위해 엎드리는 자세는 신체 전체의 고른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적절한 힘안배는 어깨와 허리를 펴주는 효과를 얻는다. 두려워서라도 스트레칭을 거르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당구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큐를 체결한 후 큐에 의지하여 경직된 몸을 완화시켜 주는 행위는 습관이 되었다.


선배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하도 맴돌기에 일주일 만에 또 연락해 보았다. 전화를 안 받는다. 시간이 지나도 다음날이 되어도. 며칠 후 딱 한 곳의 언론사에서 소식 접할 수 있었다. 당구와 살은 평생의 대가가 고작 이것이었던가. 초라하다. 내 모습마저 초라함을 감추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누군가 지켜보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속마음을 털어놔야 할 것 같아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조망 간 들른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내 다시 당구 칠 테니 힘내서 함께 시합에 출전하자고도 했는데.     




*고 안철홍 원로의 노고로 부산에 국제식 대대를 처음 들여왔다. (1993년 광안리 남성 당구장 프랑스산 쉐빌롯 대대 Chevillotte 3대) 그 당시 선수회도 발족시켰다. 선배의 당구 사랑과 선수 육성에 이바지한 노고를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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